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 세계 육상의 전설이 되기까지

[스포츠월드=송용준 기자] 우사인 볼트(30·자메이카)가 올림픽 ‘트리플-트리플(3연속 3관왕)’이라는 신화를 쓰며 전설로 남았다. 신화의 주인공들이 다 그렇듯 그 역시 여려 역경과 편견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 볼트는 타고 난 100m 선수는 아니었다. 196㎝나 되는 큰 키가 오히려 장애물이었다. 100m는 빠른 스타트를 통해 단시간 내 최고 속도를 내야 하지만 큰 키는 빠른 스타트의 장애물이었다. 볼트 이전 100m 세계챔피언의 신장이 180㎝대였다.

더군다나 볼트는 척추가 ‘S자’ 모양으로 휜 척추측만증까지 갖고 있다. 척추가 굽은 탓에 어깨와 골반이 평형을 이루지 못해 뛸 때마다 척추에 충격이 간다. 이는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하는 단거리 선수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래서 볼트는 2000년대 초반까지 200m와 400m 선수로 뛰었다. 볼트는 15세이던 2001년 헝가리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 200m 종목에 출전해 예선 탈락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m 역시 예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400m는 아예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볼트 육상인생의 전환점이 왔다. 2004년 올림픽 뒤 좌절감에 빠진 볼트가 글렌 밀스 코치를 만난 것이다. 밀스 코치는 볼트의 1년 동안 볼트의 주법을 바꿨다. 100m와 200m에 주력하기 위해 어깨를 크게 흔들며 보폭을 넓히는 훈련을 했다. 몸 전체에 반동을 주고 달리는 ‘이상한 주법’이었지만 성장의 이것이 볼트의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이 주법은 2.44m에 이르는 볼트의 넓은 보폭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무기가 됐다. 또 허리, 등, 배 부위의 근육을 강화해 척추에 전달되는 충격을 분산시켰다.

밀스 코치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자가 아니었다. 볼트의 사생활에도 깊이 관여하면서 ‘스승’으로서 볼트를 지원했다. 또한 밀스 코치는 2007년 독일의 유명한 스포츠 의학자인 한스 뮐러 볼파르트 박사를 볼트에게 소개했다. 볼파르트 박사는 볼트에게 “지금의 몸으로도 충분히 세계 최고 스프린터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자신감을 넣어줬다. 2009년 교통사고로 선수인생의 위기를 맞아을 때도 볼파르트 박사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도 지난 7월 킹스턴에서 열린 자메이카 육상선수권대회 중 허벅지에 통증을 느꼈지만 이번에도 볼파르트 박사가 그를 관리했다.

볼트의 타고난 낙천적 성격과 풍부한 쇼맨십도 그의 성공요인이다. ‘10초 뛰고 10분 동안 세리머니를 한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경기 직후 볼트가 보여주는 화려한 몸 동작은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볼트의 마케팅 가치가 무려 2억7700만 파운드(약 4000억원)를 넘는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볼트은 이제 올림픽 무대를 떠난다. 일부에서는 내년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끝으로 현역생활을 끝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과연 볼트를 뛰어 넘을 후계자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eidy015@sportsworldi.com 사진 리우=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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