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팝그룹의 멤버에서 솔로 가수로 새 챕터를 열었다. 매진된 스타디움 투어만 수 십 번, 글로벌 팝스타로 활동한 경험은 오롯이 남아 가수 혜윤의 현재를 만들었다.
7월 발표한 혜윤의 싱글곡 ‘어딕티드(Addicted)’는 중독된 듯 헤어나오지 못하는 감정을 표현한 댄스곡이다. 혜윤이 곡 작업에 참여했으며, 빌리 아일리시와 도자캣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마스터링 엔지니어 데일 베커와의 협업했다. 지난해 첫 솔로 싱글 피벗(Pivot)을 시작으로 올해 에이셉(ASAP)과 어딕티드를 발표하며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인터뷰로 만난 혜윤은 ‘어딕티드’에 대해 “준비 과정부터 재밌게 작업한 곡이다. 마음 편하게 듣기 좋은 이지리스닝 곡으로 춤추기 좋은 곡이라 즐기고 있다”고 컴백 소감을 전했다.

◆14인조 다국적 그룹 ‘맏언니’에서 솔로 가수 혜윤으로
‘어딕티드’ 뮤직비디오는 상상 속 혜윤의 모습을 다채롭게 풀어냈다.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시선에서 현관문 넘어 혜윤의 파격적인 변화들이 보여진다. 혜윤은 “음악도 뮤직비디오도 보고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잠든 것 같지도, 깬 것 같지도 않은 렘수면 상태에 사는 괴물을 억지로 깨워 춤을 추게 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괴물이 되어 상상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만남이 주는 중독적인 끌림과 판타지적인 요소를 재밌게 표현해보고자 기획된 작업물이다. 브라이언 체이스의 우정 출연도 눈길을 끈다.
국내 가요계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사실 혜윤은 2017년 데뷔한 유명 프로젝트 그룹 출신이다. 영국 걸그룹 스파이스걸스 프로듀서 사이먼 풀러가 만든 글로벌 팝그룹 나우 유나이티드(Now United)로 데뷔해 수년간 전 세계 무대에 섰다. 14개국 14인의 소년소녀가 모여 결성한 나우 유나이티드에서 혜윤은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최근에야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아이돌 그룹이 나오지만 당시에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가수의 꿈을 안고 떠난 낯선 땅에서 22살의 나이로 팀의 맏언니가 됐다. 각국에서 모인 멤버 중에는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도 있었다. 서로 국적이 다른 14명, 그중에서도 열 명이 여성 멤버였고, 성인 여성은 혜윤이 유일했다. ‘엄마’라는 애칭이 자연스럽게 붙은 이유다. 바디랭귀지는 필수, 식사 주문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7년을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영어가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혜윤은 “나도 어린 나이였지만, 유일하게 사회생활을 해본 멤버였다. 조언도 해주고 서로 의지를 많이 하다 보니 지금도 여전히 돈독하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3살 때 발레를 시작해 안무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정형화된 무용의 틀을 깨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트릿 댄스를 접하고, 댄스 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혜윤을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수업료 대신 청소를 하고 알바로 생활비를 보탰다. 혜윤의 실력을 알아봐 준 선배들의 도움으로 커리어를 쌓고 정식으로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안무가로 활동하던 혜윤이 팀에 합류한 과정부터 남다르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잠깐 해외 체류를 경험했지만 혜윤은 자신을 “대전에서 나고 자란 토종 한국인”이라고 재차 강조해 웃음을 안겼다. 갓 스물을 넘긴 안무가 혜윤이 영상으로 팀에 지원했고, 덜컥 오디션에 합격했다. 부모님도 몰래 2주간 LA에 체류하면서 별안간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다.
