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의 댕냥이가 피우는 꽃… 생의 순환 이끄는 ‘수(水)분해 장례’

-국내 최초 수분해장 기계 개발… 네오메이션 박양세 대표
박양세 네오메이션 대표가 자체 개발한 수분해장 시설 ‘NP40’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재림 기자

 

2년 전 A씨는 11년을 함께한 반려묘를 떠나보냈다. 거주하는 서울에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아예 없었고 그나마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 장례업체 B사의 경기광주점까지 2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했다. 장례 절차를 거쳐 유골가루를 건네받은 A씨는 업체 관계자로부터 “일반 유골함에 담은 유골가루는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부패가 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뒤 A씨는 반려묘와 추억이 서린 곳들을 찾아 유골가루를 뿌렸는데 그 행동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데스테크(Death tech) 전문기업 네오메이션의 박양세 대표이사도 A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하남시에서 열린 반려동물 수분해장(水分解葬) 시스템 ‘NP40’ 시연회에서 박 대표는 “수년 전 반려묘와 반려견의 장례를 치르면서 머리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며 “아쉬움에 해외 사례를 찾아보던 중 수분해장 개념을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불 아닌 물로 사체 분해… 미국서 직접 배운 노하우

 

수분해장은 고온의 불을 사용하는 화장과 달리, 소량의 알칼리 용액과 물을 이용해 사체를 가수분해해 완전 멸균된 액상 물질로 만드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2010년부터 미국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등 18개국에서 반려동물은 물론 사람의 장례에도 활용 중인 기술로, 국내에서는 2023년 7월부터 동물장묘에 한해 수분해장이 합법화 됐다.

 

‘모태 반려인’으로 태어나 인생의 단 한 순간도 반려동물이 없던 적이 없었다는 박 대표는 “처음 수분해장을 알았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불법이었다”며 “합법화가 되자마자 곧바로 미국을 향했다. 현지 수분해장 전문기업을 방문해 진행 과정을 눈으로 보고 그곳 회장과도 독대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는 회장은 미국까지 날아온 박 대표의 적극성에 엄지를 세우며 직접 노하우를 전수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의 죽마고우(이훌륭한 CTO·최고기술관리자)와 손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구체화 했다. 우선 수분해장 기계 개발에 돌입했다. 미국 기업의 기계는 1회 가동의 소요시간이 10시간에 달해, 그 시간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2년여의 개발 끝에 NP40 시제품을 지난달 출시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으로도 미국에 이은 두 번째 동물용 수분해 기계로, 회사는 11개 특허를 출원한 상태다.

 

네오메이션의 수분해장 시연센터에 마련된 NP40. 알칼리 용액과 물로 동물 사체를 가수분해, 뼈와 완전 멸균된 액상 물질로 변환시킨다. 박재림 기자

 

이날 시연회는 뼈가 포함된 돼지고기로 진행됐다. 촉매제 역할을 하는 알칼리 용액과 물 500ℓ가 들어간 뒤 섭씨 170도, 6.5기압에서 분해 과정을 거쳤다. 총 1시간 26분 47초 뒤 고기는 모두 사라지고 뼈와 반응수만 남았다. 반응수는 살, 지방, 단백질이 액체 형태로 남은 것을 가리킨다. 소음도 거의 없었고, 빨래비누 같은 냄새가 났다.

 

◆친환경에 경제성도… “화장보다 모든 면에서 긍정적”

 

박 대표는 “수분해장은 기존 화장 방식과 비교했을 때 모든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수분해장이 최초로 주목 받은 것이 2000년대 초반 미국 광우병 사태였는데, 당시 800~900도 고온에 화장해도 죽지 않은 광우병 바이러스가 수분해장에선 모두 파괴됐다”며 “또한 화장은 다이옥신 같은 유독물질이 연기를 타고 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에는 동물 체내 인식칩이 삽입된 경우가 많아서 더 그렇다. 매캐한 냄새도 나고 소음도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단점은 지역에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들어서는 걸 기피하는 님비현상으로 이어졌다. 박 대표는 “화장터에 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신규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들어설 곳이 없다. 현재 서울 등 주요 대도시 내 반려동물 장례식장이 전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라며 “수분해장은 유독물질, 연기, 소음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조건이 좋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으로도 이점이 많다. 네오메이션에 따르면 반려동물 화장은 1회 가동에 가스비 등 9만원이 들어가지만 수분해장은 40㎏ 기준 물 500ℓ 사용에 따른 상수도사용요금 400원, 기계 가동에 소요되는 전기 2만7251WH에 따른 전기료 4090원만 투입된다. 화구보다 공간도 적게 차지하고, 다음 가동까지 예비시간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자연스럽게 고객이 부담하는 장례비용도 낮출 수 있다.

 

수분해장 시설 NP40에 들어가기 전 돼지고기(왼쪽)와 약 1시간 30분 뒤 수분해장을 마치고 남은 뼈. 박재림 기자

 

수분해장을 통해 발생하는 반응수는 친환경 천연 비료로 활용 가능하다. 유골과 달리 땅에 뿌려도 불법이 아니다. 박 대표는 “반려동물 장례 이후 고객에게 반응수와 함께 식물을 심은 화분을 전달하면 생의 순환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식물은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품은 물망초가 좋을 것 같다”며 “화분 외에도 반응수를 담은 스노볼(Snow ball) 같은 메모리얼 아이템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실험동물, 전염병 가축도… “완전 무인화 목표”

 

네오메이션은 지난달 NP40 시연회를 통해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주무 부처, 지자체, 관련 업계 및 투자 기관 등으로부터 혁신성과 실용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보다 앞서 반려동물 장례업체 21그램과 수분해 장례 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올해 말부터 파일럿 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경기 동두천시에 경기북부수분해센터를 열고 경기·서울 권역의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안락사 등으로 발생하는 사체 처리에 나선다.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수분해센터 개소, 돼지열병과 조류독감 등 전염병에 걸린 가축들을 현장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이동형 수분해 시설 운영도 계획 중이다. 이를 위해 한 번에 250㎏까지 수분해장이 가능한 NP250 개발에 돌입한다.

 

수분해장의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는 NP40의 화면. 박재림 기자

 

동시에 로봇 도입 등을 통해 전 과정의 무인화를 꾀한다. 완전 무인화로 하루 최대 10회까지 수분해장이 가능하다는 게 박 대표의 구상이다. 아울러 향후 국내에서 사람의 수분해장도 합법화될 가능성이 있기에 장기적인 시선으로 준비에 나설 방침이다.

 

박 대표는 “매년 반려동물 70만 마리, 유기동물 30만 마리, 실험동물 500만 마리 등 동물 사체가 대량으로 발생한다. 기존 방식은 환경오염과 사회적 갈등 등으로 인해 한계에 직면했다”며 “수분해장을 통해서 아시아에서 새로운 장례문화를 이끌어가고 싶다. 이것이 기업가로서 목표라면, 반려인으로서는 현재 함께하는 다섯 반려묘들을 훗날 보내줄 때 모두가 행복한 방식인 수분해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하남=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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