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몇 년 사이 수차례 큰 수술을 받고 크고 작은 병원을 오가며 재활과 치료를 받고 있다. 최근 고혈압과 당뇨가 시작되면서 다니는 병원 수가 늘었다. 다른 병원에 갈 때마다 진료 이력과 투약 정보를 설명하기 곤란했던 A씨. 얼마 전 알게 된 ‘나의건강기록’ 앱은 이같은 곤란함을 일거에 해소해줬다. 로그인만 하면 병원 진료 기록부터 방문이력, 투약정보, 건강검진, 예방접종까지 의료기관과 공공기관이 보유한 건강정보를 한번에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 허리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B씨는 검사결과 허리디스크 초기 진단을 받았다. B씨는 업무 특성상 갑작스러운 장기 출장이 많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야 해서 한 병원을 정기적으로 꾸준하게 다니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렇다보니 병원을 바꿀 때마다 MRI 등 새로운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러나 다행히 진료정보교류 시스템을 사용하는 병원이 전국 곳곳에 있었다. 진료정보교류 시스템을 이용하면 새로운 병원에 가더라도 기존 진료기록이 연결돼 기존 진료 내역을 설명하거나 CD 같은 진료기록 자료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만성질환으로 복용 중인 약을 매번 설명해야 하거나, 출장 등으로 병원을 옮겨 다닐 때마다 동일한 검사를 반복해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의료현장의 모습이 달라지며 이같은 불편함이 해소되고 있다. 종이에 쓰던 진료기록이 이제는 전자의무기록(EMR)을 통해 데이터 형태로 보관된다. 이렇게 생성된 보건의료 데이터는 본인 동의를 통해 다른 병원으로 전송되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받아볼 수 있다. 이를 활용해 감염병의 확산을 막고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한국보건의료정보원(의정원)이 있다. 의정원은 환자 중심의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실현하고 의료 서비스의 연속성과 안전성을 강화하며, 공공보건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
◆내 손안 진료기록…나의건강기록 앱

2023년 의료마이데이터 플랫폼 ‘건강정보 고속도로’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의료데이터의 주권이 환자에게 돌아가는 시대가 왔다. 건강정보 고속도로 활용 앱인 ‘나의건강기록’을 다운로드 받으면 국민 누구나 자신의 진료기록과 건강정보를 스마트폰 하나로 확인하고, 필요한 곳에 안전하게 전송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1004개 의료기관이 건강정보 고속도로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2025년까지 모든 상급종합병원(47개소)과 병·의원 약 1300개소가 참여하는 체계를 완성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저장소가 아니다. 환자 동의를 기반으로 의료기관, 공공기관 등에서 보유 중인 진료기록을 표준화된 형식으로 제공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전송한다. 일종의 ‘의료 마이데이터 중계 플랫폼’이다.
핵심 서비스인 나의건강기록 앱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질병관리청 등 공공기관과 연계해 개인의 건강기록을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확인하고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복약알림과 14세 미만 자녀의 건강기록 조회 등 부가 기능이 고령층과 만성질환자, 영유아 부모 등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파급력을 인정받아, 나의건강기록 앱은 ‘2024년 정부혁신 왕중왕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여러 병원이 한 팀처럼… 진료 연속성 보장하는 진료정보교류

한 병원에서 받은 검사를 다른 병원에서 다시 받는 일도 줄고 있다. ‘진료정보교류서비스’ 덕분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는 병원 간에 환자의 진료기록을 전자적으로 안전하게 공유해준다. 덕분에 환자는 더 빠르고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의료진은 환자 상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올해 3월 기준 이 서비스에 참여한 의료기관은 9633개에 달한다. 연간 교류되는 진료기록도 122만 건을 넘는다. 특히 근로복지공단, 병무청, 국가보훈부와 연계되어 산재, 병역, 보훈 관련 행정업무에도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정원은 향후 협진 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환자 중심 정보 공유 체계를 더욱 넓힐 계획이다.
◆공공 의료기관도 똑똑해진다: 차세대 국립병원 정보시스템 ‘MEDIRO’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들도 디지털 혁신에 발맞추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산하 9개 국립병원은 이제 ‘차세대 국립병원 정보시스템(MEDIRO)’을 통해 통합된 디지털 진료환경을 갖췄다. 이전에는 병원마다 다른 시스템을 썼지만, 이제는 클라우드 기반의 통합 시스템으로 전환해 보안성과 유지 효율을 크게 높였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전자의무기록(EMR)을 조회할 수 있고, 투약 사고를 방지하는 CLMA(폐쇄루프 투약관리) 기능도 새롭게 도입됐다. 병원 내 다양한 요구사항은 IT 서비스 관리(ITSM) 체계를 통해 빠르게 반영되며, 계속해서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정신질환 골든 타임 지킨다

정신질환 응급환자들의 급성기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조기에 치료할수록 치료효과가 높아지고 재발확률이 낮아지며 만성화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응급 병상 수가 적고 입원 절차가 어려워 적극적인 급성기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의정원에서는 신속한 병상 배정을 위해 경찰, 소방,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이 실시간으로 병상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시범운영하고 있다. ‘정신의료기관 응급병상정보 공유시스템’은 정신응급환자 발생 시 이송과 기관 간 진료의뢰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설계됐다.
현재는 시스템 안정적 운영을 위해 실무자 협의체를 구성해 기능 개선 및 보완 요구사항을 수렴하고 있다. 이달부터 고도화 및 운영 사업을 통해 앱 개발 및 화상센서 장비 도입을 통한 병상정보 자동 수집 기반 마련을 추진할 계획이다.
◆병원 문닫아도 기록은 남는다
폐업한 병원의 진료기록은 어떻게 될까? 이전까지는 환자가 진료기록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휴·폐업 의료기관 진료기록보관시스템’ 덕분에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7월 중 정식 운영 예정인 이 시스템은 폐업한 병원의 진료기록을 표준화해 안전하게 보관하고, 환자가 필요할 때 온라인이나 보건소에서 쉽게 발급받을 수 있도록 한다. 종이 형태의 문서도 PDF로 변환해 저장할 수 있다. 사용자는 가까운 보건소를 방문하거나 전용 포털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감염병 대응, 더 빠르고 정밀하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의정원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검사기관, 공항·항만 등 다양한 기관의 정보를 연계해 실시간으로 감염병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대응 체계를 지원하는 방역통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환자 발생부터 이동 경로, 검사 결과, 격리 정보, 병상 가용 현황 등 방역에 필요한 주요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플랫폼에서 수집된 감염병 빅데이터는 연구자들에게 개방해 민간연구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정보의 디지털화는 단순한 시스템 개선을 넘어 국민 건강을 지키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염민섭 한국보건의료정보원 원장은 “디지털 기술이 국민 건강을 지키는 든든한 안전망이 되고 있다”며 “국민이 언제 어디서나 끊김 없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건의료 정보화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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