음악 활동을 한 엄마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가깝게 접했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항상 음악이 곁에 있었다”고 회상한 혜윤은 “생각해보면 음악과 춤이 내겐 숨 쉴 수 있는 구멍이었다. 학창시절 힘든 일도 많았고 소심하고 부끄럼도 많이 탔는데, 춤출 때만큼은 두려움이 없어졌다. 사실 누구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것도 오디션이 처음이었다”고 고백했다. 자신감을 실어 노래했고, 나우 유나이티드 메인보컬로 활동하게 됐다. 스스로 개척한 삶에 힘이 된 건 음악이었고, 음악이 행복을 가져다줬다.
지난 7년간 60개국을 넘게 오갔다. 다국적 멤버들의 존재 또한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통한 성장을 가져다줬다. 가수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큰 배움을 얻은 시간이었다. 혜윤은 “1년 중 10개월은 월드투어에 투자했다. 그러다 보니 모든 멤버들이 빨리 성숙해진 것 같다. 후회 없이 열심히 활동했고, 이젠 내 뿌리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후회 없는 20대, 기대되는 30대
팀을 졸업(탈퇴)하고 솔로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 활동하던 멤버 중에서는 혜윤과 같이 팀을 탈퇴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멤버도 있고, 여전히 팀에 소속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멤버들도 있다. 그리운 고향, 돌아온 한국에서는 1년간 음악 작업에만 몰두하며 가수 혜윤을 알릴 준비를 마쳤다.
다시 스물한 살의 혜윤으로 돌아간다 해도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까. 혜윤은 “당시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으니 다시 타지 않을까. 바들바들 떨면서 가겠지만(웃음) 다시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돌이켜 보면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정신없이 살아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고백은 어린 나이에 혜윤이 짊어졌어야 하는 고난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종일 스케줄을 돌고,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으며 달렸다. 혜윤은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에 와있구나 싶다”고 했다. 지난 1년은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온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곡 작업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며 솔로 가수 혜윤을 빚어 나갔다.
안무가로 일을 시작한 만큼 퍼포먼스 작업에도 의견을 보탠다. 곡 작업에도 아이디어를 내며 혜윤만의 색깔이 뚜렷한 곡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많이 꿨던 혜윤은 꿈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다. 아이디어가 될 만한 꿈을 꾸면 휘발되기 전에 곧바로 메모장에 기억을 옮긴다.
팀 활동을 하며 발표한 곡만 50곡이 넘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뮤직비디오는 모두 있지만, 싱글로 발매한 탓에 피지컬 앨범은 발표한 적이 없다. 솔로 앨범을 준비하며 앨범을 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혜윤은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레코드를 좋아해서 LP로 내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많다”고 의욕을 보였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20대를 보냈다. 혜윤은 “돌아보면 한 사람의 80년 인생을 압축해서 5년에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30대의 시작을 앞두고 ‘솔로 가수 혜윤’으로 새로운 출발선에 선 그는 “삶의 발란스를 찾는 게 목표다. 걱정이 많고 불안할 때는 내가 미래나 과거에 살고 있어서 그렇더라. 현재를 즐기며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직 혜윤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어떤 가수로 보이길 바랄까. 혜윤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 에너지로 곁에 있는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든다”며 “기분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고 소개했다.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예전의 설렘과 도전의 희열을 다시금 느낀다.
나우 유나이티드 활동으로 쌓은 국내외 팬덤도 혜윤의 컴백을 기다렸다. 해외에서는 알아봐 주는 팬들이 있었지만, 국내 활동에 주력하지 못한 탓에 국내 팬들을 만나면 더 반가운 기분이 든다. 해외 팬도 한국 팬도 직접 만날 기회를 찾고 있다. “올해 연말에 공연 기회가 있을 것 같다. 하루빨리 팬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해외 활동을 병행하면서 내년이면 조금 더 완성된 앨범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활동 계획을 밝혔다.
끝으로 혜윤은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고 있다. 다양한 경험이 펼쳐질 30대가 더욱 기대된다”며 “20대가 아이폰 프로(Pro)면, 30대는 아이폰 프로맥스(Pro Max)이지 않을까. 성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다양하게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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