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①]여수 소호항 범선세일링, 돛을 올리면, 바다가 달려온다

여수 소호항 범선세일링
바람따라 느림의 낭만… 돛 올리는 체험 백미
국내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호가 여수 소호항을 출발해 다도해를 향하고 있다. 활짝 편 돛에서 대항해시대 바다를 주름잡던 마도로스의 향수가 느껴진다.
  전남 여수 소호항을 출발한 코리아나호가 다도해로 향한다. 바다는 비단처럼 잔잔하다. 모처럼 탁 트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걸렸다. 항구를 빠져나오자 어영차∼ 힘찬 구령 소리에 맞춰 돛이 올라간다. 돛이 마스트(돛대)의 꼭대기에 닿자 삼각형의 돛의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그렇게 두개의 돛이 펼쳐지자 배는 물찬 제비처럼 물 위를 미끄러져 달리기 시작한다. 상쾌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범선은 속도의 시대에서 잠시 벗어나게 한다. 느림의 미학에 한껏 취할 수 있게 해준다. 돛을 활짝 펴고 파도를 가르며 달리는 위풍당당한 범선의 자태는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모터보트의 천박함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범선은 또 낭만이 있다. 새로운 항로와 신대륙을 찾아 대양을 탐험하던 중세 대항해시대의 향수가 있다. 바다 건너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있다. 하얀 제복에 파이프를 문 채 키를 잡고 있는 선장과 구릿빛 얼굴에 건강미 넘치는 선원들도 ‘마도로스의 세계’를 흠모케 한다. 무엇보다 파도를 타고 넘는 부드러운 리듬을 즐기며 바람을 안고 만삭의 여인처럼 부풀어오른 돛을 바라보는 것이 범선의 진정한 매력이다.

범선은 돛을 달고 바람을 이용, 항해하는 선박을 말한다. 범선은 BC 3500년경 그려진 이집트의 벽화에 처음 등장한다. 그 후 범선은 항해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됐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던 대항해시대를 정점으로 전성기를 맞은 범선은 산업혁명 이후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은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범선은 없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해양 레포츠의 한 축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남 여수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코리아나호는 국내 유일의 범선이다. 핀란드에서 건조된 코리아나호는 선체 길이만 41m인 중형급 범선이다. 돛을 매다는 마스트는 4개. 이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높이가 23m나 된다. 마스트가 너무 높아 여수 돌산대교는 통과할 수 없다. 돛(세일)은 최전방에 있는 제노아를 비롯해 6개가 있다. 바람을 제대로 받았을 때 최고 속력은 14노트. 모터가 달린 동력선과 비교하면 거북이처럼 느리다. 그러나 뱃전에는 느끼는 속도감은 훨씬 빠르다. 

코리아나호의 무게는 99톤. 이 가운데 40톤은 선체 바닥에 깔린 납덩이의 무게다. 이 납덩이는 바람이 거세도 배가 뒤집히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코리아나호는 선체가 좌우로 70도가 기울어져도 뒤집히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복원된다. 선내에는 냉온방시설을 갖춘 45개의 객실과 오락실 등이 있다. 근거리 항해에는 200명, 원양 항해에는 90명까지 탑승이 가능하다.

코리아나호에서의 범선 체험 가운데 가장 인상깊은 것은 돛을 올리는 일이다. 돛은 범선에 생명을 불어넣는 존재와도 같다. 그러나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돛을 끌어올리는 일은 아주 힘이 든다.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야 돛이 올라간다. 몇개의 돛을 올리고 나면 어깨가 뻐근해진다.

정채호 선장은 “범선 세일링을 제대로 즐기려면 스스로 선원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동료와 함께 높은 파도와 바람 등 역경에 맞서 싸울 때 느껴지는 사나이들의 우정이 범선의 묘미”라고 말한다.

그러나 코리아나호에서 돛을 올리는 것 이상의 체험은 어렵다. 밧줄이나 와이어를 조작하는 등 대부분의 일들은 숙련된 선원들만이 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요트 세일링을 체험하고 배운다기보다 범선에 탑승해 보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대신 선상 파티만큼은 완벽하게 베풀어준다.

여수=글·사진 김산환 기자 isa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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