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 사는 강 모 양(17세)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애청자다. 응원하는 연습생을 데뷔조에 올리기 위해 부모, 친구들까지 동원해 문자 투표에 참여한다. 직접 뽑은 멤버가 데뷔조에 선발되면 뿌듯하기만 하다. 풋풋한 연습생 시절부터 글로벌 스타로 발돋움하기까지 경험한 사람만 알 수 있는 ‘키우는 맛’을 즐기고 있다.
이처럼 대중의 선택으로 스타가 탄생하는 구조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팬은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제작자이자 후원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 직접 참여해 결과를 바꾼다는 만족감이 오디션 콘텐츠의 오랜 생명력을 가능케 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디션 콘텐츠는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 등으로 출발해 2000년대 영재육성 프로젝트(SBS), 악동클럽(MBC) 등 연예인 지망생이 출연하는 차세대 스타 발굴 프로그램으로 진화해 발전해왔다. 장르별로 보면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등의 힙합 오디션과 슈퍼밴드, 탑밴드 등의 밴드 오디션, 무명 가수를 재조명하는 싱어게인과 트로트 신드롬을 몰고 온 미스·미스터트롯 시리즈 등이 있다.
특히 트로트 장르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기존 트로트의 고정 이미지를 깼고, 임영웅·영탁·송가인 등 스타를 대거 배출하며 세대 간 벽을 허물었다. 다만 요즘은 트로트 열기가 한풀 꺾이면서 아이돌 오디션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힙합 오디션도 한국 대중음악 지형을 뒤흔든 주요 흐름이다.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방송가 최초로 힙합을 전면에 내세운 서바이벌 포맷으로,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을 메이저 무대로 끌어올렸다.

◆투표 시스템 정착의 시작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성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곳은 엠넷이다. 2009년 슈퍼스타K 론칭은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을 불고 왔다. 시청자가 직접 응원하는 가수의 데뷔를 좌우할 수 있는 투표제를 본격적으로 적용하며 시청자 참여형 포맷을 정착시켰다. 엠넷은 이후 2010년대 프로듀스101 시리즈, 2020년대 보이즈·걸스 플래닛 시리즈로 배턴을 이어받아 아이돌 그룹 제작에 주력했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프로듀스101 시즌1, 2를 통해 탄생한 11인조 걸그룹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은 데뷔 앨범 초동 30만장 이상을 달성하며 등장부터 가요계를 긴장시켰다. 2018년 프로듀스48으로 탄생한 아이즈원은 한일 합작 걸그룹 최초 아레나 투어를 성사시키는 등의 성과를 냈다.
2023년 출발한 보이즈 플래닛은 9인조 보이그룹 제로베이스원, 한중일 합작 오디션으로 전개된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은 걸그룹 케플러를 데뷔시켰다. 아이랜드 시리즈를 통해 데뷔한 엔하이픈은 하이브 자회사 빌리프랩 소속으로, 이즈나는 웨이크원 소속으로 글로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성장 서사 노출, 강력한 팬덤 형성
방송사를 통한 공개 오디션 형식의 가장 큰 장점은 리얼리티다. 연습생의 성장 서사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시청자의 투표 참여가 멤버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1명의 시청자에 불과했던 이들에게 ‘국민 프로듀서’, ‘스타 크리에이터’ 등의 이름을 주며 책임감을 부여한다. 아이랜드 시리즈의 경우 해외 시청자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했다.
K-팝의 세계화를 이끈 건 글로벌 팬덤의 확장이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글로벌 팬덤 효과를 톡톡히 봤다. 그 중 ‘아이랜드’ 시리즈는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처음으로 글로벌 투표제를 도입해 170여개국 K-팝 팬덤의 참여를 유도했다. 국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문자 투표를 벗어나 해외 시청자에게도 투표권을 부여한 것이다.
강력한 팬덤은 데뷔 전부터 화력을 발휘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아이돌이 데뷔 앨범부터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이유다. 다국적 멤버 구성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이점으로 작용한다. 소속사가 연습생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주요하다. 가수로서의 역량과 대중의 인기 척도를 확인할 수 있고, 만일 최종 데뷔조에서 탈락하더라도 미리 인지도를 쌓아 향후 활동에 힘을 얻을 수 있다.
다만 방송사가 주도한 오디션의 경우 계약기간이 정해진 프로젝트 그룹이라는 단점이 있다. 가요계를 발칵 뒤집었던 워너원의 경우 불과 1년 6개월의 활동 기간만 보장돼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CJ ENM의 자회사 웨이크원 소속으로 활동 중인 제로베이스원의 계약 기간은 2년 6개월. 2023년 7월 데뷔해 내년 1월 공식적인 활동을 마친다. 프로젝트 그룹의 경우 계약 연장과 계약 종료를 두고 매번 떠들썩한 이슈를 만든다. 워너원과 아이즈원 등 소속사로 돌아가 개별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일부 그룹은 여전히 재결합에 대한 희망고문이 끊이지 않는다.

◆K-팝 광풍…‘현지화 그룹’ 물결
오디션 출신 그룹의 경우 성장 서사를 지켜본 팬덤의 지지가 수반된다. 특정 소속사가 직접 나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유다. 연예기획사 JYP와 하이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각 소속사가 가진 제작 역량을 현지 인적, 문화적 역량과 조합해 현지화 그룹 제작에 나선다. 각기 다른 소속사에서 모인 프로젝트 그룹과 달리 계약기간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JYP는 2018년 ‘JYP 2.0’ 비전 세부내용으로 ‘Globalization by Localization’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현지화된 트레이닝과 제작 시스템을 적용해 로컬 팬 유입과 충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일례로 JYP엔터테인먼트와 일본 소니뮤직이 공동 진행한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로 탄생한 걸그룹 니쥬(NiziU)는 JYP의 이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평가 된다. 2019년부터 2년 간 JYP 주도 아래 오디션, 합숙, 리얼리티 방영 등의 서바이벌 시스템을 도입해 최종 10인의 멤버를 뽑았다.
니쥬의 성공적 데뷔로 ‘니지 프로젝트’ 두 번째 시즌으로 지난해 5월 보이그룹 넥스지(NEXZ)가 탄생했다. 전원 일본인 멤버로 구성된 7인조 넥스지 또한 JYP의 글로벌 현지화 그룹의 예다. 서바이벌 리얼리티를 제작해 멤버의 성장과 성장 과정을 공유했다. JYP는 2023년 유니버설뮤직그룹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와 한미 합작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America2Korea)를 전개해 걸그룹 비춰(VCHA)도 탄생시켰다.

하이브의 ‘K-팝 시스템의 세계화’ 전략의 성공적인 예는 캣츠아이(KATSEYE)다. 하이브와 게펜 레코드가 공동으로 기획한 글로벌 오디션 프로젝트 ‘더 데뷔: 드림 아카데미(The Debut: Dream Academy)’를 거쳐 지난해 탄생한 6인조 걸그룹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엔 지구 반대편으로 영역을 넓혀 라틴 음악 시장에도 K-팝 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이브 라틴 아메리카와 미국 방송사 텔레문도가 협력한 음악 경연 프로그램 ‘파세 아 라 파마(Pase a la Fama, 꿈을 향한 발걸음)’는 멕시코 밴드를 발굴하기 위해 캠프를 열었다. 이에 앞서 5인조 보이그룹 산토스 브라보스(SANTOS BRAVOS) 론칭을 예고하며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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