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과 맞물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외교·통상 분야에서 ‘돌발 변수’의 파고를 마주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국제적 통상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경제외교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국내 수출산업 보호를 위한 무역안보 단속체계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들에게도 예외 없는 관세 정책을 펼쳤다가 일정 기간 유예해주면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도 그 대상국이다. 10% 기본관세 외에 품목별 25% 추가 관세 부과가 유예된 시한은 7월8일. 미국은 이미 우리 정부에 ‘최상의 제안’을 7월 패키지 협상 타결 시한인 다음달 4일까지 제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직후 협상안을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
이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통화를 통해 조속한 협상 의지를 밝혔고, 양국 실무 라인은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지금부터 한 달 사이 모든 쟁점을 결론내기엔 무리”라는 진단이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협상 시점을 조율하며 협상 지침부터 제대로 다듬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 양국 간 협상 테이블에는 무역 균형, 비관세 장벽, 디지털 교역 등 6개 분야가 올라와 있다. 관세 유예 시점을 마지노선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많다.
최석영 전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는 “강대국과의 협상일수록 일괄 타결 방식이 효과적”이라며 “몇 가지라도 먼저 합의해 유예 연장을 확보하고, 나머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으로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내부 준비도 절실하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주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정부조직 개편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관심의 초점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통상교섭본부의 독립 여부다. 트럼프발 관세 이슈가 가시화되면서 통상 기능을 부처에서 분리해 독립 부처 또는 청 단위로 격상하자는 주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통령실 내에 ‘통상수석비서관’ 신설도 거론된다. 이는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 구축 구상의 연장선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산업과 통상 정책을 따로 떼어내기보다는 통합적으로 수립·집행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본다. 보호무역주의, 공급망 재편, 미중 갈등 등 이슈들이 얽히면서, 산업과 통상을 동시에 판단할 수 있는 전략적 대응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일정도 여전히 유동적이다. 7월 8일 이전 캐나다 G7 정상회의(15~17일)나 네덜란드 나토 정상회의(24~25일)에서 한·미 정상의 첫 대면이 성사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할 핵심은 반도체 공급망 협력, 조선·에너지 분야 투자, 농축산물 비관세 장벽 철폐 등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 조선과 LNG 같은 분야부터 빠르게 합의를 도출하고, 농축산물처럼 민감한 이슈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대통령은 G7 참석 전인 12~13일 사이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회동도 추진 중이다. 당사자인 수출 기업들의 목소리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사로 보인다. 참석 대상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취임 당일 만찬을 연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빠른 행보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대외 통상의 격랑 속에 출범한 새 정부에 대한 업계 기대가 크다”며 “미국발 통상 이슈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역량을 총동원해 실리와 국익 중심의 협상으로 수출 기업들의 숨통을 틔워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한미 협상은 미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대중 외교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 동맹 참여를 노골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통상 리더십은 단기 협상력보다는 중장기 전략 설계에 달렸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첫 협상에서 성과보다 중요한 과제로 우리 입장을 명확히 정립하고 산업계와 공조하는 것이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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