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귀멸의 칼날’, 韓·日의 온도차

 ‘귀멸의 칼날’은 결국 ‘1일 천하’로 끝나고 마는가. 지난 27일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하 ‘귀멸의 칼날’) 얘기다. ‘일본서 역대 흥행기록을 경신했다’는 타이틀로 사전홍보가 이뤄져 개봉 전 흥행기대가 엄청났던 콘텐츠다. 그리고 그 기대에 상당부분 부응하는 듯도 했다. 개봉일 27일 오전 ‘귀멸의 칼날’ 사전예매율은 무려 46.2%, 7만8988명을 기록했었다. 그리고 27일 일일집계에서도 6만6581명을 동원하며 20일 개봉 이래 선두를 달리던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제치고 1위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귀멸의 칼날’ 기세는 그게 끝이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도로 ‘소울’에 1위를 내줬고, ‘소울’과의 흥행격차도 점차 벌어져갔다. 그러다 첫 주말을 맞이한 30일 토요일, ‘소울’ 11만8102명 대 ‘귀멸의 칼날’ 4만3889명이 됐다.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차이가 벌어진 셈이다. 30일까지 나흘간 ‘귀멸의 칼날’ 누적관객수는 유료시사회 포함 17만409명. 열기가 빨리 식어 최종관객수는 50만에 못 미치리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결국 저 어마어마한 미디어 홍보를 등에 업은 ‘귀멸의 칼날’도 한국선 그저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단 얘기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층에서만 대단한 화제를 불러 모았을 뿐, 그들 화력이 초반 소진된 후 일반대중에 공이 넘어가고 보니 딱히 매력 있는 콘텐츠로 낙점 받지 못했단 것. 그런데 많은 점에서 이 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에 가까웠다. 조금만 시장 상황에 관심 있었어도 애초 큰 기대는 무리한 점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먼저, 한국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란 근본적으로 ‘여성 관객층’이 흥행을 끌고 가는 콘텐츠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가 국내 극장가에 걸린 딱 30년 전부터 지금껏 늘 그래왔다. 코로나19 판데믹 이전 ‘마지막 애니메이션 대박’으로 기억되는 2019년 ‘겨울왕국 2’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시 CGV 예매 관객 분석에 따르면, 무려 60만 명이 몰린 개봉 첫 날 관객 성비는 여성이 69.6%로 드러났었다. 이 정도 70% 레벨이 사실상 대부분 애니메이션 콘텐츠에서 그대로 유지돼온 흐름.

 

 물론 여성층이라고 ‘귀멸의 칼날’ 같은 액션 어드벤처를 안 즐기는 건 아니다. 그런 식이면 국내 ‘마블 신화’ 등은 애초 쓸 수가 없었다. 다만 이들은 애니메이션 소비에 있어서만큼은 액션 어드벤처보다 드라마성 강한 판타지 쪽에 훨씬 열렬한 반응을 보여 왔단 얘기다. 액션 어드벤처는 실사를 선호하고, 애니메이션은 ‘그와는 다른 것’들이 주로 소비돼온 흐름이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액션 어드벤처성이 강조됐던 ‘인크레더블’ ‘주먹왕 랄프’ 등은 국내서 각각 89만8773명, 91만9202명 등 보기 드물 정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해온 바 있다. 한편 한국서 일본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을 보유한 ‘너의 이름은’(373만6502명)이 정확히 드라마성 강한 판타지 로맨스물이란 점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 다음, 일본서도 ‘귀멸의 칼날’ 대히트는 어디까지나 ‘코로나19 특수’란 분석들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등 경쟁상대가 사라진 무주공산(無主空山)이었단 점도 컸지만, 코로나19 탓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넷플릭스 등 OTT 열풍이 일어난 점이 특히 주효했던 것으로 꼽힌다. 그 탓에 극장판 전작에 해당하는 ‘귀멸의 칼날’ TV판 시청자들이 애니메이션 마니아층 기존 규모를 훨씬 뛰어넘도록 생성되면서 프랜차이즈 자체 팬 베이스가 크게 늘어났단 것. 그러다 TV판에서 바로 이어지는 후속편 격 극장판이 등장하자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로 관객들이 몰려갔단 순서다.

