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 유산 잇는 레오 14세…분열된 교회서 ‘다리 역할’ 주목

새 교황 레오 14세,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 무덤 참배
전날엔 “프란치스코 교황 유산 이어가야”
개혁적 성향이지만 중도적 스타일
가톨릭 내 개혁파-보수파 사이서 균형 잡을 듯
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9일 시스티나 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새 교황 레오 14세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무덤을 찾았다. 취임 후 처음으로 추기경들을 만난 자리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을 이어가자고 강조하는 등 전임자의 개혁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란치스코 교황 유산 이어가야”

 

11일 교황청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에 안장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리석 무덤 위에 흰 꽃 한송이를 놓고 잠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레오 14세 교황이 이 성당에 있는 성모 성화 앞에서도 기도했다”고 전했다. 참배에 앞서 교황이 성모 대성전에 나타나자 신자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레오 14세 교황이 11일 바티칸 외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아래 프란치스코 교황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생전에 성모 대성전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후 자신이 묻힐 곳으로 역대 교황 91명이 안장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이 아닌 성모 대성전을 지정했다. 로마의 4대 성전 중 하나로 로마에서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최초의 성당으로 널리 알려졌다. 현재도 수많은 신자가 프란치스코 교황 참배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레오 14세는 지난 10일 바티칸 시노드홀에서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처음으로 모든 추기경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첫 공식 연설에서 레오 14세는 추기경들에게 “여러분은 제 능력을 넘어서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저를 도와주고 있다”며 “저는 단지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라고 교황이 특권이 아닌 봉사를 위한 자리임을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자세는 많은 전임자가 보여주셨다”며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봉사에 완전히 헌신하고, 절제하고 본질만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잘 드러내 주셨다”고 설명했다.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아 여정을 계속하자”고 당부했다. 전임 교황의 비전과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하며 레오 13세가 추구한 가치를 잇겠다고도 강조했다. 레오 14세는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인공지능(AI)의 발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교황명을 레오로 선택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1878~1903년 재임한 레오 13세는 1891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사회 문제만을 다룬 노동헌장 회칙을 반포해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초석을 놓았다. 문헌의 첫 구절을 따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새로운 사태)’이라고 불리는 이 회칙은 산업화 시대 노동자 권리와 자본주의 문제를 다루며 노동자의 정당한 임금과 인간다운 노동 조건 보장의 필요성 등 공동선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재임 후반 AI가 인류에 미치는 위협을 경고하며 국제 협약을 통한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살상 무기 사용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사람 대신 기계가 내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9일 선출 직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강복의 발코니'에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이민자·빈민 품어왔지만 ‘중도파’ 평가

 

콘클라베 네 번째 투표에서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이다. 초강대국 출신 교황을 꺼리는 바티칸의 전통적인 금기를 깬 이례적인 결과다. 레오 14세는 미국 국적이지만 20년간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2015년 페루 시민권도 취득하고 같은 해 페루 대주교로 임명됐다. 미국인이면서도 빈민가 등 변방에서 사목한 발자취가 교황 선출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레오 14세는 2023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주교 선출 등 인사를 총괄하는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교황청 주교부는 신임 주교 선발을 관리·감독하는 조직으로 교황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 중 하나로 꼽힌다. 레오 14세는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교황으로 평가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이민자와 빈곤층에 대한 관심 또한 많아 기본적으로는 개혁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까지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다만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프란치스코 교황보다는 신학적으로는 중도적이고 신중한 스타일로 알려졌다. 때문에 가톨릭 내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인물로 평가된다.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만큼 개방적이진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영국 BBC는 “서로 다른 세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선출 직후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강복의 발코니'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027년 한국 방문 예정…레오 14세, “韓 좋은 인상”

레오 14세는 2027년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청년대회(WYD)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차기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바 있다. 전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 대축제인 세계청년대회는 교황과 청년들이 만나는 행사로 유명하다. 2~3년에 한번씩 7~8월 무렵 열린다. 레오 14세가 한국에 오면 교황의 역대 4번째 방한으로 기록된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은 새 교황 선출 직후 “레오 14세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총장 시절에 네 차례(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 한국을 방문했다”며 “그 당시 경험에 대해 말하면서 ‘좋았다’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전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는 오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지동현 기자 ehdgus1211@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