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가 먼저 주목한 영화 ‘봄’이 30일 서울 CGV 왕십리에서 언론시사회를 열고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영화 ‘봄’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최고의 조각가 준구(박용우), 끝까지 삶의 의지를 찾아주려던 그의 아내 정숙(김서형), 가난과 폭력 아래 삶의 희망을 놓았다가 누드모델 제의를 받는 민경(이유영), 이 세 사람에게 찾아온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1월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아리조나, 밀라노, 달라스, 마드리드, 광주, 도쿄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등 8관왕을 기록하며 한국영화의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화제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굉장히 잔잔하다. 잔잔함 속에서 퍼져 나오는 감정의 변주들이 한데 모여, 마치 교향악을 이루듯 조화로운 환상의 하모니가 돋보였다. 비단, 배우들의 호흡뿐만이 아니었다. 산과 들, 그리고 시냇물 등 자연마저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야말로 ‘힐링’이란 단어가 저절로 튀어 나오는, 편안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그렇다고 잔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 아닌 남편에게 폭력에 노출된 한 여인의 모습부터 생계를 위해 옷을 벗어 던지고 누드모델로 전향한 어머니, 그리고 그 돈으로 도박에 빠져버린 한 남자 등 얽히고 설킨 다양한 삶이 등장한다. 하지만 조근현 감독은 이를 자극적으로만 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
신예 이유영은 이번 작품에서 품격있는 노출연기를 선보였다. 그가 연기한 누드모델은 겉으로만 보면 다소 자극적으로 보여질 수 있었지만, 이유영의 아우라는 급이 달랐다. 최근 신인 배우들이 노출로 화제를 모은 경우가 많았지만, 이유영의 노출이야말로 ‘노출의 좋은 예’라고 설명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 노출에 있어서 아름다운 몸을 가진 이유영은 자신만의 절제된 감정을 몸에 실었고,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는 물론 심금을 울리는 감성연기까지 선보이며 ‘괴물 신예’의 탄생을 알렸다. 왜 세계가 영화 ‘봄’에 주목했고, 신예 이유영에게 열광했는지 알 것 같았다.
김서형의 연기도 탁월했다. 그녀를 따라다니던 ‘아내의 유혹, 신애리’는 이제 그만 놓아줘도 될 것 같았다. 김서형은 겉으로 돋보이지 않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한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아내 정숙 역할을 입체적으로 소화했다. 그녀의 떨리는 음성 하나마저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마지막 그녀의 눈물은 관객 모두를 울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눈물만 쏙 빼는 건 아니었다. 감성까지 촉촉히 적시는 값진 눈물이었다.
끝으로 영화 ‘봄’은 가장 한국적인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이런 영화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한국적인 맛과 멋을 잘 살렸고, 그 위에 진정한 배우들을 올려 아름다운 영화적 언어로 그려냈다. 덕분에 스크린에서 잠시 여유를 느끼면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받은 것 같다. 11월 20일 개봉.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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