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환자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스타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한껏 파티를 즐겼다. 유방암 인식 향상을 위한다는 자선 행사가 남긴 것들이다.
지난 15일 패션 매거진 더블유코리아(W Korea)는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행사 ‘러브 유어 더블유(Love Your W) 2025’를 열었다. 2005년부터 진행돼 온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으로 유방암 조기 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고 여성 건강 증진을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 갈라 디너와 파티 수익금 일부를 통해 한국유방건강재단 활동을 후원하고 참여형 캠페인을 통해 여성과 저소득층의 검진 및 치료비를 지원한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이날 행사에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빈, 고수, 고현정, 공명, 그레이, 김민하, 김세정, 김영광, 김영대, 김지석, 노상현, 노정의, 덱스, 르세라핌 채원·카즈하, 몬스타엑스 형원·셔누, 문소리, 바밍타이거, 박규영, 박은빈, 박재범, 변우석, 수현, 스트레이키즈 방찬·승민, 아이들 미연·민니·소연·슈화·우기, 아이브 레이·안유진·장원영, 아일릿 윤아·모카·민주·원희·이로하, 에스파 카리나·윈터·지젤·닝닝, 엔믹스 해원·설윤, 엔하이픈 성훈·제이크·정원, 엘리스, 올데이프로젝트 애니·타잔·베일리·영서·우찬, 우원재, 원지안, 이동휘, 이민호, 이수지, 이수혁, 이영애, 이유미, 이준혁, 이준호, 이채민, 임수정, 임지연, 있지 예지·유나, 장윤주, 전소니, 전소미, 전여빈, 정려원, 정해인, 조유리, 추영우, 코드쿤스트, 크리스탈, 키키 지유·이솔·수이·하음·키야, 태양, 하정우, 화사, 효연 등이 참석했다.
유방암 인식 개선과 모금을 통한 기부가 목적이지만 정작 홍보용으로 공개된 디너 파티 영상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술과 음악 속에 파티를 즐기는 등 취지와 거리가 먼 모습이 담겼다.
수십 명의 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였지만 정작 유방암 관련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명 브랜드들의 협찬을 받아 럭셔리한 의상을 걸친 스타들은 고급 호텔에서 와인이나 샴페인을 마시며 파티를 즐겼다. 박재범은 히트곡 ‘몸매’를 부르며 “네 가슴에 달려있는 자매 쌍둥이” 등의 가사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고 참석 연예인들은 신나는 노래에 몸을 맡겼다.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이 아니라 그저 음주 파티와 유명 연예인들의 친목 행사나 다름 없었다.

당연히 대중은 “이게 유방암 캠페인이냐”는 황당함과 실망감을 넘어 허탈함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남초와 여초 가릴 것 없이 공분을 표하고 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X(옛 트위터)에서도 하루종일 ‘유방암 인식’, ‘연예인들’ 등의 검색어가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당사자인 유방암 환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멤버 수 약 19만명의 유방암 환자 커뮤니티에서도 “유방암은 빼고 그들끼리 파티했으면 좋겠다”, “유방암은 이용당한 것 같아서 불쾌하다”, “너무 힘들어서 서로 위로받고 몇년 검진 통과했다는 글에 축하하고 응원받고 하는데 이 행사 때문에 종일 기분이 나쁘다” 등 모욕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방암을 겪지 않은 이들도 황당할 수 밖에 없는데 당연히 당사자들에게는 더욱 큰 상처로 남을 법 하다.

주최 측 설명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행사 수익금 기부 등으로 한국유방건강재단에 누적 금액 11억원을 기부했다. 연평균 5500만원 규모인 셈이다. 홍보 목적으로 초청된 연예인들이 파티를 즐긴 것과 별개로 취지에 공감해 주최 측에 남몰래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했는지 모르겠으나 사실상 브랜드 후원금이 대부분일 것으로 보인다.
