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유세차 위,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노래 한 곡이 군중을 웃게 하고, 박수치게 하며,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선거송은 정치적 구호의 배경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권자에게 말을 거는 하나의 메시지다.
가사가 아무리 허술해도, 멜로디가 익숙하기만 하면 괜찮다. ‘믿어주세요’, ‘같이 갑시다’, ‘바꿔!’라는 후렴구는, 정치인의 이름이나 정책보다 더 빠르게 귀에 꽂힌다. 이렇듯 선거송은 대중가요의 정서를 정치 언어로 탈바꿈시키는 흥미로운 ‘문화적 장치’다.
총선과 대선 시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트로트, 댄스, 애니송, 심지어 발라드까지. 정당은 음악의 인지도를 빌려 자신들의 이미지를 ‘캐주얼화’하고자 한다. 이정현의 〈바꿔〉가 그랬고, 영탁의 〈찐이야〉가 그랬으며, 심지어 싸이의 〈강남스타일〉조차 개사돼 유세 현장을 누볐다.
이는 단순히 ‘유명한 곡을 쓰자’는 전략이 아니다. 선거송은 유권자의 일상 속 감정 구조와 닿아야 한다.
정치 메시지는 점점 거칠고 복잡해지지만, 음악은 정서적으로 그것을 단순화해준다. ‘즐겁다’, ‘신난다’, ‘믿고 싶다’, ‘기대된다’ 같은 감정을 유도하며 선거 캠페인의 공기 자체를 가볍게 만든다.
예를 들어 송대관의 트로트 〈해뜰날〉이 과거 모 정당의 선거송으로 쓰일 때, ‘이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정권 연장의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반면 이정현의 〈바꿔〉는 정반대의 맥락에서 쓰인다. 정권교체, 정치쇄신, 반기득권의 함성이다. 같은 음정이지만, 사용되는 정당에 따라, 전혀 다른 정치적 함의를 띠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선거송은 선곡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선언이며, 선거에 대한 당의 태도와 전략을 보여주는 문화적 코드다.
2025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가 선택한 곡이 있다. 애니메이션 《근육맨 2세》의 주제곡이자, 인터넷 밈으로 부활한 〈질풍가도〉다. 빠른 비트, 질주하는 느낌, 그리고 무언가를 뚫고 나가는 뉘앙스는 ‘정치혁신’, ‘돌파’, ‘승리’라는 상징을 내포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곡이 이미 어느 한 정당의 고유한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던 상황에서 상대 정당도 같은 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선거 마케팅을 넘어선 문화적 쟁점이다. 정치적 지지자들은 곡에 담긴 감정과 상징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이미 내 편의 노래라고 생각한 곡이 상대편의 입에서 울려 퍼질 때, 그 감정은 과연 공유될까, 혹은 도용당했다는 느낌일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언제나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정치가 음악을 사용할 때, 그 노래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다.
만약, 당신이 열광했던 선거송이 ‘상대 진영’의 유세차에서 똑같이 흘러나온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이는 단순한 저작권 이슈가 아니라, 정치 정체성과 감정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다. 질풍처럼 달리겠다는 노래처럼 과연 어느 쪽의 깃발 아래에서 그 노래가 더 어울릴까? 고민해보자.
이제 선거송은 더 이상 배경음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그 자체이고 노래에 어울리는 진짜 후보를 선택하는 일이다.
이승훈 작가(시시콜콜 세상 이야기를 음악으로 말하고 싶은 중년의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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