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텅 빈 객석을 두고 온라인으로 공연했던 가수들에게도, 모니터를 바라보며 집관(집에서 관람하는 공연)할 수밖에 없었던 관객에게도 짜릿한 해방감이 뒤따랐다. 대면 공연의 재개는 공연 업계에 희소식이었다. 2022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역대 최다 관객 수(13만명)를 갈아 치웠고, 해마다 관객 수를 경신해 지난해는 무려 15만 관객을 동원했다.
특히 물을 만난 장르는 밴드 음악이다. 그간 비용, 라이브 등의 이유로 음악방송에서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던 밴드 라이브는 현장에서 직관할 수 있는 생동감과 어우러져 진가를 발휘했다. 폭발적인 사운드와 풍성한 연주, 야외의 온도와 습도, 분위기까지 오롯이 전달된다. 올해도 긴 겨울을 지나 꽃이 피어나는 봄이 찾아오자 음악 페스티벌의 물결과 함께 밴드계에도 꽃길이 펼쳐졌다.

◆데이식스부터 드래곤포니까지…밴드붐은 왔다
‘밴드 붐은 온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왔다. 밴드 음악의 진가를 아는 이들이 바라는 소망의 표현이다. 그리고 지난해 진정한 밴드 붐이 실제로 찾아왔다. 음원차트에 줄기차게 오르내렸고, 밴드를 필두로 한 각종 페스티벌은 나날이 흥했다.
2015년 데뷔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데이식스의 역할이 컸다. 군 복무로 인해 공백기에 예뻤어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이 음원차트 역주행의 신화를 이루며 밴드 열풍의 선두에 섰다. 제대 후 발표한 포에버(Fourever), 밴드 에이드(Band Aid)라는 곡까지 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밴드로 거듭났다.
‘모든 순간을 노래하는 밴드’라는 수식어답게 데뷔부터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홍대 소규모 공연장에서 출발해 고척돔을 거쳐 다음달 KSPO돔 6회 공연까지 매진시켰다. 대규모 월드투어도 성황리에 전개하고 있다. 10년간의 노력 끝에 역주행 신화를 정주행 성장 서사로 완성한 대기만성형 밴드다.

밴드 음악을 향유하는 팬덤은 꾸준하고 탄탄하게 구축돼 왔다. 데이브레이크, 소란 등은 수년째 자신들만의 브랜드 공연을 전개하고 있는 장수 밴드들이다. 올해 18주년을 맞은 데이브레이크는 수년 전 침체한 밴드신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온 밴드 붐이 반갑다. 데이브레이크는 “더 많은 밴드가 생겨나고, 멈춰있던 밴드가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이 분위기가 유지되기 위해 더 많은 스타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발맞춰 가겠다”고 반겼다.

2010년 데뷔곡 외톨이야부터 대박을 터트린 씨엔블루는 밴드 대중화에 시동을 걸었다. 라이브를 증명하기 위해 수천만원을 들여 음악방송에 장비를 설치한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15년째 활동하고 있는 강민혁은 최근 불어온 밴드 붐에 대해 “데뷔 시절과 비교하면 음악 문화가 많이 발전한 것 같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며 “밴드 문화와 음악 산업의 성장이 한 번에 몰려왔다”고 바라봤다.

새로운 밴드들의 등장도 밴드 붐을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엔플라잉은 옥탑방이 역주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에는 변우석 신드롬을 몰고 온 드라마 선재 업고 뛰어에 출연한 멤버 이승협까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극 중 밴드 이클립스를 결성해 활동했고, OST로 발표한 소나기라는 곡은 미국 빌보드 차트까지 올라 화제가 됐다. 탄탄한 보컬 라인과 청량한 감성의 음악을 발판 삼아 FNC표 밴드 계보를 잇고 있다.

오디션을 통해 탄생한 루시는 밴드 사운드에 바이올린을 녹여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데뷔곡 개화를 시작으로 알록달록한 루시만의 음악색을 확고하게 다졌다. 청량하고 파릇파릇한 봄의 색깔을 담은 밴드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가운데 2021년 데뷔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는 밴드 음악하면 떠오르는 원초적인 사운드와 강렬한 보컬을 기반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데뷔한 안테나표 밴드 드래곤포니는 “밴드 붐이라는 말 자체가 힘이 된다. 밴드 음악을 지켜준 선배님들 덕분이다. 상승세에 잘 합류해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중도 반기는 밴드 음악, 내한 공연까지 전성시대
과거 밴드 음악이 강렬한 메탈 음악으로 대표됐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도 다양한 장르로 나뉘었다. 밴드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대중의 듣는 귀도 업그레이드됐다. 대중의 음악적 취향과 이해도는 더 넓어졌고, 어렵게만 보이던 밴드 음악은 더 친숙해졌다.
라이브 무대를 만나면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된다. 라이브가 강점이라는 건 실력은 이미 검증되어있다는 의미다. 직접 곡을 쓰고 연주하고 부르는 실력파 밴드들의 등장, 여기에 해마다 확장되는 각종 페스티벌과 대학 축제로 설 자리가 많아졌다. 무대를 준비할 여유도, 즐길 여유도 부족한 음악방송에 비해 페스티벌은 밴드의 자부심도, 무대 위 쾌감도 더 크게 만든다.

야외 공연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밴드 음악의 붐이 일어나면서 세계적인 밴드의 내한 공연도 줄을 잇는다. 지난 16일부터 2주에 걸쳐 라이브 공연을 연 콜드플레이가 신호탄을 쐈다. 8년 만에 내한 공연에 나선 콜드플레이는 스타디움 크기의 공연장을 6회나 채울 정도로 뜨거운 반응 속에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건스 앤 로지스는 16년 만에 한국을 찾아 다음달 인천에서 투어를 연다. 또 오는 10월에는 재결합에 성공한 영국 브릿팝의 전설 오아시스가 2009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내한한다.
페스티벌은 말 그대로 ‘축제’다. 각종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봄, 밴드 공연의 수요는 더 커진다. 현장에서 공연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자 하는 Z세대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대면 공연의 확대와 대중의 관심 속에 본격적인 흐름을 탄 밴드 붐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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