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인스턴트식품은 ‘대충 허기만 때우는’ 음식이었지만, HMR로 개명한 뒤 건강식으로 포장돼 몸집을 불려가는 중이다. 과거 레토르트식품이 인스턴트식의 대명사였다면, 현재의 HMR은 국·찌개·볶음·탕 등 ‘메인 메뉴’를 아우르고 있다.
HMR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외식보다 집밥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식문화와도 연관이 깊다. 간편하게 집에서 일품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HMR은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딱 맞았다. 요리할 시간이 없거나 부담스러운 1인가구, 맞벌이 2인가구가 늘어난 것도 기업에는 ‘그린라이트’로 작용했다.

현재 HMR시장의 중심에 선 기업은 단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끄는 ‘피코크’다. 젊은층에서 선호도가 높은 ‘힙한’ CEO(최고경영자)로 꼽히는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피코크 제품을 종종 홍보한다. 자신이 직접 메뉴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암시하는 듯한 포스팅으로 팔로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식이다.
지난해에는 브랜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사 CJ제일제당 ‘비비고’ 브랜드 성공의 일등공신 곽정우 상무를 피코크 책임자로 임명하기도 했다. 피코크는 영양성분보다는 당장의 자극적인 맛과 화려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렇다보니 피코크는 20~30대 젊은층의 지지가 크다.
정용진 부회장의 ‘열일’ 덕분에 냉장 국, 탕, 찌개로 시작한 피코크는 현재 1000종 상품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피코크의 2017년 매출은 2400억원으로 2013년보다 8배 이상 커져 HMR시장의 터줏대감 CJ제일제당·오뚜기 등을 제외하면 웬만한 식품회사와 견줄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대다수 기업들은 외식하는 것보다 집에서 HMR로 식사하는 게 건강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은근하게 전한다. 실제로는 어떨까. 사실상 개명만 했을 뿐, 알맹이는 그대로인 것으로 보인다. 인스턴트식품과 떼놓을 수 없는 나트륨 과다 문제도 여전하다.
소비자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풀무원식품이 2016년 소비자 패널 450명을 대상으로 HMR 구매 관련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의 58%는 ‘HMR식품의 식품첨가물과 높은 나트륨 함량이 걱정된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럼에도 HMR을 찾는 것은 시간에 치이다보니, 급하게 식사를 하기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1일 나트륨권장량은 2000㎎이다. 가정간편식 한 끼에 포함된 나트륨은 2000㎎에 육박한다.
요즘 대세인 피코크 제품으로 한 끼를 섭취한다고 가정해보자. 성인 2명이 각각 곤드레밥 1봉지(262g)를 먹고, 진한 육개장(500g)과 고추장불고기(300g)를 곁들여 먹었다. 이들 제품에는 나트륨이 각각 1080㎎, 1850㎎, 1130㎎이 들어 있다. 육개장과 반찬을 절반씩 나눠 먹었다고 가정해도 2570㎎의 나트륨을 섭취하게 된다. 짜게 먹는 게 금기시되는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에는 절대 ‘건강한 집밥’이 아닌 셈이다.
성인뿐 아니라 아동건강에도 추천하기 어렵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HMR 섭취에 익숙한 아이들은 칼슘은 적고 나트륨·지방이 많은 식단에 소아비만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며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려면 신선한 채소를 곁들이는 등 소비자가 영양균형을 맞춰 식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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