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현실을 비춘 ‘노무사 노무진’은 배우, 감독, 스태프 모두에게도 따듯한 현장이었다. 작품을 마치고 나니 서운함이 몰려온 이유였다. 종영 인터뷰로 만난 차학연은 “‘현실에 견우 같은 인물이 있을까 싶었는데, 네가 연기한 견우를 보고 이해하게 됐다’는 임순례 감독님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차학연이 맡은 기자 출신 크리에이터 고견우는 도파민 가득한 견짱TV를 운영하는 유튜버다. 구독자를 늘릴 수 있는 콘텐츠라면 국뽕 채널도 마다치 않는 인물. 견우를 위해 대사에는 스피드감을 가미했고, 움직임도 빠르게 설정했다.
초반에는 “안녕 짱아찌들∼”하고 구독자 애칭을 부르는 대사만 내뱉어도 귀까지 빨개질 정도였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방 안에 조명과 마이크까지 설치해 인터넷 방송 부스를 만들었다. 특정 유튜버를 따라 하기보단 내 안에 있는 관종력을 꺼냈다. 그는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걸어 다니면서도 인터넷 방송을 하는 것처럼 연습해봤다. 익숙해지니 현장에서 촬영할 때는 통쾌함까지 느껴졌다”면서 “자세히 보면 견우는 자기 말에 자기가 감동을 하고 벅차한다. 가장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모습을 꺼내서 사이사이에 리액션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노무진·고견우·나희주…환상의 무진스
고견우는 노무진 역의 정경호, 나희주 역의 설인아와 팀을 이뤄 노동자의 편에 섰다. 정경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차학연의 눈이 한층 더 빛났다. “형한테 항상 1등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옆에 있고 싶고, 든든하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운을 뗀 그는 “원래 그런 성격이 전혀 아닌데 형 옆에선 쫑알쫑알 떠들고 싶어졌다. 좋아하고 의지했던 형”이라고 애정을 나타냈다.
평소에는 존경스러운 선배님으로 바라봤다면, 현장에서는 그 이상을 느꼈다. 정경호는 최종화가 끝나고 차학연에게 전화를 걸어 “네 역할이 너무 컸다.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다. 이 전화로 노력을 모두 보상받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내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해주다니 너무 따뜻하더라. 나도 형처럼 말해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모든 순간에 변함없는 모습으로 동료 배우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현장을 만든 리더였다. 차학연은 차기작 ‘이웃집 킬러’ 촬영장에서 정경호에게 배운 애티튜드를 따라 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신인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다. 내가 주인공으로 작품을 끌고 간다면 그들이 나로 인해 재밌게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멋진 선배의 마음가짐을 보여줬다.
꿀 떨어지는 커플로 엔딩을 맞은 설인아와의 호흡은 어땠을까. 차학연은 “우리는 서로 격려를 많이 해줬다. 의심하고 있을 땐 ‘이미 그 인물인데, 의심을 왜 하느냐’고 북돋워 줬다. 가감 없이 연기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셋이 모이면 극적이고 재밌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여러 버전의 무진스가 가능했다”고 돌아봤다.
