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인기 지역 이름을 간판에 붙이는 이른바 지명 마케팅이 확산하고 있다. 법정주소는 그대로지만 구·동 이름만 갈아 끼워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실제 단지명 변경 직후 시세가 급등하며 이름 장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성동구 마장동의 ‘마장동 금호어울림’은 지난해 10월 단지명을 ‘왕십리 금호어울림’으로 변경했다. 불과 6개월 만에 전용 84㎡ 매매가격이 34.5%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마장동 전체 아파트값 변동이 미미했던 점을 고려하면, 지명 변경이 직접적인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마포구 대흥동 ‘신촌그랑자이’도 비슷하다. ‘마포그랑자이’로 이름을 바꾼 뒤 1년 만에 평균 매매가가 2억1200만원 뛰었다. 단지 시설 개선이나 교통 호재 없이 간판 교체만으로 시세가 들썩인 사례다.
◆서울 전역 아파트로 번진 ‘지역명 바꾸기’
양천구 신정·신월동의 여러 단지가 목동을 이름에 넣었고,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 아파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서반포 명칭이 논란이 됐다. 강서구 공항동에서는 마곡을, 송파구 송파동에서는 잠실을 차용했다. 경기 고양 덕양구 덕은동 아파트들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DMC’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주소와 실제 간판명이 상이한 단지가 늘면서 실제 거주 환경·학군·생활권에 대한 소비자 혼란이 커지고 있다.
◆느슨한 규제…가짜 간판 판친다
서울시는 지난해 ‘새로 쓰는 공동주택 이름 길라잡이’를 통해 타 법정동·행정동 이름 사용이 가격 왜곡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법원 역시 이를 인정하지 않는 판례를 내놨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브랜드 지명 선점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명 마케팅의 부작용을 정보 비대칭, 가격 왜곡, 지역 갈등으로 꼽는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외지 수요자나 세입자는 간판만 보고 학군·행정구를 잘못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지명 프리미엄이 주변 시세를 밀어올려 실거래가 지표까지 왜곡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인접 지역 브랜드 무단 차용은 생활권 정체성을 흐리고 주민 간 반감을 키운다. 따라서 지명으로 시세를 부풀리는 행태에 제동을 걸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명칭은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정확한 위치와 생활권 정보를 제공하는 공적 장치”라며 “지금처럼 간판이 주소를 이기는 시장이 이어진다면, 부동산 거래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재원 기자 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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