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日 뒤흔든 ‘니지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

 지난 26일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소니뮤직과 손잡고 진행한 한일합작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니지 프로젝트’ 최종화가 OTT 훌루재팬을 통해 공개됐다.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9명의 일본인 멤버들은 ‘니쥬(NiziU)’란 그룹명으로 일본 중심 글로벌 활동을 펼치게 된다.

 

 여기까진 지난 며칠 동안 이런저런 보도가 많이 되긴 했는데, 사실 일본서만 방영된 ‘니지 프로젝트’가 실제로 일본서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에 대한 보도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지난 한 주 동안 걸그룹 아이즈원의 역대 걸그룹 초동기록 경신, 보이그룹 세븐틴의 K팝 사상 두 번째 초동 100만장 돌파, ‘걸그룹 글로벌 끝판왕’ 블랙핑크 컴백 등 굵직한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못 받은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사실 ‘니지 프로젝트’는 일본서 ‘꽤나’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배출된 니쥬도 상당부분 ‘K팝의 한 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 반응은 ‘프로듀스 48’이 일본 1020세대에 얼마나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는지 파악이 안 돼 아이즈원의 일본시장 파괴력도 미처 가늠하지 못했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니지 프로젝트’ 면면부터 다시 살펴보자. ‘니지 프로젝트’는 지난해 2월 JYP엔터테인먼트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 대대적으로 론칭된 기획이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주장해온 ‘한류 3단계론’의 최종단계, 즉 해외현지에서 활동할 팀 멤버들을 현지인들로 현지에서 직접 뽑아 한국 측 트레이닝과 프로듀싱을 거쳐 다시 현지에 내놓겠단 발상. 그렇게 지난해 7월부터 일본현지 예선을 거치고, 거기서 다시 한국서 트레이닝 받을 데뷔 준비조 14명(실제론 13명이 됐다)을 선발하는 과정이 ‘니지 프로젝트’ 파트1이란 제목으로 OTT 훌루재팬에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공개됐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부터가 문제였다. ‘니지 프로젝트’ 파트1은 일본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훌루란 플랫폼 자체의 한계란 평가가 많았다. 니혼TV 아침방송 ‘슷키리’에서 매번 그 다이제스트 버전을 보여주긴 했는데, 그 정도론 아무래도 유인요소가 크지 않았다. ‘딱 트와이스 일본 팬들 정도만 본다’는 얘기까지 돌곤 했다.

 

 이후론 상황이 더 참담해졌다. 한국서 최종멤버를 선발하는 파트2가 4월부터 지상파방송 니혼TV를 통해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방송편성이 밀리는 바람에 지상파 정규프로그램화가 좌절된 것이다. ‘니지 프로젝트’는 그대로 훌루재팬에 남게 됐다. 이에 따른 보상책인지 니혼TV 측에선 아침방송 ‘슷키리’에서 계속 정기적으로 다이제스트 버전을 공개하고, 목요일 새벽 1시 ‘무지개의 가교’란 프로그램을 신설해 또 다이제스트 버전을 방송키로 했지만,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란 점은 방송시간대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4월부터 파트2가 시작되자, 모든 게 돌변했다. 미디어 노출도 차원으론 파트1과 별다를 것도 없었는데, 갑자기 ‘대박’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방송이 끝나면 곧바로 일본 트위터 트렌드 및 야후재팬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점령했다. 1위는 ‘당연’하고, 10위권 내 4~5개 검색어가 온통 ‘니지 프로젝트’ 관련으로 뒤덮이는 때도 많았다. 야후재팬 엔터테인먼트 페이지 메인으로 관련기사가 게시되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곧 사시하라 리노, 다이고 등 인기연예인들도 트위터 등을 통해 응원 메시지를 전하고, 각종 스포츠 팀들에서도 전혀 상관없는 ‘니지 프로젝트’ 관련 트윗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일본여성지 모어(More)는 2020년 상반기 대표 한류 히트작으로 일본서 무려 47억 엔을 벌어들인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그리고 ‘니지 프로젝트’를 꼽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6일 최종화가 끝난 다음날, 모든 일본 스포츠신문들은 일제히 ‘니지 프로젝트’ 최종결과와 걸그룹 니쥬 탄생에 큰 지면을 할애해 대서특필했다. 일본선 사실상 일종의 ‘문화현상’이었던 셈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단순히 최종멤버를 뽑는단 차이 탓에 이토록 파트1과는 전혀 다른 신드롬이 일게 된 걸까. 물론 그런 면도 아예 없다곤 볼 수 없지만, 사실 더 가까운 요인들이 몇 존재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한 일본 각급 학교 휴교령 사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갑자기 아침방송 ‘슷키리’와 심야방송 ‘무지개의 가교’가 1020 젊은층에 ‘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나아가 ‘슷키리’와 ‘무지개의 가교’를 통해 생성된 관심층이 훌루재팬 ‘본방’ 시청으로까지 유입, 훌루재팬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이기에’ 그런 프로그램을 모두가 필요로 하기도 했다. 막막하고 불안하며 침체된 시점일수록, 젊은이들이 목표를 향해 땀 흘리며 도전하는 감동드라마를 모두가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전반적으로 코로나19와 이런저런 화학작용을 일으켜 전혀 예기치 못한 반향들이 이어졌단 점은 자명하다.

