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영화 '이별계약' 오기환 감독, '한류 감독'을 꿈꾸다

한중 합작영화 ‘이별계약‘의 오기환 감독을 만났다.

오기환 감독은 2001년 이정재, 이영애 주연의 감성멜로 영화 ‘선물’로 화려하게 데뷔, 이후 2005년 로맨틱코미디 ‘작업의 정석’, 2007년 공포스릴러 ‘두 사람이다’, 2009년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 등을 연출하며 대한민국 대표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인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영화 속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을 탁월하게 그려내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가 선택한 작품은 한중 합작영화인 ‘이별계약’이다. 그동안 보여왔던 한국배우와 중국배우가 뒤섞여 영화에 등장하는 것이 아닌, 철저한 현지조사를 통해 한국감독이 가장 중국스러운 영화를 만들어 낸 것. 사실 한국형 감성멜로가 대륙에 통할지 의문이었지만, 오기환 감독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당당히 바꿔놨다. 영화 ‘이별계약’은 중국 내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며 대륙의 관객들을 수도없이 웃기고 울렸다.

영화 전반부의 톡톡튀는 로맨스와 후반부 관객들의 눈시울을 자극하는 멜로라인의 결합을 선보인 오기환 감독. 그는 단순히 울리는 영화가 아닌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인생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드라마, K-POP이 이끈 한류열풍을 이젠 감독들이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오기환 감독, 그의 중국영화 도전기가 궁금해졌다.

- 배우 바이바이허가 말하길 오기환 감독은 감성이 풍부하단다.

“감독은 영화의 1차 관객이다. 가장 먼저 영화를 보는 관객인데, 웃긴 장면에선 웃고, 슬픈 장면에선 슬퍼해야 하는게 맞지 않나. 감독도 영화를 순수하게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에서 보통의 감정신을 제외하고 대부분 2번 정도에 촬영이 끝났다. 단, 펑위옌이 우는 장면은 다섯번 정도 촬영했는데, 눈물의 정도나 슬픔이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깊이 때문에 여러번 촬영을 하게 됐다.”

- 감독, 배우 모두 몰입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나를 비롯한 펑위옌, 바이바이허 세 사람 모두 국적이 다르다. 사람들이 대만과 중국은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차이가 크다. 그렇다고 많이 다른 건 아니다. 국적과 언어만 차이날 뿐 정서는 비슷하더라. 촬영하면서 좋았던 점이 펑위옌 누나가 촬영장에 왔을 때, 바이바이허 남편이 촬영장에 왔을 때 가족같은 분위기가 나서 참 좋았다. 배우들이 모두 현장을 편하게 생각하니 가족들을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촬영장이 편해서 몰입도 쉽게 됐던 것 같다.”

- 오기환 감독이 촬영장을 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영화 감독의 숙명은 배우들의 연기를 받아주는 것이다. 현장에서 촬영이 시작하기 전엔 감독이 최고지만, 촬영이 시작하면 배우들이 최고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가장 좋은 현장이라 생각한다. 연기자가 연기만 잘하면 되는거 아니겠나.”

- 영화 ‘이별계약’은 소재가 독특한 것 같다.

“일단 남녀가 있고, 남녀를 통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영화로 시작했다. 여자 주인공 차우차우는 뭔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남자 주인공은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게 했다. 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모티브로 삼았다. 9개월 정도 현지인에게 맡겨 시나리오 작업을 한 결과 극중 캐릭터와 직업, 배경 등이 나왔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중국인들이 이 영화를 볼 때 공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정말 한국인이 중국에 가서 멜로영화 찍는 것 치고는 최선을 다했다. 중국 영화인으로서 최선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한국 영화인으로서 정말 노력했다. 이제 중국을 알게 됐으니, 다음 작품에서는 이웃 단계에서 친구의 단계로, 중국 스태프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또 중국인의 정서 뿐만 아니라 대사의 맛도 더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 그러고보니 한국영화가 아닌 중국영화를 만든 것 같다.

“정확하다. ‘이별계약’은 중국영화다. 한국에 왔는데 갑자기 햄버거를 먹자고 하면 조금 이상하지 않나. 내가 중국에 가서 영화를 찍었으니, 중국영화를 찍는 건 당연하다. 또 중국 관객들이 뭘 좋아하는지 직접 찾아보고 영화를 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 영화 얘기로 돌아가보면, 감정선이 너무 극단적이다.

“한국인의 시선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중국 관객들의 감정선엔 잘 맞는다. 중국에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편집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극단적일 수 있다. 중국영화다보니 중국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 그렇다고 해도 연인을 대하는 법, 죽음을 앞둔 자세가 너무 극단적이다.

“중국은 남한의 55배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이 너무나도 많다. 한국 사람들은 죽을 때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죽는다. 심지어 빌렸던 돈도 다 갚을 정도다. 반면 중국은 죽고난 다음에 사람들이 안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이 한국과 중국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시각으로 보면 ‘이별계약’ 속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중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중국인 정서에 맞는 이야기다.”

