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는 유망주④] MLB 향한 포수 부자의 꿈… “더 넓은 세상, 경험하길”

2대에 걸쳐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 도전장을 내민 야구 부자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 소속 포수 엄형찬(왼쪽)과 아버지 엄종수 코치의 모습. 사진=엄종수 코치 제공

 

“저도 좀 더 어렸을 때 갔더라면 어땠을까요?”

 

스물아홉, 늦깎이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아쉬움 섞인 미소가 번진다. 큰 무대에서 원 없이 뛰어보고 싶었다. 이제는 아들이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아버지가 보지 못했던 풍경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에서 활약 중인 포수 엄형찬(컬럼비아 파이어플라이스)과 그의 아버지 엄종수 코치가 주인공이다. 엄형찬은 서울성동초-덕수중-경기상업고를 졸업한 2004년생 기대주다.

 

지난 2022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통해 바다를 건넜다. 싱글A 무대에서 경험을 쌓아가며 강한 어깨와 빠른 팝타임(포수가 투수의 투구를 받아 도루저지를 위해 2루까지 송구하는 시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겨울 호주프로야구(ABL)로 파견, 38경기서 OPS(출루율+장타율) 0.912를 치는 등 타격 발전도 가파르다. 올 시즌은 손목 부상으로 시작이 늦었다. 전반기 32경기 출전, 타율 0.200(110타수 22안타) 2홈런을 기록하며 빅리그를 향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엄종수 코치는 아들 엄형찬(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의 든든한 멘토다. 엄 코치가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UMVP Catching Lab 아카데미에서 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종원 기자

 

엄 코치 역시 포수 마스크를 쓰고 미국 무대를 누볐다. KBO리그(한화)를 거쳐 미국 마이너리그(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등에서 선수로 뛰었다. 빅리그 그라운드까지 도달하지 못했지만, 소중한 경험을 했다.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서울고, 경기상업고 등을 거쳐 현재 서울 강동구 소재 포수 아카데미를 운영 중에 있다.

 

2대에 걸친 미국행. 외롭고 힘겨운 도전이라는 걸 알았지만, 아들의 도전을 막지 않았다. 엄 코치는 “어느 날인가 ‘아빠, 미국에 가고 싶어요’라고 하더라.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이 얘기를 했다”며 “성장하면서 도전하겠다는 그 마음을 한 번도 꺾지 않았다”고 전했다.

 

리틀야구 대표로 참가한 ‘칼 립켄 주니어 대회’가 계기였다. 그곳에서 본 자유로운 야구 분위기, 선수 중심 문화는 소년의 어린 마음을 단단히 흔들었다. 영어 공부도 자발적으로 시작했을 정도다.

 

엄 코치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든든한 멘토를 자처했다. “부모 입장에서 고민이 없을 순 없지만, 나 역시 지도자이기 때문에 더 냉정하게 봤다. 가능성이 있다면, 어린 나이에 도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포수 엄형찬(컬럼비아 파이어플라이스)의 모습. 사진=미국 마이너리그(MiLB) 홈페이지 캡처

 

아버지는 같은 길을 걸어봤다. KBO리그서 방출된 뒤 마이너 무대를 밟았던 지난날을 떠올린다. 2000년대 초, 나이는 어느덧 서른에 가까웠다. 문화 적응부터 언어 장벽과 당시 시속 150㎞를 상회하는 강속구 등 모든 것이 벽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확신했다. 포수라면 더 일찍 건너가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배터리 커뮤니케이션의 기본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엄 코치는 “(엄)형찬이는 지금 영어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도 곧잘 한다. 그 나이에 다양한 국적의 투수들과 직접 사인을 주고받고, 함께 경기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성장 속도가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선수 본인에게 있어 미국행을 결정하기까지는 확고한 각오가 필요했을 터. 엄 코치는 “워낙 힘든 길 아닌가. 그 어떤 결과에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 게 없다면 가더라도 특히 어린 나이에 버티기 힘들다”며 “형찬이는 처음부터 흔들림이 없었다. 스카우트들도 그걸 높이 평가했다”고 전했다.

 

미국에 있는 아들과 한국에 있는 아버지는 매일 긴 시간 통화하며 하루를 복기한다. 엄 코치는 기꺼이 ‘오답노트’ 역할을 맡는다. 그날의 투수 리드, 송구 타이밍, 상대 타자 분석 등을 듣곤 한다.

 

“주객이 전도됐다”며 활짝 웃는다. “아들이 불평불만하는 건 한 번도 없었다. 야구를, 포수를 정말 좋아한다”면서 “오히려 가족들이 위로받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캔자스시티 로열스 산하 마이너 소속 포수 엄형찬(왼쪽)과 아버지 엄종수 코치의 모습. 사진=엄종수 코치 제공

 

미국에 온 지도 3년이다. 그간 돈 주고도 못 살 경험들을 수확하며 값진 자양분으로 삼아왔다. 찰나의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은 덕분이다. 잠시 재활 차원에서 마이너로 내려온 베테랑들을 찾아 질문을 쏟아냈다. 포수 오스틴 놀라(현 콜로라도 로키스)를 비롯, 투수 세스 루고(캔자스시티) 등과의 만남이 대표적이다. 간절한 자세로 버티고, 또 버텨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엄형찬의 도전, 아버지의 꿈을 잇겠다는 의미만 담긴 것이 아니다. 그가 품은 가장 큰 목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열겠다는 것이다. 바로 한국인 포수 최초의 메이저리거다. 여태껏 한국 야구가 한 번도 열지 못한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현재 구단 평가도 좋다. 최근 구단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왔다. 엄 코치는 “묵묵히 꿈을 향해 가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스러웠다”고 전했다.

 

답이 정해진 길은 없다. 차근차근 자신이 택한 방향을 믿고 나아갈 뿐이다. 엄 코치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느 길을 택했든 보장된 성공은 없다. 결국 자신이 열어가야 한다”며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또 경험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지 못했던 만큼, 형찬이는 더 그러길 바란다”라고 애정 가득한 당부를 전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들은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엄종수 코치가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UMVP Catching Lab 아카데미에서 촬영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종원 기자


김종원 기자 johncorners@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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