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승 멀어졌지만, 놓을 수 없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우승한 지 딱 1001일째 되는 날.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1001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기운, 기대감도 넘쳤다. 하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너무도 아쉬운 순간, 그는 활짝 웃었다. 우승은 놓쳤지만,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2025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 최종 3위에 오른 최진호의 스토리이다.
최진호는 15일 경기도 안산시 더헤븐CC 웨스트-사우스코스(파72, 7293야드)에서 열리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2025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3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1언더파 71타의 성적표를 냈다. 4라운드 동안 유일하게 70타가 넘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이날 타수를 줄이지 못하면서 결국 17언더파 271타로 단독 3위로 대회를 마쳤다.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1라운드부터 맹렬한 기세로 달렸다. 이글 2개를 작렬했고, 버디 4개를 몰아쳤다. 무엇보다 보기가 단 1개도 없었다. 2라운드 3언더파로 선방한 그는 3라운드에서도 기세를 이어갔다. 1라운드에 이어 또 한 번 이글 2개를 기록하며 5언더파를 기록,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이날 초반까지도 우승이 점점 다가오는듯 했다. 보기 없이 버디 2개를 기록하며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후반 14번 홀(파4)까지도 노보기 플레이를 이어갔다. 우승컵이 보이기 시작한 그때 흔들렸다. 15번 홀(파3)에서 스리 퍼트가 나왔다. 16번 홀(파4)까지 영향을 받았다. 이번에도 스리 퍼트였다. 이번 대회 1∼3라운드 동안 한 번도 보기를 범하지 않았던 15, 16번 홀에서 뼈아픈 보기가 나왔기에 아쉬움이 컸다.
포기하지 않았다. 17번 홀(파4) 프린지에서 시도한 약 4m 퍼트가 홀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선두와 2타 차 공동 3위. 우승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윙 하나, 퍼트 하나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렇게 마지막 18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단독 3위로 대회를 마쳤다.

대회 종료 후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최진호는 뜻밖의 환한 웃음으로 “우승하고 인터뷰를 했어야 하는데, 아쉽네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우승에서 멀어지면, 경기를 놓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에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며 “이제 아이들이 커서 갤러리로 온다.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깐 쉽게 포기할 수가 없더라.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마무리를 잘한 것 같다. 아쉽지만, 만족한다”고 또 한 번 미소 지었다.
최진호는 세 아들의 아빠다. 장남은 벌써 중학생이고, 둘째와 셋째는 초등학생이다. 이날 아들들은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나와 아빠를 응원했다.
마지막 15, 16번 홀 두고두고 아쉽다. 최진호는 “체력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데뷔 20년 차가 코앞인 최진호는 마흔을 넘겼다. 체력적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시즌 종료 후 100㎞를 나눠 달렸다. 비시즌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을 단련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시즌을 마감하고 매일같이 달리고 또 달렸다.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성적이 오르고 있다. 지난주 백송홀딩스-아시아드CC 부산 오픈에서 공동 9위에 오르며 올 시즌 개인 첫 톱10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이번 주에도 시즌 최고 성적인 3위를 차지한 것이다. 최진호는 “사실 지난해에는 체력 안배 차원에서 연습 라운드를 보통 건너뛰었다. 하지만 올해는 모두 참가하고 있다”며 “이번 대회 최종 라운드 마지막이 아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체력을 보완한 효과가 큰 것 같다”고 전했다.

후배들과의 경쟁 쉽지 않다. 그는 “젊은 선수들이 너무 잘한다. 실력도 좋고, 인성도 좋다. 우리 때보다 골프를 잘 배운 것 같다”며 “이런 후배들이 있어 선배 입장에서 뿌듯하다. 앞으로도 후배들과 재미있게 하고 싶다”고 전했다.
그래도 경쟁이다. 최진호는 “어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고 혀를 내두르더니 “경기 노하우나, 운영 등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잘해야 할 것 같다. 컨디션 조절도 잘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실 골프를 하면서 많은 굴곡을 겪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투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라며 “실력 자체가 없으면 경쟁이 안된다. 어린 선수들과 경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앞으로도 즐거운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안산(경기)=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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