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건설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최근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까지 시작돼 건설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1일 업계와 관련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잇따르는 산업재해에 고강도 대응에 나섰다. 건설현장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해선 면허취소와 징벌적 손해배상, 고액 과징금 부과 검토 등 강력한 처벌 기조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11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50일간 전국 건설현장에 대한 관계기관 합동 단속에 나섰다. 단속 대상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건설사의 시공 현장, 임금 체불이나 공사대금 분쟁 현장, 국토부 조기경보 시스템으로 추출한 불법 하도급 의심 현장 등이다.
특히 정부는 불법 하도급을 정조준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로 불리는 불법 하도급은 2021년 광주 학동 철거현장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힐 만큼 건설현장 산재 원흉으로 지목된다.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이 이뤄지면서 실공사비가 줄어들고 무자격 업체가 현장을 맡으면서 안전사고 위험이 커져서다. 현행법에서 하도급은 엄격한 규정에 따라 가능하고 재하도급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나, 현장에서는 조건을 지키지 않은 불법 하도급과 재하도급이 만연한 상황이다. 국토부가 올해 상반기 전국 건설현장 1607곳을 단속한 결과 167개 현장에서 520건의 불법 행위가 적발됐는데 불법 하도급이 197건(37.9%)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하도급 관행을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으면서 관련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부는 저격수급인 선정 기준 강화 등 자체적으로 권한이 있는 부분은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공공부문 위험작업 재하도급 금지 등 타 부처 협의가 필요한 제도는 적극 협의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서다. 앞서 이 대통령은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 사고를 일으킨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강하게 질타했고,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가능한 추가 제재 방안을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을 향해서는 “산재가 줄어들지 않으면 직을 걸라”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후에도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 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휴가 후 첫 메시지로 산업 안전을 택하며 산재 근절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한 것이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노동부에 산재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사후 조치 내용과 현재까지 조치한 내용을 오는 12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보고하라고 주문했다.
건설업계는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주요 건설사들은 현장 안전보건 체계 현황을 점검하고, 시공 현장의 안전관리 조치 및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건설단체 차원에서도 건설현장 사고를 막기 위해 행동에 들어갔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건단련)는 얼마 전 17개 소속 단체 부단체장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의 연구기관과 함께 건설현장 중대재해 근절을 위한 전담팀(TF)을 발족하고,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다만 일각에선 규제 중심의 안전강화대책이 건설사들의 부담을 키워 가뜩이나 좋지 않은 업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방향성엔 동의하지만 구조적인 해법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각심을 높인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금까지 규제나 방침이 없어서 사고가 난 건 아니다”라며 “단순한 망신주기, 처벌에만 집중해선 안 된다. 현장에 상존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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