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만나는 ‘대만 감성’…따뜻함과 개방성을 읽다

서울국제도서전 대만관 운영
문학·이미지 등 6개 존 구성
작가 23명 참여…역대 최대
수상작 등 도서 550종 선봬

좁은 골목 사이로 젖은 공기 냄새가 감돌고, 예고 없이 비가 내린다. 이따금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까지, 대만 하면 떠오르는 특유의 분위기다. 이는 현지인들의 느긋한 걸음과 어딘지 모를 여유와 닮았다. 대만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같은 대만의 정취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들어섰다.

◆대만, 서울국제도서전 첫 주빈국으로

대만감성 부스를 찾은 관람객들.

오는 22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출판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에 대만이 올해의 주빈국으로 참여 중이다. 약 70년간 이어져 온 서울국제도서전에 대만이 주빈국으로 초청받은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이와 관련 ‘대만감성(臺灣感性)’을 주제로 대만관을 운영한다. 약 360㎡ 공간에 타이완의 따뜻함과 개방성, 심미적 매력을 가득 담았다. 대만관은 행사장인 코엑스 홀A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찾기 쉽다.

이번 행사에 참가하는 대만 작가는 총 23명이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이들 작가는 다양한 장르와 세대, 스타일을 아우르며 타이완 문학의 다채로운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 개막식에는 대만과 한국 출판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방한한 23명의 작가들이 모두 모여 방문객들과 만났다. 평소 대만 문학을 즐기던 팬들과 국내에 거주하는 대만 유학생 등은 작가들을 알아보고 즉석에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요청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대만의 퀴어문학을 대표하는 천쉐(陳雪)도 첫 방한에 나서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같이 산 지 십년’, ‘마천대루’ 등으로 저명한 작가다.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개막의 순간… 문재인 전 대통령도 방문

타이완문학상 수상 작가 장자샹이 이끄는 밴드 촹콰렁이 축하 공연에 나서고 있다.

오프닝 세레머니도 눈길을 끌었다. 타이완문학상 수상 작가 장자샹이 이끄는 밴드 촹콰렁(Tsng-kha-lang)이 축하 연주에 나섰다. 문학과 음악이 어우러진 특별한 퍼포먼스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촹콰렁의 공연은 현장을 방문한 한국 관객들에게 큰 박수와 함성을 이끌어냈다. 개막과 함께 대만관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입장하기 위한 줄도 길게 늘어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깜짝 방문했다. 대만관 인근에는 문 전 대통령이 운영하는 ‘평상책방’ 부스가 들어왔다. 문 대통령은 70여년의 전통을 이어온 서울국제도서전에 처음으로 주빈국으로써 참여한 대만을 축하했다.

앨리스 장 대만크리에이티브콘텐츠진흥원 부대표는 이날 현장에서 “85곳 이상의 타이완 출판사에서 엄선한 550여 종의 도서를 선보인다”며 “전시 도서에는 다양한 수상작과 함께 타이완 출판계의 창의성과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대만의 문화와 역사, 책으로 연결되다

문학 존에서는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한글판과 대만판으로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전시관 내부에 들어서니 다양한 키워드를 통해 문화적 연결을 촉진하는 풍부하고 몰입감 넘치는 경험을 안기고 있었다. 대만관은 ▲문학 ▲라이프스타일 ▲이미지 ▲땅과 여행 ▲음식과 엔터테인먼트 ▲공유된 역사의 테마 등 6개 존으로 구성됐다.

특히 문학 존에서는 대만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이들의 작품이 기다린다. 대만판과 한국어판으로 나란히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시돼 있다. 같은 책이지만 서로 다른 표지를 통해 양국의 같음과 다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대만 역시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만은 이후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사를 겪었다. 이같은 대만의 역사와 상황을 소개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됐다. 각 연도별 대만 정치, 사회 등에 영향을 미친 이슈들을 정리해 관련된 책을 전시해 역사에 관심이 많은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대만이 한국인들에게 인기 여행지라는 점에 착안, 대만의 문화적 가치나 장소를 알아볼 수 있는 관련 도서들을 전시해두기도 했다.

◆감성 건드리는 ‘그림책’… 이 밀크티, 대만 브랜드였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대만 간식들을 전시해 둔 공간도 인기였다. 평소 즐겨먹던 밀크티와 간식이 알고 보니 대만 브랜드였다는 것을 알게 돼 놀랐다는 방문객이 많았다. 이 공간은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남기기 위한 인기 장소로 꼽혔다.

이번 부스에서 특히 눈길을 끈 곳은 ‘그림책 존’이었다. 최근 어른들이 힐링하기 위해 의외로 그림책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만은 특유의 스토리텔링과 수준 높은 출판편집 기술로 감성적인 그림책을 출판하고 있다. 특히 그래픽노블(그림소설)과 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국가다.

이곳에서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대만 대표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집과 만화책 등을 구비해 대만의 색다르고 창의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녀와 함께 방문한 부모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방문자들이 대만의 독창성에 푹 빠졌다.

◆작가와의 만남, 풍성한 강연 준비했어요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대만과 한국 출판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올해 주빈국으로 방문한 대만 측은 평소 직접 만나기 어려운 대만 작가들을 한데 모아 풍성한 강연도 마련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이 진행되는 동안 매일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방문객들과 만난다.

지난 18일에는 린롄언, 황이원, 저우젠신 작가가 강연했다. 세 사람은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인권이라는 진지한 문제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이를 그림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어떻게 표현하는지 작가 개인의 생각과 창작 과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도 오갔다. 이를 통해 그림책이 탄생하기까지의 숨겨진 스토리들을 공유했다.

한국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우밍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 ‘복안인’을 통한 문학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밍이 작가는 때때로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으며 농사까지 짓고,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친다고. 2018년 한강과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로도 올라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작가다. 그는 담백하면서도 특유의 덤덤한 톤으로 역사와 대만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 넣은 자신의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풀어놨다.

이밖에 서정적인 손그림을 선보이는 천페이슈,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논픽션 부문 대상을 수상한 아포,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에 빛나는 마니니웨 등의 작가 강연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방문객 대상으로 진행된 스탬프 투어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몰리며 입장만큼 긴 줄이 이어졌다. 이벤트는 대만감성을 체험하기 위한 일련의 여정으로 구성됐다. 대만관 내 6개 키워드존을 방문해 특별 제작된 한정판 기념 도장을 찍으면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또 스티커 사진기로 특별한 추억도 남길 수 있다.

현장을 방문한 한 대학생은 “평소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 독립서점도 많이 다녔다. 간간히 대만 작가들의 책을 보면서 한국과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겨 대만관까지 찾아왔다”며 “가깝지만 대만 문학을 잘 접할 수는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말 많은 색깔과 다양성을 지닌 대만 문학의 면모를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소감을 말했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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