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이호재 감독, "저희는 항상 잉여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항상 잉여라고 생각해요.”

잉여들이 이번에 제대로 일을 냈다.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잉여 4인방이 뭉쳤다.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이들 4인방이 1년 간의 유럽 여행을 통해 맨땅에 헤딩하듯이 이곳저곳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를 전공하는 이들답게 유럽 여행 비용도 현지에서 숙소 홍보 영상을 촬영해주는 것으로 조달해보자는 다소 비현실적인 아이디어에서 이 영화는 출발한다. 4인방의 맏형이자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호재는 그렇게 스스로 잉여라 규정하고 있는 이들을 이끌고 멋지게 영화를 완성해냈다.

영화는 이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갖은 좌절을 겪다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 숙소 홍보영상으로 업계의 화제를 모으며 거지에서 호화로운 스타 홍보 영상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어쨌든, 다큐 형식으로 자신들을 카메라에 담은 이 영화에서 이들이 로마의 한 호스텔 영상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장면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호재 감독은 “저흰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전문가가 했다면 더 세련되게 나왔을 거다. 어떻게 할 지 몰라서 막 했고 망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인터넷 광고용으로 쓰이게 됐고 업계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영화 초반 노숙인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행태에서 슬슬 짜증이 밀려올 무렵, 터뜨린 대박은 그래서 반전의 재미를 준다. 이호재 감독은 “그 전까지만 해도 라면도 호강이었고 바게뜨 빵만 많이 먹었다”고 고생담을 털어놨다. 

이호재 감독은 4인방 중 맏형이지만 대학에서는 모두 동기들이다. 원래 국제통상학을 전공하다가 영사실에서 일하면서 영화과로 진로를 바꿨다. 2009년 영화 촬영 당시 이호재(24), 하비(22), 현학(20), 휘(20)까지 4인은 용감했지만 스스로를 잉여라 생각했다. 이호재 감독은 “저희는 항상 잉여라고 생각한다”면서 “워낙 게으르고 일하는 걸 싫어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작업해야 하는데 게임 하면서 밤도 새고 (돈이 없어)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건 못하니까 패키지 게임으로 두 판 깨고 그렇게 열심히 게임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잉여에 대해 “주류와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능력도 없고 게으르기까지 하다. 그러면 합리화가 돼더라. 저희 또래들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반드시 요구받는 부분들을 그런 식으로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감도 내비쳤다. 이호재 감독은 “저희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잉여롭게 생활했기에 호스텔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고”라며 “그러면서 공부도 됐고 새롭게 발견을 하기도 했다”고 이번 영화를 통해 얻은 점을 설명했다.

사실 이호재 감독을 포함한 잉여 4인방은 학교에서도 잉여 취급을 받던 친구들이었다. 모두들 별로 실력도 없고 학업도 형편없어서 있는 듯 없는 듯 대우를 받았던 이들인데 이번 영화로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 셈이다.

영화는 올해 초에야 편집이 끝났고 DVD로 제작해 배급사에 보냈다가 이번에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들로서는 놀라운 성공이다. 이 영화에는 이들이 마침내 뮤직비디오 연출 요청까지 받게 된 영국의 뮤지션 아르코가 보낸 메일 속 글귀가 깊은 인상을 준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결코 잉여가 아닌 이들”이라는 표현이다.

이호재 감독을 제외하고는 군에 입대하거나 전역 후 자신이 좋아하던 진로를 선택한 이들도 있다. 이제 모두 다시 모일 때가 되면 이호재 감독은 음악 영화 프로젝트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렇게 영화계에 새로운 ‘스티브 잡스’가 출현했다.

한준호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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