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순위표엔 이름이 없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곧 ‘괴물’이 뜬다는 사실을.
외야수 안현민(KT)이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규정타석에 진입한다. KT는 29일 기준 99경기를 소화했고, 그에 따른 규정타석은 307타석이다. 동시에 안현민이 302타석을 소화한 가운데 변수가 없다면 조만간 올 시즌 프로야구 타격 개인 순위표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예정이다.
그의 현시점 수치를 대입하면 각종 기록 최상단이 흔들린다. 70경기 동안 18홈런 60타점 및 타율 0.364, 출루율 0.474, 장타율 0.652를 기록 중이다. 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규정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리그 타율 선두 빅터 레이예스(롯데·0.336)를 비롯해 출루율 1위 최형우(KIA·0.417), 장타율 1위 르윈 디아즈(삼성·0.622) 모두 2위로 밀려난다. ‘안현민’ 이름 석 자가 단숨에 세 부문 최일선에 설 가능성이 점쳐지는 까닭이다.
무서운 건 단순 반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현민은 시즌 초만 해도 개막 엔트리 승선 불발 및 4월(2경기 타율 0.167) 저조한 출발을 보였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안착,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9개 구단 모두 그를 향해 경계 태세를 높인 시점인데도, 불방망이는 도통 식을 기미가 전혀 없다. 월별 타율은 고공행진이다. 5월(0.333)부터 시작해 6월(0.346), 7월(0.459)까지 가파른 속도감을 즐기고 있다.
안현민은 사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신예가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이강철 KT 감독으로부터 눈도장을 찍은 바 있다. 특유의 타구 스피드와 파워로 주목받았지만, 손가락 부상 및 수술로 이탈하면서 삐끗했다. 당시 수장도 “아까워 죽겠다”고 하소연했을 정도다.
재차 퓨처스팀(2군)서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했다. 그 시기는 헛되지 않았다. 스윙 궤적을 다듬고, 선구안도 한층 발전하며 다시 일어설 준비를 마쳤다. 올 시즌의 폭발력은 앞선 노력들의 성과다.
다 갖췄다. 지난해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쳐 KBO리그를 뒤흔든 2003년생 동갑내기 내야수 김도영(KIA)을 연상케 한다. 안현민 역시 그야말로 타격판 ‘토탈패키지’다. 우락부락한 체격 탓에 장타자로만 오해하기 십상, 현장에선 고개를 흔든다.


이 감독은 “파워뿐 아니라 컨택과 볼넷을 골라내는 능력이 더 놀랍다”고 강조한다. 투수의 유인구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심은 또 다른 장점이다. 올 시즌 볼넷을 47개 얻는 동안 삼진 39개만 기록했다. 상대의 견제가 심해진 후반기엔 10경기 8볼넷 3삼진이다. 시속 150㎞대 강속구에도 밀리지 않는 스윙까지 겸비했다.
리그에 미치는 영향력만 봐도 알 수 있다. 주가가 하늘을 치솟는다. 누적 지표인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스포츠투아이 기준)를 보면 5.92로 최강 에이스 코디 폰세(한화·5.90)를 제치고 투타 1위를 자랑 중인 게 대표적이다.
이렇듯 그의 존재감은 이미 또렷하다 못해 강렬하다. 더 이상 숨어 있는 ‘무명’의 고수가 아니다.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규정타석을 채운 채 한 시즌을 완주할 수 있을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1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에 일종의 ‘공식 인정’ 도장을 찍는 순간이다. 이제는 안현민이 계속해서 써 내려갈 다음 장을 지켜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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