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오스카 품은 윤여정…이제 ‘사람’을 본다

 지난 26일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대단한 사건이다. 그런 만큼 이 소식은 지난 주 국내 대중문화계 이슈 전체를 빨아들이다시피 했다. 그런데 그 보도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아시아 여배우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1958년 일본배우 우메키 미요시가 영화 ‘사요나라’로 같은 상을 수상한 이래 63년 만의 일이란 설명. 흥미로운 건, 여기서 그 첫 사례 우메키가 어떤 배우였는지 알려주는 보도는 거의 없단 점이다. 비단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아카데미상 주최국 미국 언론에서조차 우메키를 다시 돌아보려는 분위기는 딱히 없다.

 이유는 단순할 듯싶다. 애초 우메키는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긴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초’ 타이틀 외엔 딱히 거론할 만한 게 없다. 1955년 미국에 정착했지만 그가 미국서 출연한 영화는 고작 6편, 나머지는 TV드라마 단회 출연이 대부분이다. 거기다 상당히 일찍 은퇴했다. 한국나이 44세 때인 1972년 배우인생을 접은 후 필름편집장비 대여사업 등을 하다 2007년 79세 일기로 사망했다. 여러모로 ‘아카데미상 수상배우답지 않은’ 인생행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선 아시아배우에 대한 수요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아직 ‘화이트 워싱’도 심하던 때다. 어쩌다 아시아인 배역이 씌어져도 이를 백인배우에 맡긴 뒤 아시아인으로 분장시켜 내보내던 행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아카데미상 수상배우라도 별 수 없었다. 우메키는 ‘사요나라’로부터 4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자신이 출연했던 공연뮤지컬 영화판을 통해 스크린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이런저런 비중 없는 조역들을 거치다 결국 이른 은퇴를 결심하게 된 순서다.

 

 이처럼 허탈한 사연은 당시 미국서 영화계에만 국한되던 게 아니다. 아시아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차지한 일본가수 사카모토 큐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보를 거쳤다. 1963년 일본어노래 ‘위를 보며 걷자’가 빌보드 핫100 차트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엄밀히 ‘거기까지’였다. 이어 발표한 싱글 ‘중국의 밤’은 빌보드 핫100 58위에 그쳤고, 앨범 역시 핫200 14위가 최고 순위였다. 그리고 거기서 사카모토의 미국 커리어도 끝났다. 미국음반사 측이 더 이상 그에게서 가능성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답답한 흐름에 대한 근본적 해석은 간명하다. 당시만 해도 서구에서 ‘아시아 콘텐츠’란 일종의 ‘이벤트’로서 그때그때 소비됐을 뿐 그를 구현한 아티스트 자체가 ‘스타성’을 얻을 순 없었단 것이다. 소위 ‘콘텐츠’만 팔리지 ‘사람’은 팔릴 수 없었단 것. 그만큼 인종의 벽은 높고 두터웠다. 이 시기 서구에서 아시아 아티스트가 제대로 된 스타성을 얻어낸 경우는 기껏해야 쿵푸스타 이소룡 정도에 그친다.

 

 이 같은 분위기가 드디어 바뀌기 시작한 건 이소룡 사후 20여년이 지난 199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다. 1996년 또 다른 쿵푸스타 성룡의 ‘홍번구’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게 신호탄이 됐다. 이후 이연걸, 주윤발, 양자경 등 다양한 홍콩배우들이 줄줄이 미국진출에 나섰고, 그들 상당수는 미국서 나름 탄탄한 스타성을 얻어내 10년 이상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2010년대부턴 K팝 가수들이 연달아 미국진출에 성공하고 있다. 이들 역시 각자 스타성에 기반해 충성도 높은 팬덤을 확보하며 시장에 안착하는 분위기다.

 

 그렇게 세상은 달라지고, 할리우드 역시 달라지고 있다. 그러니 윤여정의 향후 할리우드 커리어도 우메키 미요시 경우와는 전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언급했듯, 이젠 ‘사람’이 받아들여지는 시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러면 모든 게 달라진다.

 

 한편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대중문화산업 간 해외진출 희비(喜悲)를 읽을 수도 있단 점이다. 1950~60년대는 일본대중문화 최전성기였다. 아시아에서 가장 월등한 경제력 바탕으로 문화소비시장도 증대해 퀄리티 높은 문화상품들이 각 분야에서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때는 서구사회 젊은 층이 비트세대에서 히트세대로 이동하며 동양정신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런 관심은 곧 아시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서로 정확히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일본대중문화는 이 시기 전 세계로 전파되며 아시아문화 전체를 대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시기는, 위 언급했듯, 아시아 ‘콘텐츠’는 받아들여져도 아직 ‘사람’은 그러기 힘들던 때다. 그래서 거기서 그쳤다. 그나마 ‘사람’이 보이지 않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정도만 서구 마니아시장에 도달해 활약했을 뿐이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서구사회가 아시아문화에 한층 더 열리는 시기를 맞이했지만, 정작 일본은 이때 활약하기 힘들었다. 1990년 버블경제 붕괴 이후 대중문화산업 전체가 위축돼 퀄리티 높은 상품들이 더 이상 나오질 않았기 때문이다. 마니아층이 굳건해 잘 버티고 있던 만화와 애니메이션만 빼곤 대부분 그랬다.

 

 그렇게 일본이 ‘치고 나갈 수 없었던’ 틈을 타 먼저 홍콩배우들이, 이어 한국 K팝 가수들이 미국에 진출해 호응을 얻어냈고, 홍콩대중문화산업이 중국으로 흡수되며 콘텐츠 퀄리티가 저하되자 이제 한국만 남게 됐다. 그러자 K팝에 이어 한국영화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며 세계 곳곳에서 흥행 성공을 거두고 있고, TV드라마까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또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이다. 물론 엄연히 ‘미국영화’로 수상한 것이기에 ‘기생충’ 등과는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어찌됐건 세계 속 아시아배우들의 도약을 상징하는 자리에 한국배우가 서게 됐단 점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고 기대효과도 크다.

 

 확실히 대중문화 판이란 참 복잡하다. 소위 새옹지마(塞翁之馬)가 하도 빈번히 벌어지는 통에 무엇이 진정 지속가능한 호재이고 무엇이 아닌지 가늠하기 힘들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저 ‘63년 터울 수상’이란 것도, 액면 그대로 ‘뒤늦은’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적기(適期)를 만난 ‘진정한 호재’였단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후크엔터, 네이버 영화 ‘사요나라’ 포스터

<스포츠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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