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님 퇴근 시간은 보통 일반 선수들보다 2∼3시간 늦습니다. 당일 경기 내용을 체크하기도 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감독 퇴근 시간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팬들이 있습니다. 사인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응원을 해주려는 것도 아닙니다. 감독님께서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숨어서 ‘나가!’, ‘아웃!’이라고 소리칩니다. 이 소리에 감독님께서 돌아보면 숨어버립니다. 이 장면을 영상으로 몰래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립니다.”
한 프로스포츠 구단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경기장 안은 물론 밖에서도 팬심을 실시간으로 마주하는 세상이 됐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선 경기장은 물론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팬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접할 수 있다.
비난하고 욕설을 하는 팬은 프로 스포츠 역사와 함께한다.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팬덤이 형성됐고, 이를 통해 집단 행동을 하고 있다. 선수단 퇴근길에 우르르 몰려가 구단 버스를 가로막고 ‘감독 나가!’를 한목소리로 외친다. 구단 사무실이나 경기장 앞에는 시위 트럭을 보낸다. 경기장에선 걸개를 걸거나 피켓을 들고 감독이나 구단을 향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런 단체 행동은 팬 간의 네트워킹이 빠르고 단단해지면서 늘어나고 빈번해지는 추세다.

실제 구단 버스 가로막기는 부진에 빠진 팀이라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진다. 지난해 5월 수원 삼성이 연패에 빠지자, 팬들은 경기장에 염기훈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걸개를 걸었고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았다. 결국 염 감독은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불과 5개월 만에 자진해서 지휘봉을 반납했다. 프로야구에선 ‘이승엽(전 두산) 나가!’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프로농구에서도 올해 소노 팬들이 트럭 시위와 함께 경기장에서 김태술 전 감독의 사임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김 감독은 부임 5개월 만에 경질됐다.
팬심으로 먹고사는 프로스포츠계에서 팬과의 소통은 필수적이다. 구단이 팬들의 의견을 마냥 외면할 수 없는 배경이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팬들의 입김이 세졌다. 과거보다 팬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고 다양해졌다. 긍정적인 반응이라면 좋겠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라면 감독과 구단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고, 구단도 팬의 눈치를 보며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팬들의 행동이 언제부터인가 과도해졌다는 시선도 있다. ‘분풀이’와 ‘모욕주기’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특히 프로야구가 흥행하면서 신규 팬들이 군중심리에 따라 어긋난 팬심을 학습할까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구단 관계자는 “팬들의 애정은 이해하지만 과거보다 잣대가 높아지고 시위가 빈번해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팬들이 시위했을 때 감독님뿐만 아니라 선수들까지 많이 힘들어했다. 직접 보니까 위축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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