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상영시간으로 본 ‘드라마 콘텐츠의 미래’

지난 20일, 넷플릭스 미국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즌3 팝업 존이 서울 연남동에서 오픈했다. 내달 7일까지 운영되는 이 팝업 존엔 불과 일주일 사이 1만 명 이상 방문객이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지난 시즌들이 한국서 열띤 호응을 얻어냈단 방증이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본국인 미국서 ‘기묘한 이야기’는 사실 더 엄청나다. 주목도가 가히 마블 히어로 영화 못지않다. 시즌3에 대한 기대 역시 웬만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속편들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기묘한 이야기’ 면면을 하나하나 짚다보면 의외로 잘 언급되지 않는, 그러나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을 만나게 된다. ‘기묘한 이야기’는 이번 시즌도 지난 시즌들처럼 8화로 구성됐다. 회당 약 50분 정도니 전체 400분, 6~7시간 분량이다. 더 살펴보면 근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엔 딱 이 정도 분량, 즉 회당 50분 정도씩 6~8화로 구성된 것들이 워낙 많다. 당장 한국서 큰 화제를 모은 ‘킹덤’이 6화 구성이었다. 성공에 힘입어 제작에 들어간 시즌2도 같은 분량으로 결정됐다.

 

비단 넷플릭스뿐만도 아니다. 경쟁 스트리밍업체 훌루나 아마존 프라임 오리지널도 서서히 6~8화 체제로 이동 중이다. 스트리밍 시청자가 점차 늘고 있는 케이블채널 HBO 등도 마찬가지다. 현 시점 HBO 최고 화제작 ‘체르노빌’이 6화 분량이고, 지난해 최고 화제작 ‘몸을 긋는 소녀’ 역시 8화 구성이다. 한 마디로 6~8화, 전체 300~400분, 5~7시간 분량이 요즘 스트리밍 오리지널 드라마 ‘대세’란 얘기다.

 

왜 이 정도 분량 콘텐츠가 갑자기 트렌드를 타는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분량 드라마 콘텐츠는 ‘원래’ 인기 있었고 ‘늘’ 수요가 있었다. 1970년대 미국방송계에서 탄생한 ‘미니시리즈’ 개념이 원형이다. 1977년 작 ‘뿌리’와 ‘나사렛 예수’ 성공으로 탄력 받아 1980년대에 꽃을 피웠다. ‘쇼군’ ‘가시나무 새’ ‘남과 북’ 등 한국대중에게도 친숙한 콘텐츠가 많다.

 

그런데 위 미니시리즈 클래식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장편소설’ 베스트셀러 원작이란 점이다. 이유가 있다.

 

장편영화 상영시간 표준으로 잡혀있는 100~150분(극장좌석에서 안락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제한시간)은 사실 그리 폭넓은 내러티브를 담아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소설로 따지면 중편소설 정도 내러티브나 들어설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영상화 자체가 상업성을 보장해주는 베스트셀러는 절대다수가 장편소설이다. 포맷이 충돌해버린다.

 

물론 이를 극복하려는 상영포맷도 존재하긴 했다. 150분 이상 영화는 반으로 나눠 중간에 인터미션(휴식시간)을 넣고 상영하는 방식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닥터 지바고’ 등이 그런 식으로 장편소설을 영화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같은 포맷은 단기간 가능한 많은 상영회차를 요구하는 제작 및 배급 측 의도에 의해 1970년대 중반 이후 점차 소멸되고, 상업영화 표준 상영시간 100~150분 시대가 정착됐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소설의 영화화’ 중에선 중편소설 영화화가 가장 성공률이 높게 됐다. ‘쇼생크 탈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 예가 많다. 반면 장편소설 원작으론 인물과 에피소드 상당부분을 생략하게 돼 평가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원작 팬들 입장에선 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비평적으로든 상업적으로든 불리해진 셈이다.

 

미니시리즈는 바로 이 빈 공간을 치고 들어갔다고 봐야한다. 인지도 높은 베스트셀러 장편소설 영상화에 가장 적합한 포맷으로서 프리미엄을 확보했다. 그러다 점차 원작소설이 없는 미니시리즈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사랑을 받았다. 단순히 유명소설을 영상화해서만이 아니라, 대중에겐 분명 ‘그 정도’ 풍부한 내러티브를 지닌 콘텐츠, 영화보다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들을 담아낸 내러티브에의 애착이 ‘원래’ 있었단 방증이다.

