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리뷰] 웃음 속 휴머니즘과 감각적 미장센…‘악마가 이사왔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CJ ENM 제공

아무런 의미 없이 오로지 재미만 좇는 작품은 마지막에 남는 게 없다. 관람 중에는 즐겁지만 누군가와 떠올리며 이야기할 여운은 적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는 유머라는 틀 안에 인물 간의 진정성 있는 관계와 점진적 성장이 주는 감동이 있다. 이상근 감독이 942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 엑시트(2019)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이 작품은 새벽마다 악마로 깨어나는 선지(임윤아 분)를 감시하는 기상천외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청년 백수 길구(안보현 분)의 이야기가 담긴 코미디물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직장을 퇴사한 후 인형뽑기로 무료함을 달래며 일상을 보내던 길구가 아랫집으로 이사 온 선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선지가 낮의 청순한 모습과 달리 진한 화장과 기괴한 웃음, 괴팍한 성격으로 압도해 길구를 혼란에 빠뜨린다. 이후 길구는 선지의 아버지인 장수(성동일 분)에게 '선지는 밤에 악마로 변한다'는 비밀을 듣게 되고, 그 시간 동안만 옆에서 지켜봐 달라는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는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CJ ENM 제공

길구가 기묘한 파트타임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이 영화의 주된 틀이다. 선지의 몸이 다치지 않기 위해 악마의 밤산책을 보좌하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내쫓겠다는 의지로 분투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 과정이 마냥 코믹하지만은 않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즐겁게 만들라는 악마의 말에 길구는 아파트 단지가 아닌 다른 산책코스를 마련하며 알게 모르게 악마와 추억을 쌓게 되고, 복잡한 사연을 가진 악마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선지의 가족도, 악마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싶은 인물의 선한 마음이 따뜻한 감동을 안긴다. 

 

여기에는 인물의 성장도 주목된다. 선지와 가족 그리고 길구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오컬트 요소가 있지만 영화는 결국 사람 간의 이해와 감정, 성장을 담아낸 코믹 휴먼 드라마다. 잔잔한 웃음을 선사함과 동시에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 스틸컷. CJ ENM 제공

감각적인 미장센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악마가 이사왔다를 보다 보면 동화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서사에 따라 달라지는 컬러감 때문이다. 백수 청년 길구는 회색과 같은 무채색의 옷을 입었지만 선지와 그의 가족을 만난 뒤로 점점 컬러감이 생긴다. 선지 역시 평소 낮에는 파스텔톤의 따스한 분위기의 옷을 입지만 악마가 빙의되는 저녁엔 쨍한 원색 계열의 컬러를 걸친다. 

 

이와 관련해서 이 감독은 "엑시트 때의 미술 감독님과 이번 작업도 함께 했다. 워낙 원색을 좋아하는 분이고, 저도 색감으로 상징을 표현하는 걸 좋아해 연출에 신경을 썼다"며 "저랑 제작진만 아는 재미라고 생각했지만 눈치 빠른 분들이라면 바로 알아보실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캐릭터의 감정과 내면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미술적 요소까지 가미되며 영화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처럼 극장가에 탄생한 기대작이다.

 

오는 13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신정원 기자 garden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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