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스트 댄스’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여자프로농구(WKBL) 리빙 레전드 김정은이 “1년 더”를 외친다. 이미 갖은 부상으로 쿡쿡 시린 곳이 많지만, 38세 김정은은 하나은행의 미래와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은퇴를 미뤘다.
하나은행은 지난 9일 SNS를 통해 김정은과 계약기간 1년, 연봉 2억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김정은은 “팀원들의 진심을 생각해 한 시즌 더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서 ”대신 이 선택에 후회 없는 시즌을 보내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난 2월 WKBL 시상식에서 현역 연장에 대한 깜짝 발표를 했지만, 머릿속을 가득 채운 고민들을 단숨에 지우긴 어려웠다. 김정은은 “현역 연장과 은퇴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며 “가족들과 진지하게 상의해볼 시간이 필요했고 ‘의욕만큼 몸이 따라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알고도 마주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지독하게 쓰라렸다. 김정은은 우리은행에서 통합우승을 달성한 2022~2023시즌 종료 후 하나은행으로 이적했다. 이미 신체적 과부화를 느꼈으나, 자꾸만 눈에 밟히는 친정팀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적 첫 시즌 하나은행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PO)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9승21패를 기록, 최하위에 머물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도 전 더 뛰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김정은은 “친정팀으로 복귀 후 2시즌 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서 “복귀 후 하나은행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지난 시즌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으나 성적이 좋지 못해 마음이 쓰였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코트를 떠날 순 없었다. 평생 농구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자신의 농구 인생에게도 예의를 지키고 싶었다. 하나은행을 향한 진심은 두말할 것 없다. 하나은행을 떠나 다른 팀으로 이적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이 하나은행으로 돌아온 이유를 떠올린다. 아직 성장이 더딘 후배들과 코트서 함께 뛰며 유종의 미를 꿈꾼다.

어떤 인연이든 만남도 중요하지만 헤어짐도 중요한 법이다. 레전드와의 이별이라면 더욱 소중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여자배구 레전드 김연경은 화려한 은퇴식을 치렀다. 시즌 중반 은퇴를 선언, 은퇴 투어를 진행하며 선수로서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정규리그 1위 시상식에선 타 구단의 존경과 박수까지 받았다. 서사가 필요한 여자농구판에도 필요한 모습이다.
긴 고민 끝에 동행을 결정한 만큼 예우가 필요하다. 실제로 지난 시즌 막판 농구계 관계자들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만약 이대로 김정은이 은퇴한다면, 레전드를 향한 예우도 박수도 치지 못한 채 보내줘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김정은은 WKBL 역대 통산 득점 1위(8333점)에 올라있는 리빙 레전드다. 여자농구서 역사를 쓴 선수에게 예우를 표하고, 좋은 선례까지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나은행이 더 적극적으로 뛰어야 하는 이유다.

최서진 기자 westji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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