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어린 시절부터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때때로 주변에선 마치 돌연변이를 보는 듯한,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누군가는 ‘유별나다’라는 말로 그를 쉽게 정의하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았다. 세상의 틀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집중했다. 한때 맹렬하게 축구공을 쫓던 한 소년은 경기장에서 책상 앞으로, 강의실로, 연구실로 스펙트럼을 확장해나갔다. 매 순간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송강영 한국스포츠과학원장이다.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흘러간다. 수많은 명함이 이를 대변한다. 한국스포츠과학원 수장 외에도 2027 충청 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원회, 동서대학교(체육학과) 교수(휴직 중), 한국융합과학회 고문,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 학회 고문 등 다양하다. “힘들긴 해도 즐겁다”고 운을 뗀 송 원장은 “석사로 스포츠심리학을 연구하면서 일반 국민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박사 때 여가레크리에이션으로 전공을 틀었다. 생활체육부터 엘리트체육까지 하나하나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 공부하는 축구 선수
이력만큼이나 걸어온 인생도 특별하다. 고교 시절(남강고)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왼쪽 가슴에 태극기를 다는 그날을 상상하며 뛰고 또 뛰었다. 고3때 큰 위기를 맞이한다. 팀 성적이 저조했던 것. 송 원장은 “당시엔 축구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전국대회서 최소 4강 안에 들어야 했다. 1년에 보통 4개에서 5개 정도의 대회를 나가는데 실적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송 원장은 “집에서 운동하는 것을 반대했었다. 그럼에도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었다.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공 대신 책을 마주했다. 송 원장은 “특기전형이 어렵다면, 공부로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막막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축구 선수 출신이 시험 성적으로 대학에 간 사례가 거의 없었다. 코치님은 비롯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보니 지도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운동부라고 하면 수업엔 거의 안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송 원장도 마찬가지. 대신 집에서나마 조금씩 진도를 따라가려 애썼다. 송 원장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그렇게 매달렸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았던 학력고사 점수. 내심 “해냈구나” 싶었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송 원장은 “오랫동안 운동을 했으니 체육학과에 원서를 냈다. 문제는 실기에 대한 인지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감독님도, 코치님도 몰랐다. 축구를 했으니 시험 성적만 통과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떠올렸다. 아무리 선수 출신이라고 해도 준비 없이 간 실기 테스트를 통과하긴 어려웠다. 전기 대학서 탈락했다. 재수까지 바라보긴 어려웠다. 후기 대학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수원대학교 체육학과에,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했다.

◆ 괴짜에서 독립적 성인으로
일정 부분 속상한 마음이 들 수도 있었을 터. 송 원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부터 서울에서 손꼽히는 그런 학교를 들어갔다면, 세상을 좀 우습게 봤을 것 같다. 최대한 쉬운 길을 가려고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송 원장은 “제대로 공부해서 대학원은 서울로 가고자 했다”고 귀띔했다.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이다. 결국 해냈다. 당당히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송 원장은 “들어 보니 수원대학교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학교로 진학했다 하더라”고 웃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의 시간. 송 원장에겐 가장 편안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송 원장은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물론, 대학교 때도 ‘괴짜’ 취급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땐 축구선수가 공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해 했다. 대학교에서도 축구 선수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왜 공부를 하느냐’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모난 돌처럼 뾰족뾰족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원에선 공부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주목 받을 일이 없었다. 심적으로 안정되니 더 재미있었다”고 끄덕였다.
현장과 이론, 양쪽을 골고루 경험했다는 것은 송 원장만의 큰 자산이었다. 남들보다 빠르게, 스포츠 과학에 눈을 뜬 배경이기도 하다. 송 원장은 “선수 시절 대회를 앞두고 보름씩 전지훈련을 갔다. 대회 전날이면 힘내라는 의미에서 고기를 주시곤 했는데, 이상하게 몸이 무겁더라”면서 “알고 보니 잘못된 식단이었다. 탄수화물 중심으로 먹었어야 하는데 지방이 많은 걸 섭취한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 공부하면서 무릎을 탁 쳤다. 그때 알았더라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은가. 선수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 스포츠와 과학의 만남
사실 송 원장이 스포츠 과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석사 시절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조교로 활동한 것. 워낙 자료가 많았기에 여러 박사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이었다. 그렇게 몸을 담기 시작해 어느덧 한국스포츠과학원 원장까지 역임하게 됐다. 2023년 선임됐다. 임기는 2025년 9월 12일까지 2년이다. 송 원장은 “처음 대학원생으로 체육과학연구원을 방문했을 때가 1991년도이니, 벌써 30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 셈이다. 역대 원장님들 가운데 가장 깊은 역사를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스포츠 과학은 더 이상 낯선 학문이 아니다. 첨단 장비와 이론을 통해 인간이 운동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단순히 ‘열심히 연습하는 것’이 아닌, ‘언제, 어떻게, 얼마나’ 연습해야 가장 효과적인지를 분석한다. 엘리트 쪽에선 이미 깊숙하게 영향력을 발휘한 지 오래다. 송 원장은 “우리나라 스포츠 과학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올림픽 양궁 10연패, 펜싱 2관왕, 수영의 12년 만의 메달 등 굵직한 기록들이 모두 체계적인 스포츠과학 지원의 결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차 우리 생활과도 가까워지고 있다. 송 원장은 “앞으로는 개인 맞춤형 운동 앱이 더욱 정교해질 것이다. 스마트 시계로 수집한 개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AI)이 최적의 운동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가상현실(VR) 기술로 집에서도 전문적인 운동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송 원장은 “스포츠 과학은 엘리트 선수만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위한 과학이다. 아무리 좋은 이론과 기술도 활용되지 않으면 무용지물 아닌가. 더욱더 활성화시키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 유별이 아닌, 특별함을 가진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물음표 앞에서도 굳건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퍽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송 원장은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했던 것 같다. 누가 뭐라 해도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휩쓸리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했다”고 밝혔다.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이다. 송 원장은 “부모님도, 누나도 언제나 믿고 기다려줬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지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성공을 묻는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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