- 대만 남자배우, 중국 여자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중국은 큰 나라다. 중국 관객들은 포용성이 있다. 대륙인의 시각에서 보면 어느 나라 배우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시나리오에 적절한 캐스팅만 필요할 뿐이다. 대륙여자는 절대 울지 않는다. 반면 대만 남자는 약한 편이다. 시나리오에 딱 맞는 캐스팅을 위해 중국 여배우 바이바이허, 대만 남자배우 펑위옌을 캐스팅했다. 사실 촬영장에서 둘이 대화하는데도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한다. 자막으로만 보면 같은 중국인이라 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대만, 중국에 상관없이 시나리오에 맞는 배역을 캐스팅했을 뿐이다.”

- 영화 ‘이별계약‘은 사랑의 강도에 대한 작품이라고 하던데.

“맞다. 사랑의 강도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한 연인이 크게 싸우고 이 영화를 본 다음 따뜻하게 손을 잡고 나왔으면 하는 느낌이랄까. 내 옆에 있는 와이프, 아이나 친구가 내게 어떤 존재인가, 사라지거나 없어져도 되는 존재인가에 대해서 점검해 볼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 중국어로 찍은 영화다. 현장에서 감독의 의도가 배우들에게 잘 전달됐나.

“감정이나 대화 등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모두 정리했다. 정리된 텍스트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촬영장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 관점은 틀릴 수 있다. 참고로 내 처녀작인 ‘선물’에서 이정재와 이영애를 한국인들은 부부로 보지만, 중국에서는 모자관계로 보더라. 그런 관점들이 틀리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전체적으로 점검을 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최고의 배우들과 하는데 어려운게 뭐가 있겠나.“

- 한국 배우를 쓸 법도 한데, 중국배우를 고집한 이유는.

“중국 감독이 찍는 영화에 한국인이 들어가는건 사실 자연스럽지 않다. 물론 한국인 감독과 중국 배우가 함께 작업한 작품이지만, 굳이 한국 배우를 쓸 만큼 영화에 비중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국인 배우를 배제한 것이다. 앞으로도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중국배우와 함께 찍는 게 맞다고 본다.”

- 영화 속 주인공들이 너무 쉽게 헤어지는 것 같다.

“이것도 한국과 중국의 관점 차이인데, 참고로 중국 관객들은 헤어짐을 편하게 생각한다. 중국 대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대부분 생활한다. 학기가 끝나면 헤어짐이 있다.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헤어진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헤어짐과 틀린 것. 그래서 당연하게 헤어짐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영화에 유머코드를 제대로 살린 것 같다. 노하우가 있다면.

“사실 대사와 감정을 100% 통제 못한다. 활자는 100% 통제 가능하지만 연출은 활자 이상의 것이 아닌가. 배우들에게서 좋은 감정을 뽑아야 좋은 연출인데, 활자만으로 배우들에게 감정을 뽑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액션을 통한 코미디를 연출했다. 내 나름대로의 대안 언어로 코미디를 할 수 없으니 슬랩스틱을 통한 액션 코미디로 대체한 것이다.”

- 영화 속 배경들이 관광명소가 될 것 같다.

“사실 베이징 시내에 멋있는 공간들을 많이 담았다. 그 공간들을 스크린으로 아름답게 옮긴 건 촬영감독의 공이 크다. 극중 등장하는 운동장은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 운동장인데, 영화 속에서 보면 굉장히 특별해 보이지 않나. 앵글도 많이 신경썼다. 또 영화에 등장하는 카페도 우리나라 인사동 카페 느낌인데, 영화 이후로 영업이 잘된다고 하더라. 중국을 느낄 수 있는 베이징 시내 명소들을 많이 담았다.”

- 영화개봉 이후 중국 영화계 반응은 어떤가.

“촬영전에는 중국 감독들과 미팅을 많이 했다. 하지만 후반작업을 한국에서 하다보니 중국 감독들의 반응을 듣지 못했다. 곧 중국에 가게 되는데, 그분들을 만나면 중국 내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 끝으로 왜 중국영화를 선택했는지 말해달라.

“우리나라 아이돌은 한국에서만 공연하지 않는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한다. 한국 영화인들도 그럴 때다. 한국에서만 작업하는 시대는 지났다. 전세계 어디에 가서라도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 봉준호, 김지운 감독이 미국에 가서 할리우드 영화를 찍지 않았나. 아이돌이 했던 것들을 이제 한국 영화인들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감독들도 중국, 일본… 심지어 아프리카에 가더라도 영화를 찍을 수 있어야 한다. ‘이별계약’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영화다. 앞으로 한국 감독들의 어깨가 무거워질 것 같다.”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사진=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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