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책방부터 45km 산행까지... 고단함 속에서 찾은 진짜 쉼

한국관광공사 ‘불편한 여행’
공주 가가책방
5평 공간서 손님이 주도적 운영
‘방탈출’같은 참여형 경험 가능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일상과 단절…침묵 속 기도·묵상
건축미·수사 제작 소시지 등 일품

홍천 행복공장
1.5평 독방서 고독 속 자기성찰
고민 공유 방명록·가석방 복귀

안동 맹개마을
트랙터로만 강 건너 섬 접근 가능
밀소주 양조장 등 농촌 체험 가득

불수사도북 극한의 종주 산행
불암·수락·북한산 등 45㎞ 코스
5개 산 넘으며 자기 마주하기 등

여행은 편안함을 찾는 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편을 자처하는 모험이 되기도 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일부러 낯선 길을 걷고 불편한 잠자리를 택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불편함 속에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진짜 여행이 주는 자유와 해방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올해 여행자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담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기 시작한 콘텐츠 ‘요즘여행’이 최근 두 번째 테마로 ‘불편한 여행’을 소개했다.

 

불편한 여행은 낯선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새로운 여행 방식을 의미한다. 특히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는 과잉 연결의 시대에 자발적 단절을 통해 자신만의 균형과 활력을 되찾는 ‘건강한 고독’ 등 새로운 라이프 트렌드와 맞물려 요즘 뜨는 여행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불편함이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불편한 여행지를 소개한다.

관광객들이 가가책방을 찾아 메모를 남기고 있다.

◆5평 책방이 품은 오만가지 인생, ‘공주 가가책방’

 

간판도 사람도 없다. 불도 꺼져있다. 손님이 직접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야 한다. 비밀번호는 책방에 적힌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어 알아내고, 문을 열고 들어가 이용 방법을 정독해야 비로소 무인책방 운영 방식을 알게 된다. 상점을 열고 마감하는 주인처럼 조명과 에어컨을 켜는 것부터 모두 손님 몫이다.

처음에는 ‘입구가 어디야?’ 당황하던 손님들은 책방의 운영 방식을 즐기게 된다. 메모지를 들추며 의도치 않게 감춰진 스위치를 찾아내는 것부터 잘 짜인 방탈출 게임을 하는듯하다.

손님이 남기고 간 엽서가 하나둘 모이면서 지금의 메모서가로 바뀌게 됐다. 책방 가득 메모를 들여다보는 일이 또 다른 독서다. CCTV도 없는 이곳은 ‘최소한의 관여’를 통해 방문객이 주인공이 되는 최대한의 참여를 끌어낸다.

오픈 후 한동안 손님들은 불편함을 개선하도록 책방에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물쇠 대신 원격 도어락이나 인터넷을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지금은 입을 모아 변화를 반대한다. 불편한 이 공간이 자생하도록 두는 게 모두가 상생하는 방법임을 공감해서다.

가가책방의 키워드는 불편함에서 어느새 사람에 대한 신뢰로 옮겨간다. 현재 운영 중인 5000원 입장료는 손님들의 권유로 생겼다. 손님들이 책을 구매하기도 그렇고 무료로 운영하다가는 공간이 사라질 것을 염려해 하나둘 의견을 낸 것이다. 그래서 단서가 붙어 있다. ‘좋았다면’ 입장료를 계좌로 내달라는 내용이다.

구 왜관성당 옆 산책길

◆고요 속에 머무는 성찰의 공간,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문명의 소음과 일상의 번민으로 지친 여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비단 템플스테이 뿐이겠는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문화영성센터는 침묵 속에서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또 다른 쉼터다. 문화영성센터에는 다양한 주제의 피정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피정이란 평소 생활하던 곳에서 잠시 떠나 성당 또는 수도원에 머물며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살피는 시간을 말한다.

연말에는 성탄 전례 피정과 해맞이 피정도 진행한다. 이곳 센터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에게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참가자들은 수도원 대성전에서 수사들도 참여하는 아침기도와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등에 함께할 수 있다. 승효상 건축가가 디자인한 이 건물은 자신을 살피고 싶어 수도원을 찾는 이들에게 넉넉하고 편안한 쉼터가 되어가는 중이다.

문화영성센터에서 하루를 지내보면 시간에 따라 빛의 각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혼자 묵상과 기도를 하기 좋은 장소가 많다. 늦은 오후 경당에 앉아 있으면 길게 드리운 빛이 제단 뒤에 걸어둔 고상 주변을 집중해 비추는 장면이 보인다.

