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정서경 작가 “시나리오 쓰며 20년, 원동력은 직업 정신” [인터뷰]

영화 ‘헤어질 결심’에 이어 드라마 ‘작은 아씨들’까지 올 한해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오가며 보는 재미를 풍족하게 채웠다. 정서경 작가가 4년 만에 안방 복귀작 ‘작은 아씨들’을 완주한 소감을 밝혔다. 

 

9일 종영한 tvN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거대한 사건에 휩쓸린 세 자매가 ‘돈’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마지막까지 긴장감 있게 풀어냈다. 17일 화상으로 만난 정 작가는 “드라마를 내 생각보다 잘 만들어주셔서, 그리고 많은 분이 봐주셔서 감사했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작은 아씨들’은 6.4%의 시청률로 출발해 11.1%의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했다. 넷플릭스 TV 부문 세계 랭킹 8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와 관련해 정 작가는 “‘마더’의 3∼5%가 내게 잘 맞는 시청률이라 믿었다. 조금은 잘 되어 5∼7%의 시청률을 기대했는데, 김희원 감독님에겐 실패한 시청률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웃으며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높은 시청률에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작은 아씨들’은 12부작으로 구성됐다. ‘한 사람이 12개의 이야기를 머리에 다 넣고 시작할 수 있는가’ 의심하며 쓰면서 결말을 만들어갔다. “영화는 2시간에, 드라마는 12시간에 담는다는 차이”라고 담백하게 비교한 정 작가는 “깊이 있고, 많은 이야기가 가능할지, 그런 이야기가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답했다. 주어진 시간에 12개의 에피소드를 끝낸 것으로도 ‘성장’이었다. ‘작은 아씨들’은 정서경 작가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은 아씨들’ 세 자매는 첫째 오인주 역에 김고은, 둘째 오인경과 막내 오인혜는 각각 남지현과 박지후가 연기했다. 세 자매는 모순되지만 서로를 맞춰주는 인물로 그려졌다. 정 작가는 “김고은은 스마트하면서도 어리석고 순진한 모습을 구현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고, “남지현은 양식적인 연기가 아니라 대본에 쓰이지 않은 깊은 단어의 의미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 박지후는 세 자매 중 가장 어리지만, 고요한 중심이었다. 드라마에 ‘태풍’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는데 소용돌이가 치는 태풍의 의미가 있다면 박지후가 중심을 잡는 것 같다. 천생 좋은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주제와 돈을 둘러싸고 인물들이 각각 서로 다른 입장을 대변하길 바랐다”는 정 작가는 “인물 모두에게 공감하는 면들이 있다.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이성, 감성, 영혼 등 각자가 반영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합해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가난한 세 자매에게 큰돈이 주어진다면. ‘작은 아씨들’을 시작하게 된 질문이었다. 12부가 전개되며 ‘돈’의 의미가 변한다. 처음엔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으로 시작해 가족이 되기도 하고 목숨이 되기도 한다. 정 작가는 “결말엔 다시 큰돈이 주어진다. 돈을 얻어가게 되는 결말이라면, 이 돈이 어디서 왔는지 처음부터 말해보고자 했다. 돈의 기원을 멀리 올라가서 베트남전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온 것으로 묘사했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던 돈이, 결말에는 다른 의미를 지닐 거라 바라봤다. “인주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사고, 부를 얻는 의미의 돈이 아니라,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회가 되는 돈이 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만 후반부 극 중 베트남 전쟁 왜곡 논란이 일면서 현지 넷플릭스 방영 목록에서 제외되는 일이 발생했다. ‘작은 아씨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로 이뤄진 정란회의 악행을 파헤치는 과정이 전개됐다. 원기선(이도엽) 장군이 베트남 전쟁 영웅으로 묘사되고, “한국 군인은 베트콩 병사 20명을 죽일 수 있다”, “한국 군인은 베트남 전쟁 영웅” 등의 대사가 나왔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에서 베트남 전쟁은 ‘돈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나온 배경이다. 정 작가는 “현지의 관점에 대해 생각이 부족했다. 다만 베트남 전쟁에 관한 사실관계를 다루거나 정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답하며 “반응을 보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글로벌 드라마를 쓰면서 세심하게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세계적인 작가로 거듭났지만, 시청자의 반응에는 항상 떨렸다. 유년시절, 세계문학들을 가까이하며 성장했다고 밝힌 정 작가는 ‘대사가 번역 투 같다’는 일각의 반응을 두고 “그래서 해외 팬들이 조금 더 편하게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짐작했다.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집필한 정서경 작가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 ‘아가씨’(2016) 등 박찬욱 감독과 오랜 시너지를 내고 있다. 드라마로는 tvN ‘마더’로 단독 집필을 시작했고, ‘마더’는 제1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경쟁 부문에 진출한 유일한 아시아 드라마로 꼽혔다. 그런 그에게 작가로서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원동력은) 직업 정신인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쓰면서 살아온 게 20년인데, 제 느낌으로는 하루도 일하지 않은 날이 없었죠. 일어나면 ‘오늘은 뭘 쓰지’ 생각해요. 일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요. 한국인이라면 그런 정신으로 사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지만, 다음 작품을 더 잘 쓰기 위해 시청자 반응을 살핀다. ‘작은 아씨들’을 통해서는 ‘미친 드라마’라는 반응이 가장 기쁘게 다가왔다고. 정 작가는 “낯선 드라마지만 즐겁게 봐주셨다는 걸 알고 있다. 함께 따라오기 힘든 작품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다음 작품에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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