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아파트 영화는 계속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지난주 다시금 관심이 모아졌다. 17일까지 열리는 제48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받아 처음 ‘제대로’ 세계무대에 선보인 탓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해외 판로도 판로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난달 17일 영화진흥위원회 심사에서 내년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카데미상 향방에 청사진을 마련해준다는 토론토영화제 반응으로 내년 아카데미상 전망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단 것.

 

거기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해외에선 그 성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란 반응들이 많았던 영화다. 당장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부터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실수지만, 그 정서를 이해 못할 테니 이해는 간다”고 촌평한 바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 영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서브장르는 존재하지 않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도 엄밀히 분류하자면 디스토피아 재난 스릴러 정도가 되겠지만, 한국선 이제 ‘아파트 영화’란 서브장르도 따로 성립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진흥위원회의 아카데미상 출품 선정 이유에서도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계급과 부를 상징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한국 일반가구 중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가구가 전체의 63.3%, 여기서 아파트만 따져도 51.9%로 전체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의 아파트 거주 가구 수는 2019년 처음 50%를 돌파한 이래 매년 증가 중이다. OECD 37개 회원국 중 국민의 공동주택 거주 비율도 단연 1위다. 2위는 다소 큰 차이를 두고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아파트 거주에 대한 인식 부분이다. 물론 해외 어디든 도심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들은 존재하겠지만 전반적으로 공동주택은 서민 공간이란 인식들이다. 그러나 한국선,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층(가구소득 10분위 중 9~10분위) 77.5%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 비율은 해마다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그리고 모두들 ‘집값의 노마드’들이다. 위 조사에서 자가 주택 평균 거주기간은 2020년 10.6년으로 2010년의 11.4년에 비해서도 또 떨어지고 곧 한 자릿수대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이렇듯 모든 환경과 조건이 다르다보니 아파트도 다르고 아파트가 함유하는 여러 인간요소들과 사회적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토론토 이후’ 나온 ‘콘크리트 유토피아’ 해외 평론들만 봐도 한국서 바라보는 것과는 차이가 생긴다. 예컨대 스크린 인터내셔널 지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소개하면서 2015년 영화화된 J.G. 발라드 소설 ‘하이-라이즈’나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슬픔의 삼각형’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렇게 온갖 알레고리들로 그득한 계급주의 우화들과 달리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상황들, 갈등 그 자체는 이미 한국사회서 실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사건사고 양상 기반이다. 그러니 영화 속 에피소드들이 한국인들에게만큼은 우화적으로 여겨지질 않는다.

 

이처럼 해외선 “그 정서를 이해 못할” 이른바 ‘아파트 영화’들은 ‘콘크리트 유토피아’ 전후로 계속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마치 서브장르처럼 성립될 수도 있으리란 얘기가 나온다. 당장 올해만 해도 그렇다. 먼저 지난 5월 개봉한 독립영화 ‘드림팰리스’가 있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 배경으로 아파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갖가지 인간갈등들을 조명했다. 상당한 호평을 얻어내 4일 열린 제43회 영평상에서 감독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여름 ‘밀수’로 5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배우 염정아는 현재 웹툰 ‘위대한 방옥숙’ TV 드라마화 주연으로 물망에 오른 상태다. ‘위대한 방옥숙’은 어렵게 얻은 한강 조망권 아파트 앞으로 고층 주상복합 계획이 들어서 집값이 떨어지자 재개발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파트 주부들 행각을 그린다. “한강 조망권 지키려다 한강에 시체를 유기한 여자들의 이야기”란 홍보문구로 그 색채가 잘 설명된다. 이처럼 미디어를 넘나들어 ‘아파트 영화’들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서브장르’ 운운도 빈 말은 아닌 셈이다.

 

물론 해외에도 아파트란 공간에 방점을 찍고 전개되는 영화들은 많다. 그러나 접근이 확실히 다르다. 먼저 공동주택 공간 자체의 ‘사생활이 일정부분 무너지는’ 구조에 주목해 거기서 관음증적 모티브를 찾는 영화들이 많다. 1954년 미국영화 ‘이창’부터 1996년 프랑스영화 ‘라빠르망’ 등까지 수없이 반복돼온 패턴이다. 또 언급했듯 대표적 서민 주거지란 인식과 함께 재건축이 어려워 노후화된 공간이 많단 점에서 각종 공포영화의 불길한 공간배경으로 설정되는 경우도 많다. 1992년 미국영화 ‘캔디맨’, 2002년 일본영화 ‘검은 물 밑에서’, 2007년 스페인영화 ‘REC’ 등이 예다.

 

한국영화도 처음엔 이런 식으로 아파트란 공간을 해석했다. 문학이후연구소에서 엮은 서적 ‘한국 호러영화 속의 아파트 기행’에 상황이 잘 묘사돼있다. 한국 공포영화 ‘소름’ ‘아파트’ ‘이웃사람’ ‘숨바꼭질’ ‘도어락’ ‘목격자’ ‘#살아있다’ 등 7편에서 배경이 된 아파트 공간을 분석한 서적이다. 그중 지금의 ‘아파트 영화’ 관심사가 담기기 시작한 게 2013년 ‘숨바꼭질’부터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부터, 특히 2019년 폭발한 ‘아파트값 광풍’을 맞아 기획된 콘텐츠가 2023년의 ‘아파트 영화’를 구성하게 된 순서.

 

그러나 더 넓게 보면 이미 1980년대부터도 ‘아파트 영화’는 예고돼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영화의 두 거장, 임권택과 김기영 감독의 1980년대 영화 중 아파트가 중요한 모티브로 기능하는 1980년 작 ‘복부인’과 1984년 작 ‘육식동물’에서, 아파트는 1970년대 서울 강남 개발로 촉발된 부동산 투기 열풍 대상이자 사회문제 핵심으로 등장한다. 그로부터 40여년, 한 세대도 넘게 지났다. 아파트란 공간 자체는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오직 아파트를 둘러싼 갖가지 사회문제들만 날이 갈수록 심화될 따름이다. 해외서 그 정서와 배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관계없이 ‘아파트 영화’는 앞으로도 한국서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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