 

 둘째, K팝에 대한 관심 차원을 떠나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향수로서 반향을 일으킨 점도 크다. 당연히 일본서도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존재했고, 특히 1990년대 TV도쿄의 ‘ASAYAN’ 등은 가히 현상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 대중음악 씬 자체의 저하기가 찾아오면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도 한꺼번에 꺼졌고, 후지TV ‘아이돌링구!’ 등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실제적으로 납득이 갈만한 선발과정을 거치지 않다보니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점점 더 콘셉트 자체가 사멸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다 간만에 ‘납득이 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코로나19 사태를 타고 일반대중에 노출된 것이다. ‘ASAYAN’ 등에 강한 향수를 지니고 있던, 그러나 K팝엔 흥미가 없어 ‘프로듀스 48’ 등까지 찾진 않았던 3040세대, 그 이상 연령대 세대가 ‘니지 프로젝트’로 쏠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자국인 참가자 콘셉트는 실제 그룹 차원으로 나왔을 때 반향은 미리 예측하기 힘들지만, ‘방송’으로서 론칭 단계까진 분명 진입장벽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낸 점도 있다.

 셋째, JYP엔터테인먼트 수장이자 ‘니지 프로젝트’ 심사 및 진행을 맡은 박진영이 오히려 ‘가장 주목받는 스타’가 돼버린 희한한 상황도 프로그램 인기를 부추기는 데 크게 일조했다. 실제로 일본 대중음악계엔 ‘이런 캐릭터’가 없다. 최대 연예기획사 중 하나의 수장이면서도 본인 스스로 인기연예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기 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갖고 방송 차원에서 감동적 코멘트를 전달할 수 있는 전 방위 엔터테이너 존재 말이다. 한국서야 이미 SBS ‘K팝스타’ 등을 통해 익히 봐온 터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일본선 확실히 충격적으로, 그리고 ‘방송’으로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로 박진영 캐릭터를 즐긴 경향이 짙다.

 

 미국드라마에선 의사와 변호사와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고, 한국드라마에선 의사와 변호사와 형사가 연애를 하고, 일본드라마에선 의사와 변호사와 형사가 삶의 교훈을 전한다, 는 우스개가 있다. 일본인들은 확실히 방송프로그램에서 그런 종류 감동적 교훈, 삶의 자세에 대한 비전제시 등에 열광하는 구석이 있다. 그에 절대적 드라마성을 느끼고, 해당프로그램을 ‘가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인식하는 부분이 크다. 이에 이미 방송 도중에도 박진영이 참가자들에 던진 이런저런 코멘트들을 ‘박진영 어록’이란 식으로 묶어 웹상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같은 ‘방송으로서’ 독보적 매력요소가 일종의 부스터 역할을 한 측면도 크다.

 

 물론 이밖에도 많다. 심지어 ‘프로듀스 101’ 등 한국서 인기 끈 이런저런 오디션 프로그램들에 비해 ‘밋밋한’ 구성, 소위 ‘악마의 편집’ 없이 아무도 빌런으로 만들지 않는 ‘착한 구성’마저도 일본시청자들엔 흐뭇하고 긍정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진 부분이 존재한다. 서로 간 문화 차이로 한국선 미처 예상치 못한 이런저런 효과들이 워낙 많다.

 

 그렇게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걸그룹 니쥬는 30일 한국과 일본서 동시에 프리 데뷔 디지털 미니앨범 ‘메이크 유 해피’를 공개한다. 현재로서 니쥬는 일단 성공에 이를 수 있는 호조건은 완비한 듯 보인다. 그런데 좀 우려해볼 만한 측면들도 없는 건 아니다. 먼저, 일본선 본래 방송프로그램 인기 기반으로 등장한 팀들 ‘초반 인기’는 확실하다. 오디션 프로그램도 아니라 그냥 개그맨들끼리 방송서 결성한 유닛조차 수십만 장을 파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부분 유통기한이 극단적으로 짧다. 모닝구무스메 같은 정식그룹조차 방송 ‘약빨’이 떨어지기 시작한 데뷔 1년여부턴 인기가 급락, 신(新)멤버 고토 마키를 영입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국민 걸그룹으로 거듭난 바 있다. 지금 당장은 더 없이 유리한 입지지만, 향후 이 ‘특이한 K팝 그룹’ 내지 ‘K팝인지 J팝인지 미묘한 그룹’ 생명력이 어디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진 미지수다. 워낙에 기존 실험돼본 데이터가 없는 기획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일단 현 시점까지 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된 성과 하난 존재한다. 일본시장서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메인스트림 시장으로 치고 들어가 문화현상을 일으킨 첫 사례가 탄생됐단 점이다. 그동안 쌓여온 노하우와 한국식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돼 벌어진 일이다. 모두 사실상 ‘일본선 갖고 싶어도 못 갖는’ 성공요소들이다.

 

 이미 니혼TV 측에선 ‘니지 프로젝트’의 다양한 편집 버전들을 만들어 계속 재방, 삼방까지 기획하고 있다. 니혼TV 자체로서도 정말 간만에 대성공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여기까지가 ‘확언할 수 있는 성과’다. 이 같은 차원에서 향후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들에 또 다른 기회가 오고, 색다른 기획들이 탄생될 가능성도 높다. 지금은 이 점에 집중해 갖가지 아이디어들을 구상해볼 필요가 있다. 니쥬가 성공적으로 일본시장에 안착한다면, 거기서 부턴 또 다른 아이디어들이 필요한 시점이 되겠지만 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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