
안락사 위기의 유기견이 반려견으로 견생2막을 열었다. 정부와 경주시가 마련한 ‘경주 댕댕투어’, 예비 반려인과 유기견의 7시간 교감 여행이 일군 작은 기적이었다.
지난 6일 오전 10시 경북 경주시의 경주동물사랑보호센터로 대전,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예비 반려인들이 모였다. 이곳에서 보호 중인 유기견과 한나절 여행으로 마음을 나누고 입양을 고려할 수 있는 농림축산식품부·경주시 주최 행사의 참가자들이었다. 약 한 달 전부터 참가 희망자를 모집한 농식품부 관계자는 “총 41팀 중 유기동물 입양 의사가 있고 반려 경험이 있는 분들 위주로 다섯 팀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매년 대국민 반려동물인식조사를 진행하는 농식품부는 유기동물 입양에 뜻이 없다는 응답자의 상당수가 ‘유기동물보호소의 동물은 나이가 많고 아플 것 같다’는 이유를 들었다는 점에서 선입견 해소를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도 건강관리 및 사회화 훈련을 잘 시행하는 만큼, 반려동물 입양을 원하는 이들에게 펫숍을 대신하는 곳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장소도 고심했다. 다음달 31일부터 이틀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경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반려동물친화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관광지와 식당, 카페, 숙소, 편의시설이 많은 지역이란 뜻이다. 아울러 이번 프로그램이 이달 26~2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1회 동물보호의날 행사의 일환인 만큼 개최지와 비교적 가깝다는 점도 고려됐다.
이날 여행 코스, 함께할 유기견들의 사연, 유의사항 등의 전달이 끝난 뒤 마침내 참가팀과 강아지들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전날 목욕재계했다는 강아지들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갔다. 들개의 새끼로 태어났거나 반려견이었다가 버림 받은 유기견이라는 사연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고 애교가 넘쳤다.
반려견 물통, 사료와 간식, 배변봉투, 물티슈 등이 각 팀에게 지급된 뒤 대절버스에 올라타며 본격 투어가 시작됐다. 첫 코스는 반려동물과 동반 식사가 가능한 ‘하루방 뚝배기’에서의 점심식사였다. 별도의 식사 공간이 준비돼 남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센터 담당자들이 동행한 만큼 요청할 경우 따로 식사가 가능했지만 모든 참가자들이 강아지와 동반 식사를 원했다.

다음 코스는 보문관광단지에서 산책.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진다는 길을 호수를 끼고 강아지와 걸었다. 올해 말 결혼을 앞뒀다는 예비부부는 “신혼집을 경주에 마련했는데 반려견과 함께하고 싶어서 신청했다”며 “부모님께서 15년째 돌보는 강아지도 유기견 출신이라 우리도 유기견을 입양하려고 한다. 이전에도 온 곳인데 강아지와 걸으니 느낌이 색다르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사전에 교육받은 대로 산책 중 강아지의 배설물을 곧바로 치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최고기온이 33도를 찍은 가운데 폭염 속 강아지들의 컨디션을 고려해 산책 코스는 줄이고 관광단지 내 반려동물 동반 카페 ‘폴모리아’에서 오래 휴식을 취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세 가족의 가장은 “여행 어플에서 이번 행사를 알게 돼 신청했다. 10살 아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성화”라고 했다. 강아지 리드 줄을 잡은 소년은 “귀여운 강아지와 산책하니 행복하다. 강아지 키우는 친구들이 매일 자랑을 하는데 우리도 꼭 키우고 싶다”며 말했다.


