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병드는 韓스포츠] 선수는 감정 배출구가 아닙니다… 악플에 ‘휘청’ 韓스포츠

한국 축구 대표팀이 지난 3월 25일 경기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8차전 요르단전에서 비기고 벤치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大)마녀사냥’의 시대다. 툭하면 유명인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악플로 폭발했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없다.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거나, 부진의 늪에 빠진 선수들은 일순 마녀로 지목된다. 먼 옛날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마녀로 몰린 이들이 끝내 맞이한 화형처럼, 그들의 SNS에는 뜨거운 불길이 솟구친다.

 

단순한 경기력 지적에서 멈추지 않는다. 선수 본인은 물론 부모·형제·배우자·자녀들을 타깃으로 욕설을 일삼는 게 기본이 됐다. 극단적인 경우 직접적인 협박을 비롯한 인신공격, 인격모독성 발언이나 남녀 선수를 가리지 않는 언어 성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선수들은 입을 모아 “공인으로서 팬들의 비판 대상이 되는 건 숙명이다. 하지만 선 넘는 비난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가족들까지 피해가 가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토로를 쏟아낸다. 법적 대응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꺼낼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악플에 직접 피해를 본 선수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우울증, 공황장애, 대인기피증 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정도다. 생계가 걸린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 못할 정도의 깊은 트라우마가 남기도 하고,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까지 있을 정도다.

 

악플로 공황장애를 겪은 모 프로선수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구단 관계자는 “인터뷰나 외부 행사, 이벤트를 일절 고사하는 건 당연하다. 사람들 눈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어했고, 경기장에 서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경기력에 어떻게 영향이 없겠는가. 동료로서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우리가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는 고충을 전하기도 했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이 한일전에서 패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악플은 인터넷과 함께 생겨난 오래된 사회 문제다. 다만 SNS가 일상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가 확대되는 사회적 변화로 인해 선수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는 현상이 더 또렷해진다는 분석이다.

 

프로야구 A구단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선수들에게 닿을 수단이 많아졌다. 포털 기사에 적는 댓글보다 선수 SNS로 직접 보내는 DM(다이렉트 메시지)의 데미지가 훨씬 크다”며 “비난을 위한 비난이 목적인 악플러들에게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부계정, 가계정도 많아졌다. 선수들이 비정상적인 악플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를 드러냈다.

 

선수들의 멘탈 코칭 프로그램, 상담 센터 등을 기획했던 한 협회 관계자는 “확 커진 온라인 커뮤니티도 마녀사냥 분위기를 형성하는 주요 원인이다.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댓글을 달며 의견을 내는 ‘헤비 유저’는 사실 소수다. 개중에는 신빙성이 없는 루머나, 추론도 많다. 그런 소수 의견이 여러 커뮤니티를 거치며 확대·재생산 되면 어느새 여론 혹은 팩트처럼 둔갑해 있다. 특정 선수에 대한 비난 분위기도 그렇게 손쉽게 형성된다”고 현상을 진단했다.

 

자정 작용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진다. 복수의 체육계 관계자들은 “들끓는 분노를 이유 없이 선수들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확증편향을 경계하고 신빙성 있는 정보들을 잘 가려냄으로써 근거 없는 루머와 원색적인 비난이 재생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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