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숨바꼭질' 허정 감독 "개연성 부족이요? 긴장감 살리려면…"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을 만났다.

만나기 전에는 냉정하고 차가운 외모의 소유자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순박한 외모에 말투도 착하고, 가끔은 순수한 청년같은 모습에 ‘과연 이런 사람이 관객들의 숨통을 조이는 스릴러 영화를 만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자 눈빛부터 달라졌다. 시나리오 작업부터 배우들과의 호흡, 영화 개봉 이후 아쉬운 점까지 난감한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는 허정 감독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 영화가 참 무섭다. 시나리오 쓸 때 많이 무서웠을 것 같다.

처음엔 많이 무서웠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가 무서워했던 감정들을 많이 살리려고 했던 것 같다.

- 평소 괴담에 관심이 많나.

괴담을 좋아한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에도 관심이 많았고, 괴담으로 재밌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는 노랫말이 무섭다.

사실 막연한 동요 느낌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데 음악감독이 동요 느낌을 다르게 해석해 영화 속에서 잘 살린 것 같다.

- 영화 ‘숨바꼭질’에서 철거 위기의 아파트와 고급 아파트, 두 장소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대비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더 좋은 곳을 가고 싶어 하는 마음과 반대쪽에선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이랄까. 두 감정이 같은 느낌으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간절함이랄까.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 수많은 괴담 중에 왜 ‘숨바꼭질 괴담’인가.

집에 누군가 숨어 살고, 자기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대한 괴담이 어느 순간 갑자기 많아졌더라. 예전엔 귀신괴담, 학교괴담이 흥미로웠다면, 요즘은 집에 대한 공포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러한 공포를 반영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숨바꼭질 괴담을 선택하게 됐다.

- 미쟝센 영화제에서 주목한 ‘주희‘란 작품은 24분의 단편작이다. ‘숨바꼭질’은 107분의 장편작이다. 차기작을 장편에다 스릴러로 정한 특별한 이유는?

단편은 부담이 많았다. 단편작은 호흡이 큰 그림을 봐야 하더라. 배우들의 감정도 그렇고, 신마다 느낌들이 달랐다. 그걸 짧은 시간 내에 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컸다. 스릴러를 선택한 이유는… 특별히 장르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었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스릴러가 맞았던 것 같다. 시나리오에 충실했던 것 같다.

- 영화적 구성을 보면 굉장히 긴장감이 넘친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 가장 두려운 지점이 바로 집이다. 자기 집에 들어온 것, 그 전까지는 암시나 환상만 보이다가 실제로 보여지니 이러한 사실에서 오는 긴장감이 생기는 지점이 있다. 그런 지점이 와닿은 분들은 숨막히는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 전작 제목이 ‘주희’인데, 이번 작품에서 문정희씨 역할도 주희다. 특별히 염두했나.

‘숨바꼭질’ 시나리오가 나온 다음에 ‘주희’란 작품이 나왔다. 주희란 인물에 조금 더 얘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숨바꼭질’에서 아쉬운 부분을 주희가 더 보여주는 형식인 것 같다.

- 반전에 대한 복선이 많다.

고민이 많았다. 관객들이 그런 것들을 복선으로 생각할지 많이 고민했다.

- 배우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 같다. 나이도 적지 않은 배우들인데, 고생을 너무 시킨 게 아닌가.

배우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다. 촬영장에서 선배라는 지위를 내려놨고, 의욕도 굉장히 넘쳤다. 어떤 경우는 본인이 더 아쉽다고 하면서 재촬영을 요구하는 장면도 있었다. 또 배우들이 각자 부상당한 사실도 내게 말 안했다. 전미선, 문정희씨는 손현주 선배에게만 말했다고 하더라. 감독이 배우들 부상사실을 알면 이를 의식하고 찍을까봐 말을 더 안했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서야 듣고 알았다.

- 여성 관객들이 무서워서 못보겠다고 하더라.

처음 시나리오 쓸 때 주인공은 여자였다. 여자들이 봤을 때, 그렇게까지 감정이입이 되면 공포의 단계를 넘어설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런 면을 고려해서 가족이 있는 남자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바꿨다.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잘 어필된 것 같다.

- 아역 배우들은 촬영장에서 어땠나. 쇠파이프 든 문정희를 볼 땐 아역들도 정말 무서웠을 것 같은데.

