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무럭이(태명)를 위해.”
아빠의 약속, 양지호(37)는 끝내 지켜냈다. 우승이 확정되자 그린 위에서 아내 김유정 씨를 꼭 안았다.
67년 한국오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예선통과 선수 한국오픈 사상 첫 정상, 그것도 완벽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이었다.
양지호는 24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CC에서 열린 ‘코오롱 제68회 한국오픈골프선수권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5오버파 76타를 기록했다. 한국오픈이라는 중압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3라운드까지 추격자들과의 격차를 크게 벌려놓은 덕분에 최종 합계 9언더파 275타로 리더보드 최상단에 이름을 새겼다. 2위 그룹과는 6타차였다.
기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한국오픈은 2026년 3월31일 기준 KPGA 투어 카테고리 60위 이내 투어프로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출전권이 주어진다.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양지호는 예선전에 출전했고, 18위로 출전권을 획득했다. 한국오픈 67년 역사상(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대회 취소) 예선전을 통과한 선수가 본 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은 양지호가 처음이다. 이전까지 최고 성적은 준우승이었다.
우승 상금은 총 7억원이다. 5억원에 특별 보너스 2억원을 더 받는다. 오는 7월 영국 로열 버크데일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디오픈 챔피언십 출전권도 품었다.
와이어투와이어, 완벽한 우승이었다. 1라운드 1타차 선두, 2라운드 4타차 선두, 3라운드 7타차 선두, 그리고 이날 우승까지 단 한 번도 공동 선두조차 허용하지 않은 질주였다. 한국오픈 역사상 공동 선두를 허용한 경우를 제외한 와어이투와이어 우승은 4차례 있었다. 1965년 한장상, 1985년 조호상, 1987년 이강선, 그리고 2023년 한승수(미국) 이후 양지호가 기록하게 됐다.
KPGA 투어 개인 통산 3번째 우승이다. 2008년 KPGA 투어에 데뷔한 양지호는 줄곧 일본 투어에서 활약한 그는 데뷔 15년 만인 2022년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뒤 2023년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바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이번 대회 전까지 양지호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가짐을 달랐다. 바로 오는 12월에 태어날 무럭이(태명)가 때문이다. 이전까지 양지호의 곁을 지키며 그의 캐디로 활동한 아내는 무럭이를 위해 캐디백을 내려놨다. 캐디백을 내려놓았지만, 이번 대회 내내 현장을 찾아 양지호와 호흡했다. 2라운드에서는 현장을 찾았다가 홀로 택시를 타고 집에 가기도 했다. 가족을 위해 각오를 새로 다질 수밖에 없는 그였다.
결과로 나타났다. 1라운드부터 이날까지 날카로운 샷을 선보이며 무섭게 치고 나갔다. 2라운드 18번 홀(파5) 이글이 기점이었다. 탄력을 받은 그는 3, 4라운드에서 환상적인 칩인 버디를 기록하며 현장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9번 홀(파4)이었다. 세컨드 샷이 그린 주변 러프에 빠졌다. 사실상 이날 최대 위기였다. 양지호는 1, 2번 홀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2타를 잃으며 흔들리는 모습으로 라운드를 시작했다. 반면 당시 2위 왕정훈은 전반에만 버디 5개를 솎아내는 등 맹추격에 나섰다.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 여기에 우정힐스CC의 그린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 세이브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많은 갤러리, 중압감 속에 시도한 어프로치. 강하게 맞았다. 볼이 그린에 떨어진 뒤 홀을 향했지만, 너무 빨랐다. 그런데 깃대에 맞고 그대로 볼이 홀로 빨려 들어갔다. 사실상 행운의 버디였다. 양지호는 홀로 빨려 들어가는 볼을 지켜본 뒤 웨지를 던지고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양지호는 “이번 주 내내 뭔가 이상했다. 행운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웃었다.
마지막 우승 퍼트. 양지호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다. 우승이 확정되고 동료의 축하를 받은 뒤 아내 김유정 씨도 다가와 양지호에게 물을 부었다. 양지호는 아내를 꼭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는 “사실 오늘 필드에 나오기 무섭더라. 그래도 어제 경험했던 부분들이 오늘 도움이 된 것 같다”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아직 2홀이 더 남은 것 같다. 내 샷을 믿고 플레이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한국오픈 우승이다. 양지호는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며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아내와 12월에 태어날 무럭이에게 고맙다. 힘들 때마다 무럭이를 생각하며 버텼다”라며 “오늘 부모님도 오셨는데, 좋을 때나 힘들 때 항상 믿고 지켜봐 주셨다.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안다. 이렇게나마 보답해드린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천안=권영준 기자 young0708@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