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블리자드 게임을 즐기는 마니아들의 축제 블리즈컨(BLIZZCON)이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8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대망의 막을 올렸다.
지정된 시간에 도달하기 한참 전인 새벽 5시부터 방문객들은 삼삼오오 현장에 몰려들었고, 개막 한 시간을 앞두고는 기하급수적으로 숫자가 불어났다. 행사 주최 측인 블리자드 관계자는 “지정된 티켓 판매량이 2만장인데, 구매자 대부분이 오늘 집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과거 블리즈컨은 매년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장소에서 방문객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딱히 새롭게 내놓을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개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올해 행사는 참가자들의 설렘이 더 컸고, 이에 맞춰 블리자드도 “콘텐츠 풍년”이라고 자평할 만큼 방대한 볼거리를 내놓았다.
실제 행사장인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의 입구가 개방되자 마치 백화점 땡처리 세일에 몰린 마냥, 인파들이 일시에 뛰기 시작했다. 블리즈컨의 꽃 중 하나로 불리는 개막식에서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테네시주 네슈빌에서 온 미라 홀슨 양(26)은 “1등을 놓친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특히 블리즈컨의 문을 두드리는 방문객들은 하루 20만원을 호가하는 행사장 근처 특급호텔에서 길게는 3박 가량을 머문다. 블리즈컨이 꼬박 이틀을 채우는 까닭에 2박은 기본이고, 지인들과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1박을 보태는 경우도 잦다. 인근 메리어트 호텔 관계자는 “보통 3개월 전이면 사실상 객실 보유량이 동이 난다”며 “메리어트뿐만 아니라 힐튼과 쉐라톤 등 부근에 있는 호텔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고 소개했다.
개막 하루 전에는 더한 진풍경이 벌어진다. 누군가 ‘포 더 호드’ 등 블리즈컨을 상징하는 문구를 외치면 메아리처럼 수많은 함성으로 돌아온다. 밤새 이같은 광경이 연출되지만 누구 한명 불평하는 이들이 없다고 한다. 이 역시 블리즈컨과 마니아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연유로 팬들은 축제의 매순간을 만끽하려 애쓴다. 남들보다 먼저 방대한 정보를 체험할 수 있다는 블리즈컨 본연의 매력에 심취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샌디에이고 출신 마틴 홀랜드 씨(23)는 현재 직장인이지만 대학 동창들과 이곳을 찾았다. 그의 직장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이다. 홀랜드 씨는 “하루 휴가를 내고 친구들과 일정을 맞추는 것도 무척 힘들었지만, 이곳에 오면 정말 보람을 느낀다”며 “블리즈컨은 연말이 가까워지는 이맘 때, 자칫 지칠 수도 있는 삶에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엄청난 콘텐츠 느긋하게 감상한다
블리즈컨이 이틀이라는 기간을 택한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하루로는 모자라고, 3일 동안은 ‘여러모로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금요일과 토요일에 행사가 치러지고,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각자 거주지로 편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취지다.
블리즈컨은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처음 시작된 지난 2005년만 하더라도 애너하임 컨벤션 센터의 절반 가량을 이용했다. 이제는 전체를 사용해도 콘텐츠를 다 채우지 못하는 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방문객들은 올해 175달러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 관람을 신청했다. 이 역시 불과 1분만에 티켓이 동이 났다. 회를 늘려갈수록 가격도 조금씩 오르지만, 팬들과 갈등을 빚는 요인이 되지 않는다. 마이크 모하임 블리자드 창업자 겸 대표는 “첫 번째 블리즈컨은 이 컨벤션 센터의 반만 사용했고 입장권도 3000∼4000장밖에 팔지 못했다”며 “올해 블리즈컨은 컨벤션 센터의 전부를 썼고, 2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블리자드는 팬들의 높은 충성도에 막강한 콘텐츠로 화답하고 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과 ‘하스스톤’ 등 신작 2종에다, ‘디아블로Ⅲ’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각각 확장팩을 들고 나왔다. ‘스타크래프트Ⅱ’를 활용한 프로리그 WCS의 글로벌 파이널도 펼쳐진다. ‘게임은 직접 체험하고 또한 관전하는 것’이라는 기업 철학을 가장 잘 반영한 구조다.
한편으로는, 블리자드가 지향하는 목표점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발매된 작품들이 시장에서 예년만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탓에, 새롭게 출시되는 신작은 어깨가 무거워질 법도 하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기존 유력 IP(지적재산권)를 차용한 작품으로 친근함을 더하고, 게임성을 담보해 극복하겠다는 포부다. 엄미나 블리자드 상무는 “전체 게임 스토리를 전개하는 세계관을 잘 잡고, 이에 걸맞는 캐릭터 등 콘텐츠를 조합하는 것이야말로 IP의 영속성을 이룰 수 있다”며 “좋은 IP를 잘 가공하면, 구현할 수 있는 콘텐츠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애너하임(미국)=김수길 기자 sugiru@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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