결국 사랑을 쟁취한 ‘희주 바라기’ 견우의 무차별적인 애정표현도 웃음 포인트였다. “‘쟁취’라는 말이 재밌는 것 같다”고 입을 뗀 차학연은 “사실 견우는 처음부터 희주랑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희주가 자기를 좋아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직진한 게 아닐까. (희주가) 질투를 해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위로한다. 견우에게는 이 관계의 긴장감이 높진 않은 것 같았다”고 해석했다. 이어 “시청자분들이 보기엔 희주가 위에 있는 것 같았겠지만, 내가 보기엔 견우가 희주 위에 있었다. 그래서 서로 더 재밌게 연기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노무사와 기자 출신 유튜버…현실 반영 제대로
‘노무사 노무진’은 유령 보는 노무사의 좌충우돌 노동 문제 해결기를 담은 코믹 판타지 활극.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노동 이슈를 판타지 요소와 접목해 유쾌하고 경쾌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기계 끼임 사고로 사망한 고등학생, 태움과 의료사고 누명을 쓰고 생을 마감한 신입간호사, 업무와 무관한 교양시험으로 해고 압박을 받은 청소 노동자, 마트에서 카트 노동 중 쓰러진 청년 취업준비생, 화재 사고로 죽은 물류창고 노동자들과 부실공사를 일삼는 건설회사 등을 다루며 현실의 노동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노무사라는 직업을 알고 있었지만, 대본을 접하고 실제로 연기하며 바라본 현실은 더 참혹했다. 차학연은 “사람 대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세상 됐으면 좋겠다. 직업 뒤의 사람을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심은 있었지만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반성과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부담도 생겼다.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진 이야기들에 분노도 감출 길이 없었다.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시청 후기를 보며 다시 한 번 생각에 잠겼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 지인들도 유독 챙겨보며 피드백을 보낸 작품이다. 그는 “현실에서 일하는 분들의 공감을 산 것 같다. 각자의 자리에서 느끼는 어려움, 내가 부당한가 싶은 생각들을 통해 노동 현실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해준 분들이 계시다. 좋은 메시지가 잘 닿지 않았나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했다.
‘기자 출신 유튜버’ 타이틀을 단 견우를 연기했다. 범람하는 유튜브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차학연은 “장단점을 확실히 느꼈다”면서 “견우가 초반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목적성과 신념에 따라 콘텐츠가 달라지는 걸 보니 위험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기사는 사실 확인을 하는데, 유튜브는 장벽이 낮다. 견우처럼 조회 수와 돈에 목적을 가지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일 경각심을 가진다면 좋은 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반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공평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다”고 비교했다.

◆고견우가 선물해 준 자신감
따듯했던 현장과 힘이 된 동료 배우들, 이야기에 담긴 의미 있는 메시지까지. ‘노무사 노무진’은 차학연에게 선물 같은 작품으로 남았다. 캐릭터의 매력에 끌려 작품에 합류했지만, 대본을 읽고 나서 느낀 부담감을 해결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차학연은 “메시지를 잘 전달하려면 마냥 유쾌하기보다 견우로서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확실히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만족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잘해낸 것 같다는 뿌듯함이 있다”고 자평했다.
주변에선 “너와 똑같다”고 이야기했지만 차학연은 연신 “나와 너무 다른 인물을 연기했다”며 손사래를 쳐 웃음을 자아냈다. “견우를 연기하고 나면 텐션이 확 빠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일주일 치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았다”며 “점차 적응되니까 에너지 회복 기간이 빨라지더라. 촬영을 마치고 견우 말투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이 놀리더라. 가끔 확 튀어 오르는 행동이나 말투가 견우의 잔재로 남았다”고 말했다.
2012년 아이돌그룹 빅스로 데뷔해 2014년 연기를 시작했다. 드라마 ‘호텔킹’부터 ‘터널’, ‘붉은 달 푸른 해’, ‘마인’ 등 유독 장르물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차학연이다. 이후 ‘무인도의 디바’(2023), 영화 ‘태양의 노래’(2025), ‘노무사 노무진’으로 이어지는 밝은 작품으로 이미지 탈피에 성공했다. 차학연은 “제안받는 대본이 다양해졌다. 한 계단 한 계던 걷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구나,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하는 걸 느낀다. 앞으로의 활동에 응원을 해주는 선물 같다”고 의미를 뒀다.
돌이켜 보면 ‘노무사 노무진’ 촬영 기간은 풍성한 한가위 같았다. 도전이었던 캐릭터에 자신감이 붙었고, 더욱더 날뛰며 촬영에 임했다. 그만큼 배우고 남은 것들도 풍성해졌다. 차학연은 “예전엔 내가 잘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았다면, 지금은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을 찾는다. 해내고 난 뒤의 뿌듯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에 다양한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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