좋은 취지의 기부금을 두고 많은지 적은지 가타부타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유방건강재단 등이 주최하는 일반 시민 중심의 러닝 행사 ‘핑크런’은 2001년 시작돼 올해까지 총 43억원의 기부금이 모금됐다. 올해만 해도 1억 9259만원의 모금액이 모였으며 유방암 인식의 상징인 핑크 리본이나 핑크색이 곳곳을 장식했다.
외국의 유방암 자선 행사에서는 셀럽들이 취지에 맞게끔 핑크색 의상이나 핑크리본을 달고 나온다. 미국의 유방암 연구 재단(BCRF)이 매년 뉴욕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개최하는 핫 핑크 파티(Hot Pink Party)는 다양한 분야의 셀럽들이 핫핑크 드레스 코드로 복장을 갖춘다. 자선 경매, 공연과 더불어 주변의 유방암 투병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기부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셀럽뿐 아니라 유방암 환자들이나 연구자들도 대거 참여하며 올해는 약 1100만 달러(약 150억 원)가 모금돼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번 W코리아 행사는 어땠나. 유방암 환자나 관계자는 쏙 빼놓고 스타를 대거 불러모아 유방암에 악영향을 미치는 술을 대접해 파티를 벌였다. 행사 20주년을 맞았다며 연예인에게 20살 기억을 묻고 걸그룹 멤버에게는 요즘 핫하다는 ‘Sugar on my tongue’ 챌린지를 시키며 섹시한 동작을 선보이게 했다.
행사 직후 올린 게시물에도 스타들이 파티를 즐기는 모습만 담았을 뿐 유방암 관련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해시태그로 ‘유방암인식개선’ 정도를 붙인 게 다였다.
주최 측의 상업적 이미지 마케팅도 문제지만 스타들의 행보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행사의 취지를 생각해서라도 셀럽의 참여는 분명 매력적 요소다. 다만 스타가 ‘유방암 인식 향상’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책임감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 참여는 단지 마케팅 수단이 된다는 비판을 받기 쉽다. 단순한 이미지 관리로서 행사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면 메시지와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성숙한 참여가 필요하다. 연예인이라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면 단순히 얼굴만 내미는 수준을 넘어 메시지를 만들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그곳에 공익적 목적을 가진 행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작 이번 행사에 참여한 대부분 스타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라는 게 아니다. 행사 직후라도 유방암 인식 개선을 위한 메시지를 전파했다면 여론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행사 참석 직후 톱스타만 참석할 수 있는 파티에 다녀왔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인증 사진을 업로드했다. 유방암 인식 관련 포스팅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극히 일부 스타들만 행사 취지와 맞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아이브 레이는 이후 팬들과의 라이브 방송에서 “다른 아픔이었지만 저도 옛날에 아픈 적이 있다. 그래서 더 (유방암) 인식이 좋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기 전에 공부도 했다”고 언급했고 아일릿 원희도 행사 무대 직후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고 모두들 검진으로 시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론 행사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도 마녀사냥하듯 몰아붙이는 건 부적절하다. 박재범도 논란 직후 “캠페인 이벤트 끝나고 파티와 공연은 바쁜 스케줄을 빼고 좋은 취지와 좋은 마음으로 모인 현장에 있는 분들을 위한 걸로 이해해서 그냥 평소 공연처럼 했다”며 “좋은 마음으로 무페이로 공연 열심히 했다. 그 좋은 마음 악용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대부분은 캠페인 홍보의 일환으로 초청 받아 파티에 참석한 것일뿐 취지에 공감하는 것과 별개로 그저 주어진 현장 분위기에 맞춰서 어울린 것일 수 있다. 바쁜 일정에도 행사에 참석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취지에 공감했지만 본의 아니게 유방암 환자들에게 되려 상처를 주게 된 것이다. 다만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 여론을 들끓게 했다면 지금이라도 진심을 드러내 상처 받은 환자들의 오해를 푸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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