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한국 프로스포츠 감독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처럼 느껴졌다. 프로야구 정규시즌 최다승(1554승),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0회)에 빛나는 김응용 감독, 프로배구 삼성화재를 이끌며 V리그 7연패를 빚은 신치용 감독, 프로농구 최장수(19년) 사령탑 기록 보유자인 유재학 감독, 전북에서만 역대 최다 223승을 쌓아 올린 최강희 감독까지.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발휘했던 명장들이 즐비했다.
세상이 급변했다. 현직 감독들은 각자의 자리에 좌불안석의 마음으로 앉아 있다. 성적이 안 나면 잘리는 게 당연한 프로의 세계라지만, 예전이었으면 안정권이었을 성적도 이제는 어림없다. ‘파리 목숨’으로 불리는 감독직의 무게는 갈수록 가벼워진다.
성적표의 숫자만큼이나,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축구 해설위원 A는 “승강제가 도입되면서 구단, 감독들의 성적 압박감이 더 커졌다. 그 속에서 부진을 거듭한다면, 원인이 여러 가지라도 구단 입장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감독에게 그 몫을 씌우는 것”이라며 “감독 값어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직언했다.
각 종목, 구단을 상징하는 슈퍼스타들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남자프로배구 B단장은 “사회가 수평적인 분위기로 가고 있는 건 좋은 방향이다. 스포츠판에서의 문제는 수평을 넘어 역으로 수직 관계가 생긴다는 점”이라며 “갑과 을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예전에는 선수가 감독 무서워 피해 다녔다면, 지금은 반대로 감독이 선수 눈치를 본다”고 토로했다.
이어 “어느 종목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독을 스킵하고 구단 사무국 심지어는 모기업과도 직접 소통하는 선수들이 있을 정도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경기장 안의 일만큼은 감독에게 맡겨져야 하는데, 그게 무너진다. 감독들이 손 쓸 수 없는 일이 요즘은 너무나 많다”며 장수 감독이 나올 수 없는 세태를 지적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스포츠계에도 이미 깊숙이 침투한 데이터 열풍도 영향을 미친다. 탁월한 재능과 순간적인 직감, 재치 등으로 성공했던 스타플레이어들이 명감독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도 꼽힌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야구의 모든 게 수치로 정리되지 않나. 그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선별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단순 이름값만으로 장수 감독, 명장이 되기 힘든 세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거스르기 힘든 시대의 흐름, 이에 지도자들이 적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프로배구 B단장은 “전술, 전략 잘 짜는 감독도 당연히 중요하다. 트렌드를 못 따라가니 한국 스포츠가 국제대회에서 이렇게 도태되고 있지 않나. 지도자들도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면서도 “거기에 선수단을 잘 다루는 말 그대로 ‘매니징’ 능력도 갖춰야 한다. 고루 갖춘 팔방미인이 필요해졌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지만, 그것이 현실”이라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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