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만화 찢고 나온 김준수, 무대 연출의 신세계 ‘데스노트’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는 데스노트. 현실에서 이 노트를 얻는다면 당신은 누구의 이름을 떠올릴까. 누군가는 나를 괴롭힌 학창시절 동급생을, 누군가는 내 부모의 원수를, 또 누군가는 뉴스에서 보았던 흉악범을 생각할 거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이 발칙한 상상을 무대로 옮겼다.

 

 진정한 법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던 야가미 라이토는 우연히 데스노트를 줍고, 이 노트의 주인인 사신 류크를 만난다.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는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이용해 사법기관이 해결하지 못하는 세계 각지의 범죄자들을 죽인다. 이름과 얼굴만 알면 된다. 특별한 사인을 적어놓지 않는 한 데스노트의 주인이 이름을 적으면 40초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흉악범 수십여 명이 죽자 사람들은 그를 키라(킬러의 일본식 발음)라 부르며 신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이때 엘(L)이라는 천재 소년이 등장한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엘은 천재적인 두뇌와 추리력으로 키라의 정체에 접근해 간다. 법을 대신해 직접 범죄자를 처단하려는 라이토와 그의 그릇된 독주를 막으려는 엘. 비슷한 또래인 두 천재들이 두뇌 싸움이 팽팽하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사신 류크와 렘, 또 다른 데스노트를 주운 미사의 등장까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펼쳐진다.

 

 오바타 다케시 원작의 만화 ‘데스노트’ 12권을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에 녹였다. 덕분에 각 캐릭터의 매력이 핵심만 담겼다. 점점 광기로 물드는 라이토와 엘의 대결에 집중된 줄거리 덕에 진행 속도도 빠르다.

 

 

현장은 만석. 완판남으로 불리는 김준수는 이번에도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구부정한 자세에 큰 눈을 번뜩이며 기묘한 분위기를 내뿜는 엘으로 분해 객석의 시선을 강탈한다. 원작과 100% 싱크로율이다. 생전 처음 만나는 흥분과 좌절을 노래할 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김준수의 ‘진짜 광기’를 느끼고 싶다면 ‘데스노트’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고은성의 기량도 눈에 띈다. 순수한 19살의 라이토에서 자신만의 정의에 심취한 라이토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압도적인 성량도 고은성의 강점이다. 

 

 영상과 무대효과는 압도적이다. 기둥이나 벽 등 일반적인 무대 세트를 과감하게 치워버리고 넓게 쓴 무대 덕에 눈과 속이 다 시원하다. 

 

 무대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총 3개 면이 LED 전광판으로 덮여 장면에 따라 변화한다. 도쿄의 번잡한 교차로가 되기도 하고, TV 화면이 되기도 한다. 시공간에 대한 제약이 없다. 덕분에 사신계와 인간계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꽃잎이 휘날리는 따스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모래로 변한 사신의 애잔함이 그려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 작품 속 제3의 주인공은 무대 연출이 아닐까 싶을 정도.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도 묵직하다. 피해자를 대신해 이뤄지는 사적 복수는 과연 옳은 것일까. 정의를 이루기 위한 진짜 정의는 무엇일까.

 

 라이토 역에 홍광호·고은성, 엘 역 김준수·김성철, 렘 역 이영미·장은아, 류크 역 서경수·장지후, 미사 역 류인아·장민제 등이 출연한다. 오는 6월 18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사진=오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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