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기의 무예이야기]드래건의 전설

이소룡 무술 ''영춘권''…짧은 거리서 타격 일품
중국무술인명사전의 수많은 무술가들 중에 20세기 끝자락을 장식하는 무술문파와 장문인이 한명 있다. 홍콩의 드래건, 이소룡이다. 한국의 30,40대에게는 매캐한 최루탄 연기 만큼이나 추억이 있는 인물일 것이며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는 여러 명의 영화감독들이 바친 바 있다. 이소룡은 한 시대를 특징짓는 문화적 아이콘이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이소룡의 액션은 호쾌하며 빠르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괴조음과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기억하지만 그의 무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소룡이 구사하는 무술은 과연 무엇일까. 무협소설의 장문인이 이소룡을 본다면, ‘그의 사문을 알 길이 없구나. 새외고인의 진전을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흔히 이소룡은 절권도의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절권도는 한 문파라기보다 이소룡이 미국에 건너가서 깨달은 무술의 컨셉트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우선 이소룡의 무술적 기반은 철저히 중국무술적이다. 이소룡 무술의 주된 부분은 영춘권이라는 중국 남부의 권법이 차지하고 있다. 영춘권은 대표적인 단타(短打)무술이다. 단타는 중국무술 분류법중의 하나인데, 거리가 가까운 상태에서 타격을 하는 기술을 주로 사용한다. 상대와 거리가 멀다면, 가깝다면 어떤 기술을 써야 할까. 이것은 수많은 무술가들의 화두였으며 수천년 무술사에서 가장 고심을 한 것이 상대와 간격의 문제이며 장단의 조화이다. 전통시대의 전쟁에서 활과 창, 칼을 함께 가지고 나가는 것도 장단 겸용을 위한 것이다. 상대와 멀리 떨어져서 싸우는 아웃복서는 장타의 기술을, 코와 코가 맞붙은 상태를 선호하는 인파이터는 단타의 기술을 사용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단타의 간격은 권투보다 가깝다. 팔을 뻗어 상대의 어깨를 잡을 수 있는 거리이다. 짧은 거리에서의 타격은 호쾌하고 궤적이 큰 펀치보다는 허리와 어깨, 골반의 탄력을 함께 이용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이소룡의 손기술이 단타라면, 발차기는 장타라고 할 수 있는 태권도의 옆차기와 뒤돌려차기를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소룡 무술액션의 대부분은 영춘권적인 움직임이다. 이소룡 탓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중국무술은 한국에서 생소한 영춘권이다.
요즈음에는 한국에도 영춘권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으며 한번 배우면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효율적인 기술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소룡의 저술에서 보이는 기존의 무술에 대한 비판은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수없이 제기된 것들이다. 투로와 형에 대한 무용성은 1940년대 의권(意拳)의 창시자 왕향재를 비롯한 여러 무술가들이 언급한 적이 있으며 실제로 통배권, 의권, 심의육합권 등 유명 중국무술들도 투로형 단련체계가 없다.
일본무술들도 가라테를 제외한다면 형을 가지고 있는 무술이 드물다. 그리고 이소룡이 즐겨 말하는 파이터의 심리상태나 태도, 선시(禪詩)의 비유 등은 동아시아 문화에서는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들을 응용한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히피운동과 반전풍조속에서 동양사상이 각광을 받았으며 이소룡의 무술 또한 그런 분위기속에서 높게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소룡의 절권도는 중국무술이 아니다. 기존 무술계의 권위에서 벗어난 이 시대의 강호인 미국에서 노력가들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미국무술이다. 절권도는 영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인도와 같다. 기존의 성과에 자신의 생각 하나를 보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소룡은 미국에서 그것을 해냈다. 그런 점에서 이소룡은 천재이고 무술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이지만 이소룡을 키운 곳은 미국이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이소룡 최고의 영화와 액션은? 맹룡과강이다. 이소룡이 항상 역설하는 절권도의 요체가 잘 나타나 있으며 콜로세움에서 척 노리스와의 마지막 결투는 수없이 봐도 질리지 않는 무술영화 사상 가장 명장면 중 하나이다.
무술칼럼니스트 pagua6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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