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보다 실속 쇼핑매장 붐벼도 매출 뚝

케데헌 훈풍에도 면세점 찬바람
경험 중심으로 관광트렌트 변화
1인당 구매액 263만→35만 원
휴가철 성수기 7월 매출 8.6%↓
내국인 자주 찾는 소매점 인기
복합 관광 플랫폼 확장 필요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해외 출장 전에 특별히 뭘 사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해외 출장에 나갈 때는 리스트를 챙겨줬었거든요.”

해외 출장이 잦은 30대 직장인 A씨의 말이다. 그에 따르면 해외 유명 화장품을 한두 개씩 부탁하던 아내가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일단 환율이 너무 높아져 면세점에서 구입하던 메리트가 사라졌다는 이유에서다. 이커머스를 활용하면 면세점보다 오히려 가격이 저렴한 경우도 많다.

명품 쇼핑도 시들해졌다. 이 역시 고환율로 인한 변화다. 콘텐츠 기획업체 대표 B씨는 “국내 백화점에서 구입하나, 면세점에서 구입하나, 인기 제품들은 아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관광으로 한국을 자주 찾는 40대 중국 직장인 C씨는 “이전에는 보따리상들이 면세점에서 마스크팩이나 홍삼, K코스메틱을 쓸어담는 모습이 분명 있었다”며 “요즘 일반 관광객들은 면세점보다 로컬숍을 더 찾는다. 한국인들이 좋아하고 자주 찾는 곳에서 쇼핑하려는 수요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팝, K-컬처가 떠오르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항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면세점 이용자도 분명 늘었지만 전반적인 매출액은 오히려 줄었다. 한국면세점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면세점 구매자는 258만339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7월 236만 3113명보다 9.2% 오른 숫자다.

반면 매출액은 같은 기간 1조65억268만원에서 9199억4652만원으로 8.6% 감소했다. 1인당 면세 구매액도 42만6000원에서 35만6000원으로 16.4% 줄었다. 1인당 연간 구매액은 2021년 263만4000원에서 2022년 164만5000원, 2023년 62만3000원, 지난해 50만원으로 감소 곡선을 그리고 있다.

다만 내국인 매출은 상승세를 보였다. 같은 달 내국인 매출은 27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해 올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방문객 수도 159만명으로 소폭 늘었다.

업계 안팎에선 면세업계 부진의 원인으로 소비 성향 변화를 지목한다. 면세업계의 큰손 역할을 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나 보따리상(다이궁) 대신 개인 관광객 입국이 늘어난 게 가장 크다. 이렇다보니 면세점은 지고 올리브영, 다이소, 편의점 등 오프라인 소매점을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면세점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행이나 관광트렌드가 바뀌면서 쉽지 않은 게 사실인 거 같다”며 “예전에는 관광객이 늘어나면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이 컸는데 이제는 여행이나 관광 트렌드가 경험 중심으로 가다보니 면세점이 아무래도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다보니 여객 수에 따라 임대료를 받는 객당 임대료를 적용하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의 경우 타격이 더 큰 상황이다. 인천공항 면세점 사업자인 호텔신라·신세계디에프는 최근 법원에 “면세점 임대료를 깎아 달라”고 민사 조정 신청을 낸 바 있다.

현재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이 인천공항공사에 내는 여객 1인당 임대료는 각각 8987원, 9020원 수준이다. 월 임대료만 약 300억원에 달하지만, 면세 수요는 회복되지 않아 매달 60억~80억원대의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두 면세점은 조정 결렬 시 공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면세업계는 향후 면세점이 외국인 전용 공간을 넘어 내국인 관광객까지 아우르는 복합 관광 플랫폼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관광·항공 산업과의 연계 재구축도 과제다. 온라인 여행중개플랫폼 제휴, K-컬처 공연·축제와 결합한 체험형 패키지, 항공 마일리지 연계 등 새로운 협업 모델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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