벽면 가득히 수많은 망치로 꾸민 대회의실과 가톨릭 성물들을 구매할 수 있는 성물방도 가볼 만하다. 신자 한 명이 오랫동안 수집한 망치를 수도원에 기증했는데, 이 수많은 망치들로 벽면을 꾸며놓았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기본 신념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를 잘 표현한 곳이다.

한편, 문화영성센터는 맛있는 식사로도 유명하다. 수도원 수사들이 직접 만든 소시지가 특히 인기다.

홍천 행복공장에서는 독방에서 하루를 보내는 이색 체험에 나설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나 홀로 독방에서 보낸 24시간, ‘홍천 행복공장’

 

강원도 홍천군에 자리한 행복 공장에는 1.5평(5㎡) 남짓한 독방에 하루 동안 혼자 머물며 자신과 마주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검사와 변호사로 활동했고 지금은 고인이 된 권용석 씨가 연극인인 아내 노지향 원장과 함께 성찰과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설립한 공간이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스마트폰이나 TV 등 일체의 전자기기가 없는 독방에 자신을 가두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어른 둘이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입구에 커튼으로 분리한 화장실이 있고 작은 세면대와 좌식 탁자, 요가 매트, 다기 세트 등이 있다. 공간 활용을 야무지게 한 덕에 혼자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독방 문은 밖에서 잠그고 식사는 배식구를 통해 제공된다. 탁자 위에 놓인 방명록에는 10대, 20대, 중장년층 등 이 방을 거쳐 간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가 담겼다. 누군가는 고민을 남겼고 누군가는 거기에 답이나 응원을 달았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된 나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잘 살핀 후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 나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을 조건으로 가석방되어 일상으로 복귀한다. 프로그램은 보통 매달 첫째 주말에 진행되지만, 상황에 따라 변동이 생기니 홈페이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참가비는 1박 2일 기준 15만원.

속세를 벗어나게 해주는 맹개마을의 숙소

◆백두대간 속 고립된 섬 ‘맹개마을’

 

경북 안동의 깊은 골짜기에는 ‘트랙터’로 강을 건너야만 방문할 수 있는 맹개마을이 자리한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뒤로는 청량산을 비롯한 백두대간의 여러 봉우리가 감싼 이곳은 육지 속 섬처럼 접근이 불편하지만 이 일대의 풍경은 조선 시대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조차 친구에게 남긴 문장에 언급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선사한다.

맹개마을은 약 20년 전 김선영·박성호 부부가 귀농해 밀 농사를 지으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는 국내 최초의 밀소주인 ‘안동 진맥소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으로도 유명하다.

마을에서는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은 물론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저녁 식사도 체험할 수 있다. 예약자만 즐길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트랙터 타기 체험, 시음, 양조장 시설 견학 등으로 구성됐다.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면 맹개마을에서 트랙터가 마중을 나온다. 마을에서는 방문객이 고요한 하룻밤을 누릴 수 있는 숙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지난해 맹개마을은 ‘한국관광의 별’, ‘찾아가는 양조장’에 선정된 바 있다. 차로 20분 거리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도 자리하고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1박 2일 숲식 사우나, ‘불수사도북 종주 산행’

북한산 일출 전경

모든 것이 갖춰진 편리한 도심 속, 일상의 안락함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밀어붙이며 고요과 고통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불수사도북’ 종주다. 코스 이름은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다섯 산의 머리글자에서 따 왔다. 이 코스는 총거리 약 45㎞, 누적 상승고도 약 4000m, 종주에 스무 시간 이상 걸리는 극한의 여정이다. ‘강북5산 종주’라고도 한다.

공릉동 백세문에서 출발해 다섯 산의 정상을 찍은 뒤 불광동 대호아파트로 하산하는 길을 정석으로 친다. 그렇다고 이 코스가 원칙은 아니다. 능선을 타고 다섯 산의 정상을 한달음에 오르는 것이 이 산행의 목적이다.

불수사도북 종주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체력 안배를 잘해야 하며, 평소 산행 등을 통해 산의 환경과 지형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섯 산을 나눠서 한 산씩 미리 올라보는 것이 완주에 도움이 된다. 방풍(방수)재킷, 헤드램프와 여분의 보조 배터리, 휴대전화와 지도, 충분한 물과 행동식은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종주에 도전하기 전 북한산우이역 부근에 자리한 ‘우이동 산악문화 H·U·B’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다양한 산악 체험이 가능한 산악문화복합공간으로, 세계 최초 히말라야 16개 봉을 등정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의 업적을 기리는 엄홍길전시관과 유익한 등산 상식을 접할 수 있는 산악체험관을 운영한다. H·U·B는 히말라야(Himalaya), 엄홍길(Um Hong-gil), 북한산(Bukhansan)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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