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김경덕 SSG 그라운드 키퍼의 꿈 “세계 제일의 구장을!”

사진=SSG랜더스 제공

“한국에도 메이저리그(MLB) 못지않은 구장이 있어야죠.”

 

치열한 프로야구. 선수, 코칭스태프 못지않게 숨죽이며 한 구 한 구 지켜보는 이가 있다. SSG랜더스필드를 관리하는 김경덕(32) 그라운드 키퍼다. 경기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기본이다. 경기 중 선수들이 미끄러지진 않는지, 불규칙 바운드가 튀는 곳은 없는 지 면밀히 살핀다. 날씨에도 민감하다. 실시간 비구름 레이더를 확인, 5분 단위로 예측한다. 하루하루 아무 일 없기만을 기도하는 삶이지만 김 그라운드 키퍼는 “그래도 재밌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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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서 소수만이

 

그라운드 키퍼는 구장 그라운드 및 흙을 관리하는 전문 자원이다. 전국에 몇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야구의 경우 각 구단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통 2명 내외다. 흙이라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에 가깝다. 매일매일 기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수다. 아주 작은 차이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그라운드의 꽃이라 불리는 마운드는 특별 관리 대상이다. 수분 정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야하는 것은 물론 각도까지 정확해야 한다.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하루를 꽉꽉 채워 사용한다. 새벽 6~7시 경기장을 나선다. 해가 뜨기 전, 습기가 있을 때 땅을 갈아줘야 한다. 흙이 건조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후에도 바삐 움직인다. 선수들이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시로 물을 주며 체크한다. 경기가 끝나면 그라운드 키퍼의 본 무대가 열린다. 손상된 흙을 정돈해야 한다. 보통 새벽 1~2시까지 이어진다. 늦은 퇴근에 동료들과 “잘 가” 대신 “이따 보자”라는 인사말이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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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바이트생에서 헤드 그라운드 키퍼까지

 

그라운드 키퍼가 된 지 올해로 벌써 10년이 됐다. 1991년생 만 32세인 나이를 고려하면 경력이 꽤 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출발은 아르바이트였다. 우연한 기회였다.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친구가 학교에 복학하면서 맡아줄 수 있냐고 권한 것. 야구팬이었던 김 그라운드 키퍼는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응했다. 이를 계기로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나갔고 KT, SSG(전신 SK 포함) 퓨처스필드 등을 거쳐 어엿한 헤드 그라운드 키퍼가 됐다.

 

쉽지 않은 길이다. 시즌 중엔 한 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심지어 홈경기가 없는 날에도 끊임없이 그라운드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4계절 중 3계절을 묶여있다 보니 주변을 챙기기 어렵다. 가족 행사에도 빠지기 일쑤였다. 김 그라운드 키퍼는 “친구들과도 많이 못 만나다 보니 조금 멀어졌다. 가족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많이 미안하다. 여행도 겨울에만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택한 일 아닌가. 감수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스프링캠프를 국내에서 진행했던 지난 2년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당시 SSG는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강창학공원야구장에서 캠프를 열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훈련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흙이었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내린 폭설은 김 그라운드 키퍼마저 얼게 만들었다. “나 역시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고 회상했다. 김 그라운드 키퍼는 긴급 조치하는 한편 인천에서 직접 흙을 공수하는 등 안간힘을 썼다. 김 그라운드 키퍼는 “감독님부터 직원 모두가 삽을 들고 나섰다”고 밝혔다.

 

사진=SSG랜더스 제공

 

◆ 책임감과 함께 그려보는 큰 꿈

 

직업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일까. 김 그라운드 키퍼는 ‘책임감’을 이야기한다. 김 그라운드 키퍼는 “그라운드 상태에 따라 경기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부상 여부와도 직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힘들고 어렵지만, 자부심을 느끼고 책임감 있게 임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실 아직까지도 그라운드 키퍼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발전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더 전문화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장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보다 많이 업그레이드됐지만 갈 길이 멀다. 프로야구 발전과 연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 그라운드 키퍼는 “프로구장도 이제 막 인지하고 바꿔 나가고 있는데, 아마추어 쪽은 더 심할 것”이라면서 “얼마 전 SSG랜더스필드에서 ‘신세계 이마트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을 치렀다. 한 학생에게 슬쩍 물어보니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구장보다 훨씬 좋다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추어 쪽도 함께 개선해간다면 선수들이 더 좋은 기량을 뽐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전했다.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우리나라 제일의 구장을 만드는 것일까. 김 그라운드 키퍼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의 시선은 한국을 넘어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김 그라운드 키퍼는 “현재 우리나라 구장은 메이저리그(MLB) 흙을 사용하고 있다. 미국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나라 기후 상황에 맞는 흙을 한 번 찾아보고 싶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다 보면 언젠가는 MLB보다도 좋은 구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혜진 기자 hjlee@sportsworldi.com

사진=SSG랜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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