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때였는데 당시엔 너무나 참을 수 없었다. 곧장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 뿐.”
▲두 팬의 간절한 기도
특히 이날은 김동진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서 팬 두 명이 찾아온 터라 더욱 힘들었다. “경기 직후 만났는데 그 분위기를 느꼈다고 하더라. ‘동진 선수, 우리가 기도 많이 해드려야 되겠어요’ 하시는 데 정말 가슴이 찡했다.”
그리고 5개월 후인 8월27일 톰스크전. 그가 두 골을 터트리며 2-1 승리를 이끌자 홈 팬들도 드디어 박수 갈채로 화답했다. 그는 “그 경기가 전환점이었다. 팀이 러시아리그 우승까지 거둬 뿌듯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제니트는 러시아 슈퍼컵과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유럽축구연맹(UEFA)컵을 모두 쓸어담았고 김동진은 차범근 이후 19년 만에 한국 선수로 UEFA컵에 키스하는 감격을 누렸다. “나와 (이)호를 비롯 팀 전체가 ‘천운’을 맞았다”며 겸손해한 김동진. 기자는 인터뷰 내내 러시아에서 2년간 있었던 그의 희노애락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같은 UEFA컵 결승 출전
김동진이 15일 UEFA컵 결승전에서 뛰게 된 배경은 드라마틱했다. 왼무릎 부상으로 결승 3일 전에야 운동을 재개, 선발 출전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후반 10분부터 몸을 풀었는데 오른쪽 수비수(안유코프)가 다치는 바람에 내가 벤치로 들어가고 다른 선수가 몸을 풀었다. ‘들어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스쳤다”는 그는 “그런데 후반 27분 데니소프가 첫 골을 넣었고 5분 뒤 다시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때 다시 기대감을 가졌다”고 밝혔다.
결국 김동진은 후반 40분 터치라인 앞에 섰고, 후반 추가시간에 교체 멤버로 들어갔다. “투입을 기다리는 데 대기심이 추가시간을 알리더라. ‘어∼ 이러다 못 들어가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났다. 그 땐 1분이라도 뛰고픈 마음이 너무 간절했으니까(웃음)”. “우승 직후 감독님을 껴안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는 김동진은 “재활을 위한 한국행을 지원해주고, UEFA컵 결승전 까지 뛰게 해 주시는 등 모든 게 고마웠다”며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배려에 감사를 잊지 않았다.
▲“제니트의 에인세”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김동진은 유럽의 신흥강호 제니트에서 당당히 주전 왼쪽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단순히 수비만 잘하는 게 아니다. 지난 해 러시아리그와 UEFA컵에서 4골을 기록하며 시대가 요구하는 ‘공격적 윙백’의 모습도 유감없이 선보였다. 2007년 러시아리그 최우수 왼쪽 수비수에도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
그래서 최근 그의 플레이를 본 이들은 김동진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거쳐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가브리엘 에인세에 빗대어 “제니트의 에인세”로 부르기도 한다. 공교롭게 에인세는 그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수비수. 김동진은 “에인세와 애쉴리 콜(첼시)을 좋아하는 데 에인세가 목표로 하는 수비수상에 더 가깝다”며 “러시아리그가 TV로 중계되지 않아 국내 팬들이 내 경기를 보기 힘든 것으로 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 예선과 베이징올림픽에서 기회가 주어지면 사력을 다해 뛰겠다”는 말로 ‘달라진 김동진’의 모습을 다짐했다.
다른 제니트 선수들처럼 김동진 역시 빅리그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시기가 언제일 지 모르지만 꼭 가고 싶다”는 김동진에게 “아드보카트 감독이 말리면 어떻하겠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그는 오히려 “제가 감독님을 먼저 말려야할 것 같다”며 웃었다.
구리=글·김현기
사진·전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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