아역들 모두 감정이 예민한 친구들이다. 겁먹은 감정이나 우는 감정들을 잘 표현하더라. 아이들도 주희 캐릭터를 맡은 문정희 선배를 무서워했다. 반면 전미선 선배는 다정다감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문정희는 아이들을 잡고, 전미선은 아이들을 풀어주는 역할을 맡았다고 하면 설명이 쉬울 것 같다.

- 여배우들을 너무 험하게 다룬 것 같다. 문정희씨는 못볼꼴을 만들었다.

오히려 여배우 두 분이 변신에 대해 욕심을 냈다. 디테일한 부분은 여자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준 부분도 많다. 특히 문정희는 영화 캐릭터처럼 보여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망가지고 험한 배역에 대한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 다행이도 (문정희가) 다음 영화에서는 예쁘게 나온다고 하더라.

- 문정희가 말하길 ‘허정 감독은 19금 등급 영화를 찍으면 끔찍하게 잘 찍을 것 같다’고 하더라.

끔찍한 영화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절단하고 끔찍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적 효과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지만, 공포가 아닌 소모적인 느낌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막상 한다면 잘 만들 것 같긴 하다.

- ‘숨바꼭질’은 그동안 접했던 스릴러와 확연이 다르다. 참고한 작품들이 있었나.

정확히 뭘 보고 참고했다고 말할 순 없다. 그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딱 하나를 봤다고 말할 순 없다.

- 스릴러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매번 말이 틀렸던 것 같은데, 일단 호흡이 중요하다. 또 쪼였다 풀었다하는 지점들도 중요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선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공간에서 오는 긴장감이라고 할까.

- 허정 감독에게 스릴러란?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순간들을 영화 속으로 녹여내는 데 호기심과 재미가 생긴 것 같다. 그런 것을 표현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자 재미다. 앞으로도 그런 공포를 표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 어두운 작품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시나리오 때문일 것이다. 불안함에 대한 관심들이 많다보니 어두운 작품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아직은 어두운 느낌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밝은 느낌의 영화를 하기엔… 아직 느낌이 안 온다.

-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자주 반영하는 편인가. 시나리오가 워낙 치밀해서 반영할 만한 포인트가 있을까 싶은데.

어느 정도 달라지는 지점들이 있다. 동선도 그렇고, 막상 생각대로 움직이면 어색한 것도 많다. 공간을 막연하게 봤을 때의 느낌과 카메라를 직접 댔을 때 느낌이 많이 틀리다. 단편영화를 찍을 땐 공간에 가서 많은 걸 얻었는데, 이번엔 세트가 절반정도 되다보니까 이미 완성되어 있는 그림이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세트를 만들어 찍다보니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 이번 영화에선 들리는 (청각적인) 공포도 만만치 않았다.

뭔가 시끄럽기만 하면 잘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시끄럽다가 조용해지고, 그때 갑자기 소리가 탁 튀어나오면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막연하게 시끄러운 음향이 아닌, 굉장히 조용한 순간에 시끄러운 사운드를 통한 강약 효과로 강한 이펙트를 준 것 같다.

- 성수와 형에 대한 스토리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장단점이 명백하더라. 성수란 캐릭터를 형이 좀더 설명해주는 느낌도 있지만, 보여지는 지점에서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헬맷의 정체가 공개되고 몰아가야 하는 순간, 긴장감을 끊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게 더 맞는 선택일까 고민하다가, 이 정도만 보여줘도 충분할 것 같아서 형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게 됐다.

- 영화가 손현주로 시작해 문정희로 끝난다.

손현주란 배우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고 가고, 그 베이스에 문정희와 전미선이 플러스 된 느낌이다. 전체 흐름을 잡는 건 손현주지만, 전미선과 문정희란 배우가 함께 끌고 가면서, 관객들이 그 감정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 같다.

- 평이 많이 엇갈린다.

물론 갈릴 것이다. 그래도 많은 관객들이 감정이입을 잘 해준 것 같다. 무엇보다 성수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성수의 과거사도 그렇고, 관객들이 상황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는데, 재밌게 봐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 흥행은 얼마나 예상하나(개봉 전 인터뷰라서 흥행성적을 모르는 상태).

스릴러 영화가 흥행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도 일단 손익분기점만 넘으면 좋을 것 같다.

- 차기작은 정했나.

‘숨바꼭질’이 정리되면 구상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정해진 게 없다.

- 끝으로 관객들에게 ‘숨바꼭질’을 즐기는 법을 말해달라.

괴담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보면 될 것 같다. 놀라는 부분은 놀라고, 재밌는 부분은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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