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시작 10분 만에 세계관 몰입 완료…‘전지적 독자 시점’

10년 넘게 연재된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완결되던 날. 김독자(안효섭)는 주인공 유중혁(이민호)만이 홀로 살아남는 결말에 실망감을 느낀다. 유일한 독자였던 김독자는 작가에게 “최악”이라며 항의성 메일을 보내고 아이디 tls123의 답장 메일을 받는다. 그럼 당신(김독자)이 직접 결말을 완성하라는 것.

 

그리고 곧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이 펼쳐진다. 동호대교 위에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멈춘 지하철. “지구의 무료 서비스는 종료되었습니다”는 안내 방송. 어리둥절한 사람들 틈에 나타난 도깨비가 “하나 이상의 생명체를 죽이시오”라는 첫 번째 미션을 전달한다. 성공 시 코인을, 실패 시 사망한다. 인간의 본모습을 보여달란 말도 덧붙인다.

 

분명 10년 전 읽은 소설의 도입부다. 소설의 결말을 알고 있는 유일한 김독자의 눈앞에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됐다. 이 과정에서 유년시절부터 동경해온 주인공 유중혁을 만나 동맹을 제안한다. 하지만 반복된 회귀로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된 유중혁은 냉소적 태도로 김독자를 대한다. 새로운 결말을 써야 하는 김독자는 과연 멸망한 세계 속 괴수들 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김병우 감독)은 2018년 연재 이후 현재까지 누적 조회수 2억 뷰 이상을 기록한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한국형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말에 걸맞다. 시작부터 끝까지 브레이크가 없는 롤러코스터에 탄 기분이다.

 

전체 컷의 80% 이상이 시각특수효과(VFX) 컷이다. 300억이란 거대 자본이 들어간 이유다. 김독자를 집어삼킨 빌딩 크기의 어룡과 화염 속 날아오르는 화룡, 얼굴이 촉수처럼 갈라지는 땅강아지, 거대 사마귀, 들개와 아르마딜로를 합쳐 공격과 갑옷 방어가 가능한 크리처가 등장해 관객을 놀라게 한다. 잘 만들어 무서운 놀이동산에 떨어진 듯한 기분. 그럼에도 전투의 배경이 대체로 지하철역, 한강, 편의점 등 익숙한 공간에서 진행된다. 판타지와 현실이 적절히 혼재돼 낯간지러움이 줄었다.

 

김병우 감독은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똑똑하게 압축했다. 원작 팬덤은 서운할 수 있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러닝타임 2시간을 맞췄다. 덕분에 속도감이 대단하다. 미션 성공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일명 신파로 불리는 감성 호소 요소도 거의 뺐다. 

 

코앞까지 달려오는 적들을 처리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올드보이(2003) 장도리신처럼 느껴진다. 곳곳에 만화 같은 앵글로 볼거리를 더해 이 작품의 뿌리가 판타지임을 알린다.  

 

안효섭은 데뷔 10년 만에 영화 주연으로 나섰다. 단단히 칼을 간 모습이다. 김독자는 학창시절 학교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 그런데도 고맙단 인사 한 번 없는 사람들을 위해 출입문을 한참 동안 잡아주기도 하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백팩을 앞으로 매고 있는 기본적인 배려가 몸에 뱄다. 감독과 오랜 대화를 통해 김독자의 이런 디테일을 살렸다. 관객이 캐릭터에 빠르게 마음을 내어주도록 돕고, 중후반부 인간의 본성을 다룬 부분에선 공감을, 성장을 다룬 장면에선 극적 효과를 노렸다. 

 

이민호는 최강 능력치를 가진 유중혁의 고독과 무게감을 제대로 표현한다. 멸망의 세계에서 인간이 벌을 받게 된 이유를 김독자에게 묻는데,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부분을 이민호의 입을 통해 던진다. 속편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민호의 서사를 더 길게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배우 채수빈, 신승호, 나나가 김독자의 동료로 매 미션을 돌파한다.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길영 역의 권은성이다.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웃음이 터지는 건 모두 권은성의 몫. 성인 2명 분은 거뜬히 해내는 10세 배우의 활약도 관전 포인트다. 오는 23일 개봉.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