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빈자리,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다.
프로야구 롯데가 악재를 마주했다. 내야수 전민재가 경기 도중 다친 것. 29일 고척 키움전이었다. 7회 초 상대 불펜 투수 양지율의 140㎞짜리 투심에 헬멧을 맞았다. 얼굴, 특히 눈 부위였기에 우려가 컸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다만, 우측 안구 쪽에 전방내출혈이 발견됐다. 약 7일간은 안정이 필요하다. 워낙 페이스가 좋았기에 개인적으로도, 팀적으로도 아쉬움이 컸다. 올 시즌 30경기 나서 타율 0.387 맹타를 휘두른 바 있다.
공석이 된 유격수 자리. 김태형 롯데 감독이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이호준이다. 30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의 ‘2025 신한 쏠뱅크 KBO리그’ 원정경기에 9번 및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공격보다는 수비 쪽에 중점을 둔 선택이었다. 일찌감치 탄탄한 수비로 눈길을 모았다. 타격은 아직 적응해가는 과정이다. 데뷔 시즌이었던 지난해 12경기서 타율 0.333을 기록,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 시즌은 이날 경기 전까지 23경기서 타율 0.200을 마크했다.

이호준은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보란 듯이 맘껏 방망이를 휘둘렀다. 4타수 3안타 2타점 2득점 등을 올리며 펄펄 날았다. 시즌 두 번째 멀티히트. 3안타 경기를 펼친 것은 입단 후 처음이다. 심지어 단타, 2루타, 3루타를 차례대로 뽑아냈다. 홈런이 더해졌다면 내추럴 사이클링히트까지 세울 뻔했다. 내추럴 사이클링히트는 1996년 김응국, 2024년 김도영 등 리그서 역대 두 명만이 밟은 대기록이다. 아쉽게 진기록은 무산됐지만 10-9 승리의 주역이 됐다.
처음부터 주전인 선수는 없다. 전민재만 하더라도 지난해 11월 트레이드로 둥지를 옮긴 뒤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호준 역시 한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과거 수비 실책을 범해 멘탈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런 기억들이 모여 또 하나의 자양분이 된다. 이호준은 “1군에서 3안타를 치니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내심 사이클링 히트도 노려보고자 했을 터. 이호준은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다. 욕심을 조금 냈던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전민재와는 친한 선후배 사이다. 더욱이 전민재의 페이스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다. 이호준은 “어제 경기 끝나고 호텔에서 마주쳤는데 마음이 아팠다”고 운을 뗀 뒤 “(전)민재 형이 그냥 잘한 게 아니라 엄청 잘하지 않았나. 못하면 어쩌지 싶더라. 결과가 나와 기분 좋다”고 전했다. 목표는 역시 1군 생존이다. “민재형과도 열심히 경쟁해서 시즌 끝까지 1군에 남아있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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