 

어쩌면 영상 장르가 등장하기 전 내러티브 엔터테인먼트 최고봉으로 평가받던 장편소설 전통의 문화적 관성 탓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애초 알 수 없는 인간심리에 의해 ‘그 정도’ 내러티브가 선호되다 보니 장편소설 분량이 인기를 얻게 된 걸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결론은 같다. 이 분량의 영상 엔터테인먼트는 늘 수요가 있어왔단 점이다.

 

그런데 미니시리즈는 어느 순간 시장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다시피 했다. 대략 1990년대 초중반부터다. 수요가 없어져서가 아니다. 방송사 입장에서 미니시리즈는 너무나도 조건이 까다로운 포맷이었기 때문이다.

 

TV는 당연히 광고로 먹고 살고, 그중 미국 TV드라마는 그 광고수익 극대화를 시즌제를 통해 얻어내는 구조다. 첫 시즌이 성공해 다음 시즌 시청률이 보장될수록 광고단가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런데 미니시리즈는 한 시즌으로 무조건 끝나는 구조였다. 추가수익기대 측면에서 허탈한 부분이 많았다.

 

거기다 미니시리즈는 텔레노벨라 타입 연속극이기에 시청연속성 보장을 위해선 이벤트 편성으로 3~4일 간 몰아쳐 연속 방영해야 했다. 1화 많이 봤다고 2화 광고단가 올릴 수 있는 조건이 아닌 것이다. 결국 사전광고수주 시 단가를 높이는 게 유일한 답인 셈인데, 이에 성공하기 위해선 제작비도 점점 더 많이 들여야 했다. 일단 핫한 베스트셀러 판권 비싸게 사들여야 하고, 몸값 비싼 영화스타들도 불러와 사전화제성을 높여야 했다. ‘성공했기에’ 광고단가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성공할 것 같기에’ 미리 올려 받는다는 것. 극단적 조건이다.

 

그렇게 리스크에 리스크를 더해가다 퓰리쳐상 수상 원작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 로버트 듀발까지 불러온 1989년 작 ‘머나먼 대서부’ 이후론 제작 자체가 한풀 꺾이게 됐다. ‘머나먼 대서부’가 상업적으로 성공했음에도 그렇다. 이미 구조 자체가 한계까지 온 것이다. 이후론 마니아층이 확실한 SF나 호러 장르 정도로만 간간이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00년대 들어 스트리밍 전문 업체들이 탄생하고, 거기서 오리지널 시리즈들을 내놓으면서부터다. 스트리밍 서비스 구조 내에선 기존 방송구조에서 문제시 됐던 미니시리즈 한계요소들이 일순간에 휘발돼버렸기 때문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일단 광고로 먹고 사는 구조가 아니다. 대부분 월정액제 수익모델이다. 또 콘텐츠 창고 개념이기에 시청연속성을 고려할 필요도 없고, 빈지-워치(binge-watch), 즉 ‘한꺼번에 몰아 보는’ 시청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짧게 반복되는 시추에이션 드라마들보다 오히려 300~400분 분량 미니시리즈가 반응은 훨씬 좋다. 방송일자가 지나면 수익적으로 모든 게 끝장인 방송드라마에 비해 입소문 중심으로 롱테일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이 커 굳이 비싼 베스트셀러 판권을 사올 필요도, 유명스타를 불러올 필요도 없어진다.

 

결국 ‘미디어’가 바뀌면서 늘 수요는 있었지만 수익구조 탓에 사멸 위기를 겪고 있던 ‘분량’의 문제가 해결됐단 얘기다. 그리고 이제 그 ‘분량’을 충족시켜 주는 조건 내에서 베스트셀러 원작이 아니어도, 스타가 없어도, 심지어 시즌제 드라마여도 통용되는 흐름이 나왔다. 그런 흐름이 ‘기묘한 이야기’ 성공신화까지 도달했다.

 

어차피 드라마 콘텐츠 미래는 정해졌다. 편성구조 방송에서 창고구조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이동이다. 그 이동속도의 문제만 남았을 뿐이다. 한국드라마 역시 ‘킹덤’처럼 넷플릭스 기반으로 옮겨가든 독자적 서비스를 개발하든 결국 그 방향으로 가게 될 건 마찬가지다. 그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팁 중 하나가 바로 ‘분량’의 문제란 얘기다. 영화가 담지 못하는 분량, 주2회 연속극 역시 시도하지 않는 분량, 이른바 ‘분량의 블루오션’부터 정확히 짚어 압점논리로 접근해나가는 게 스트리밍 시대 유효한 미래전략이 된다.

 

스트리밍 시대로의 이동은 동일 제작노선에서 미디어만 바뀌는 게 아니다. ‘새로운 틀’에 맞는 ‘새로운 모양새’가 필요하다. 개념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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