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야땅볼에도 전력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몸까지 비트는 등 위험천만한 슬라이딩을 감수한다. 수비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멀리 쭉 뻗은 타구를 쫓아 온몸을 내던진 뒤 기필코 잡아낸다.
근성과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점철된 이 장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바로 허슬이다. 이는 매 순간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투혼을 의미한다. 명가 재건을 꿈꾸는 프로야구 두산이 되살리고자 하는 정신도 여기에 있다. 팀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애칭이 ‘허슬 두’일 정도다.
올 시즌 이 정체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를 꼽자면, 놀랍게도 푸른 눈의 사나이다. 현시점 그라운드 위 가장 많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외야수 제이크 케이브 얘기다.


두산과의 인연은 이제 반년을 조금 넘겼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서만 7시즌 및 523경기를 뛴 베테랑이다. 2025시즌을 앞두고 KBO리그에 새롭게 합류, 단숨에 곰 타선 핵심으로 우뚝 섰다.
공격과 수비, 주루 3박자에서 두루두루 경쾌한 리듬을 낸다. 특히 광활한 잠실 외야에 최적화된 면모를 거듭 뽐내고 있다는 평가다. 올 시즌 84경기 출전, 타율 0.310(332타수 103안타) 10홈런 51타점 13도루(0도루실패) OPS(출루율+장타율) 0.827을 기록 중이다.
아시아 야구에도 적응을 마친 모양새다. 6월 타율 0.321(78타수 25안타)로 도약하더니 7월엔 더욱 못 말린다. 이 시기에만 13경기를 소화한 가운데 타율 0.385(52타수 20안타) 4홈런을 때린 것. 23일 잠실 한화전에서도 멀티홈런 활약을 펼쳐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마크했다. 두산 관계자들도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선수의 진가는 따로 있다”고 귀띔한다.

단순 수치로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허슬’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배경이다. 자기 몫을 다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 케이브는 주변을, 나아가 동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케이브를 향해 “마치 교과서 같다”고 설명한다. 조 대행은 “눈앞에 좋은 인생 책 한 권이 놓인 느낌”이라며 “우리 선수들이 케이브의 플레이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당부까지 전했다. 평소에는 “외국인 선수지만, 주장을 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웃기도 한다.
후배들도 케이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층 성장해 나간다. 그중 올 시즌 두산 주전 2루수로 자리매김한 6년 차 신예 오명진이 있다. 특히 멘탈과 마음가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후문이다.

케이브 역시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크나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두산의) 어린 선수들이 지금 너무 잘해주고 있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도 많다”고 칭찬했다.
시선 끝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야구는 항상 어렵고 체력소모가 많은 스포츠다. 우리 팀 어린 선수들이 매번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운을 뗀 그는 “그래도 너무 헤매지 않고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들에게 나의 야구가 조금이나마 본보기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악전고투 속 팀의 재도약을 위해 달린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렇기에 케이브는 매일같이 먼저 뛰고, 가장 많이 넘어지고, 누구보다 빠르게 다시 일어선다.
그는 끝으로 “야구를 하는데 있어 스탯(기록)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허슬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팀 동료들과 팬분들이 나를 기억할 때 허슬을 떠올려주면 정말 기쁠 것 같다. 또한 언제나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늘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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