마지막 코스는 반려가족 전용호텔 ‘키녹’이었다. 우선 내부 공간에서 전문가의 지도 아래 독 피트니스가 진행됐다. 강아지의 몸 밸런스를 잡고 근력을 강화하며 서로 마음도 나눌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그 뒤 실내 놀이터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달리기 레이스도 펼쳤다. 이날 하루 추억을 쌓은 보호자의 부름에 빠르게 달려가는 강아지들의 모습에서 교감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키녹의 반려견 동반 카페 ‘스니프’에서 박정훈 농식품부 동물복지환경정책관과의 티타임도 열렸다. 강아지들이 멍파르페와 멍젤라또를 즐기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이런 행사가 더 늘었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의 동물보호소도 이곳처럼 운영되길 바란다’ 등 의견을 전했다. 반려묘 둘을 모시는 집사라고 밝힌 박 정책관도 동물복지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박 정책관은 문화재법 등으로 불국사, 대릉원, 동궁과월지 같은 주요 관광지를 반려견과 함께할 수 없는 아쉬움을 이해한다며 “우리 부처에서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관계 부처를 설득 중”이라며 “비반려인과의 공존도 중요한 만큼 반려인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펫티켓을 준수해주시길 바란다. 저희도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시 센터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대구에서 왔다는 참가자는 “반려동물에 관심은 있지만 한 생명을 책임질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는데 이번 행사 덕분에 많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1년 전 이곳 센터에서 입양한 반려견 보리와 특별게스트로 이날 행사를 함께한 보호자는 “보리가 지난 1년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유기동물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져서 많은 친구들이 입양이 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행사가 마무리될 무렵, 공고번호 0613번 강아지와 함께한 김소원 씨가 당일 입양을 결정했다. 센터 담당자와 면담을 거쳐 입양서약서에 서명한 그는 “유기동물 입양 플랫폼을 살펴보다 이번 행사를 알게 돼 대전에서 왔다. 사진으로 본 강아지가 까매서 일부러 검은 옷으로 맞춰 입었다”며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강아지가 돌아오는 버스에선 품에 안겨 잠든 모습을 보니 운명 같았다. 이름도 정했다”며 그믐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센터는 현장에서 무료로 동물등록을 완료하고 입양지원금에 더해 간식, 장난감, 목줄, 배변패드 등으로 구성된 입양키트를 전했다. 여행 중 사용한 이동장도 선물했다. 키녹에서는 호텔 숙박권을 선물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향후 입양 의사를 전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10살 소년은 강아지와의 작별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센터 관계자는 “입양 여부를 떠나서 강아지들에게도 너무 좋은 추억이다. 여건상 보호소 내 동물들은 근처 산책이 유일한 외출”이라며 “이런 행사가 앞으로도 자주 열리길 바란다. 예비 반려인과 동물이 교감할 기회가 많아지면 입양 사례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일본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TV아사히가 현장을 찾아 여행을 함께하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TV아사히 관계자는 “기획 의도가 너무 좋다. 일본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이런 행사를 진행한 사례는 없는 것 같다”며 엄지를 세웠다. 국내 인기 TV프로그램인 SBS 동물농장도 이날 함께했다. 방영일은 오는 21일.

◆ 경주동물사랑보호센터는
경주시가 운영하는 경주동물사랑보호센터는 2021년 10월 개소했다. 견사, 묘사, 동물병원, 미용실, 놀이터 등을 겸비한 2층 건물로, 최대 개 80마리와 고양이 20마리를 수용한다. 드물지만 앵무새, 돼지 같은 동물도 보호한다. 내년 중으로 예정된 증축 공사가 완료되면 수용 규모가 200마리까지 늘어난다.
센터는 그동안 1253마리 동물이 입소했고 34%인 422마리가 입양됐다. 유실동물이 다시 주인을 찾은 경우도 151건 있었다. 다만 보호동물은 공고기간이 지나면 1~2개월 후 인도적처리(안락사)가 불가피하다.
결국 제1목표는 입양이다. 담당자는 “경주시민이 아니어도 입양이 가능하다. 서울, 제주 등 전국에서 ‘이전에 키운 동물과 너무 닮았다’며 입양 문의가 자주 오고, 성사된 사례도 많다. 유실·유기동물을 향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경주=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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