 

그런데 이 역시도 한국선 재현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한국도 OTT 열풍이 인 건 마찬가지지만, 한국서 OTT 콘텐츠는 대부분 실사드라마 장르에서 소화된다. 꼭 실사가 아니더라도 극장용 애니메이션쯤은 돼야 주류적으로 소화되는 정도. TV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유아용 콘텐츠를 제외하곤, OTT 내 인기 끄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애초 한국선 주류 콘텐츠 자체가 아니다. 그러니 그를 통해 새롭게 팬 베이스가 만들어지는 특수를 누리기도 어려웠다.

 

나아가 한국은 일본처럼 TV 콘텐츠에서 미디어믹스 된 극장판 콘텐츠 자체가 딱히 상업성을 보여준 사례가 거의 없다. 사실 전 세계적 기준으로도 그렇다. 그런 식 미디어믹스가 가장 안전한 상업전략으로 자리 잡은 곳은 일본밖에 없다시피 하다. 콘텐츠 ‘되새김질’을 유난히 즐기는 일본만의 특색이 한국서 재현될 일은 애초 없었다.

 

한편, ‘귀멸의 칼날’ 일본 대히트는 특유의 ‘마츠리(축제)’ 요구 심리였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일본선 어찌됐건 각종 다양한 지역축제 열기가 대단하다. 워낙 사람과 사람 간 거리가 먼 개인주의사회이기에 지역축제 등 ‘한 마음 한 뜻’ 이벤트로 만성적 고립감을 해소하려는 문화 분위기가 늘 존재해왔단 것. 그러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 간 거리는 한층 더 멀어지고, 스트레스 해우소 역할을 하던 축제조차 제한을 받게 되니, ‘모두가 같은 영화를 보는’ 이벤트를 자체적으로 설정해 문화적 유대감을 얻어내려 했단 논리다.

 

좀 비약이 심해 보이긴 해도, 한국의 ‘1000만 영화’ 수준으로 관객이 몰리는 일이 거의 없는 일본 분위기라면 ‘귀멸의 칼날’ 현상도 어디까지나 대중심리 이상기후로서 이해하며 매우 특수한 ‘코로나19 정서’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는 자체는 틀리지 않은 자세다. 동시에, 한국은 그와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란 점도 말이다.

 

끝으로, 어찌 됐건 한국과 일본은 코로나19 판데믹에 대처하는 자세가 크게 다른 나라들이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일본서 ‘귀멸의 칼날’은 어디까지나 극장관람에 이렇다 할 제재가 없고 심지어 국내여행 다니라고 캠페인까지 벌이는 국내 분위기, 그럼에도 미국 등 여타 영화선진국들선 입장이 달라 해외 새 영화가 공급되지 않는 매우 복잡한 환경과 조건들이 클릭돼 벌어진 현상이었다. 쉽게, 콘텐츠 자체 매력 등 영화 내적요소보다 영화외적 환경과 조건 차원 문제가 더 주요한 흥행원인이 됐단 얘기다. 그러니 각국서 코로나19 관련 환경과 조건이 일본과 차이가 생기기만 해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일은 없었단 얘기도 된다.

 

어떤 점에서 각 나라간 국경이 사실상 막히다시피 한 코로나19 판데믹 속 대중문화 흐름이란, 각 지역서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들이 국지적 현상만을 일으킬 뿐 그 진동이 국경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상황을 꾸준히 연출해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한국과 일본의 극렬한 ‘귀멸의 칼날’ 온도차 역시 그런 차원에서 먼저 바라보고 해석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 워터홀 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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