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내 ‘미완(未完)’의 3년이었다. 채우지 못한 숙제를 남긴 채, 프로야구 두산과 이승엽 감독의 동행이 막을 내렸다. 이 감독은 2일 자진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구단은 이를 수용했다. 당장 하루 뒤인 3일 잠실 KIA전부터는 조성환 퀄리티컨트롤(QC)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끈다.
경기가 없는 휴식일인 이날 오후 구단 사무실을 찾은 이 감독은 프런트 수뇌부와의 면담을 거쳤고,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2025시즌 23승3무32패(승률 0.418)를 기록, 리그 9위에 자리했다.
거듭되는, 완연한 하락세에 고개를 떨궜다. 투타에 걸친 총체적 난국이다. 득점의 경우 3, 4월(148·4위)에 비해 5월(113·8위)서 떨어지는 지표를 보였다. 반면 마운드에선 실점이 3, 4월(152·5위)과 5월(117·4위) 사이 반등의 근거를 찾지 못한 게 뼈아팠다.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받아 든 변화다. 침체된 흐름 속에서 이 감독이 먼저 결단을 내렸고, 두산 수뇌부 역시 받아들였다. 두산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조 감독대행과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지금 당장은 후임 감독 선임 계획은 없다. 조 감독대행 체제로 당분간 팀을 운영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이 곰 군단 지휘봉을 잡은 지 세 번째 시즌이었다. 그는 2022년 10월 계약기간 3년(총액 18억원) 조건으로 두산 사령탑 자리에 앉았다. 선수 시절 KBO리그와 일본프로야구(NPB), 그리고 국가대표를 넘나들며 ‘국민타자’ 애칭을 얻었지만, 지도자 경력이 전무했던 이 감독에게 있어 파격적인 대우였다.
뿐만 아니라, 큼지막한 취임 선물도 받았다. 구단에서 2차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포수 양의지의 복귀를 152억원의 거액을 들여 성사시킨 것.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를 품에 안았다.
수많은 기대와 시선을 안은 채로 맞이한 첫해, 정규리그 5위(74승2무68패)로 가을야구 막차를 탔다. 지도자로서 처음 대면한 단기전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와일드카드(WC) 결정전서 NC 상대로 덜미를 잡히며 수장 데뷔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듬해 정규리그서 직전 시즌과 같은 성적(74승2무68패)을 냈지만 최종 순위는 한 계단(4위) 더 올라섰다. 두 시즌 연속 포스트시즌(PS) 진출 성과다. 하지만 동시에 두 차례 모두 WC 결정전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셨다. 특히 2024년의 경우 5위 KT에 맞서 홈 잠실서만 2연패(0-4, 0-1)를 당하는 수모를 떠안았다. KBO리그 역사상 WC 제도 도입 이후 정규리그 4위팀 최초로 준플레이오프(준PO) 진출에 실패한 사례다.

수장은 물론이고, 구단과 팬들에게 있어 큰 상흔을 깊게 남긴 가을이었다. 불면의 밤으로 가득했다. 당시 이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취재진과 만나 “한 달이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며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았을 정도다.
이윽고 3년 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수의 진’을 쳐야 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코칭스태프에도 큰 변화를 단행했다. 두산은 기존 박흥식 수석코치, 김한수 타격코치를 비롯해 이정훈 퓨처스팀(2군) 감독 등과 재계약하지 않은 바 있다.
지난 2월 일본 미야자키 스프링캠프지를 찾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4위, 5위 하려고 야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베어스다운 야구로 팬들에게 보답해 주길 바란다”고 뼈 있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명예회복 도전에 나섰다. 시즌 전 이 감독의 다짐은 강렬했다. 지난 1월15일 잠실에서 열린 창단 기념식 당시 “우리를 향한 평가가 잘못됐다는 걸 증명해 보겠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한국시리즈(KS)를 향한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활기 넘치고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만들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더그아웃 분위기 쇄신까지 강조하며 새출발을 기약했지만, 올 시즌 결국 뚜렷한 반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팬들의 원성과 질타도 나날이 커져갔다. 5월 중순부터는 팀 전체가 크게 삐그덕댔다.
이 시기 한 달 동안 베테랑 타자들을 필두로 득점권 빈타(타율 0.234·8위)에 시달렸고, 야심 차게 데려온 외국인 1선발 콜 어빈(5경기 6사구)은 제구 난조 및 태도 논란을 빚어내며 좀처럼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다. 직전 시즌까지도 빅리그 선발투수로 활약했던 어빈은 현재 1군 엔트리에 없다. 이 감독은 그렇게 쓸쓸한 퇴장을 선택해야만 했다.
두산 사정에 능통한 한 관계자는 “계속해서 ‘허슬 두’ 재현을 외쳤지만, 그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팬들도 경기력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고, 팀 내부적으로도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걸로 안다. 처진 분위기를 바꾸려면 결국 경기력으로 보여주는 게 해답”이라고 귀띔했다. 세 시즌의 여정 속 완벽하지 못한 마침표가 찍힌 지금으로선 조 감독대행 체제가 얼마나 빠르게 팀을 추스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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