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타] 연예인이 아닌, 음악인 김태원이 각광받는 이유

김태원. 부활엔터테인먼트 제공
 내공이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 심지가 꺽였어도 그 과정은 험난하고 의미있는 사건들로 가득했기에 박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뒤늦게 예능프로그램에 진출, 그 어떤 연예인보다 유명해진 록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내공이다. 리더이면서 기타리스트로 가요계에서 어느새 한물 간 록밴드를 끝까지 부여잡고 음악인생을 영위해온 그의 진정성을 알아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적 지형에서 록밴드의 전성기 시절이라 불리던 1980년대 밴드의 간판은 기타리스트나 리더가 아니라 보컬이었다. 김종서, 이승철, 박완규 등 부활을 거쳐간 보컬리스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국내 가요계에서 이름을 남기고 작품으로 최고의 인기 가수로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을 선택하거나 발탁한 김태원은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했다.

 세월은 흘러 이제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러면서 역설적이게도 고집이나 도전 정신은 사라져가고 있다. 20대뿐만 아니라 이젠 초등학생들도 편하고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는 시대다. 지금 이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김태원은 낙오자의 전형이다. 자신이 발굴한 스타 보컬리스트에게마저 버림받은 그룹을 끝까지 부여잡고 바보처럼 이끌어왔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단 한 차례도 놓지 않았다. 그렇게 마치 그룹명처럼 부활을 끊임없이 부활시킨 주인공이었다. 부활로 활동하던 시절 함께 록의 꿈을 꿨던 동료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스타가 됐다. 하지만 김태원은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는 밴드 마스터였을뿐이다. 그렇게 20여년 이상을 음지에서 묵묵히 보낸 김태원이 무한경쟁이 찬란한 시대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 누구도 주목할 것 같지 않던 김태원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태원은 전형적인 ‘루저(Loser)’ 캐릭터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기인에 가까운 풍모 등이 대중에게는 이색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예능늦둥이 생활은 사실 가족 때문이었음이 최근 방송에서 드러났다. 지난 30일 방송된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김태원은 “사실 둘째 아들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지금 11살이지만 아직껏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불우한 가족사를 공개하면서 “내가 예능을 갑자기 시작하고 음악적 자존심만 내세울 수만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시점이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아들을 위해 음악적 자존심을 꺽고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나선 이유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덕분에 이날 방송은 김태원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에게 강력한 감동의 쓰나미를 안겼다.

 대중문화도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 한다. 뮤지션의 음악적 자존심은 점점 사라지고 이를 경쟁의식이 대체하고 있다. 아이돌들이 연습생 시절부터 경쟁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청소년들의 대학입시나 대학 졸업생들의 고시 경쟁을 능가한다. 하지만 이는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제목처럼 ‘욕망의 불꽃’이나 다름없다. 타오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김태원의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경쟁보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밴드의 보컬을 발탁하고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 하는 밴드를 지켜온 그의 존재감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준호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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