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모비스요? 제 자부심이죠.”
‘모비스의 심장’이 다시 뜨거워진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코트 위를 누볐던 등번호 6번. 익숙한 그곳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양동근 신임 감독이다. 제7대 현대모비스 감독에 선임됐다. 선수, 코치, 감독으로 이어지는 농구 인생의 모든 명함에 현대모비스가 새겨져 있다. 아직은 조금 낯선, 하지만 설렘으로 가득하다. 국내에선 단 10명에게만 허락된 감독 직함이기도 하다. 계약서에 사인한 지 약 일주일 정도 지났지만 여전히 그 순간의 감정이 생생하다. 양 감독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 노력하는 천재, 양동근
양 감독은 남자프로농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함께한다.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중 한 명으로 평가 받는다. 화려한 커리어가 증명한다. 2004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 신인왕을 수상, 남다른 떡잎을 드러냈다.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2020시즌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 달렸다. 정규리그 우승 6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등을 빚었다.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기억도 정규 4회, 챔프전 2회나 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는 아니었다. 모두가 부러워한 다채로운 재능, 그 가운데 으뜸은 노력이었다. 정상에서도 결코 안주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며 좀 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했다. 양 감독은 “이상민 KCC 감독, 김승현 선배 등 당대 최고의 가드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천재 아닌가”라고 운을 뗀 뒤 “선수 시절, 가령 중요한 경기가 있다고 하면 하루 종일 선배들의 플레이를 찾아봤다. 보고 또 봤다”고 끄덕였다.
현대모비스에서만 뛴 ‘원클럽맨’이기도 하다. 선수로서 뛰는 17년간 단 한 번도 다른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양 감독의 등번호 6번은 영구결번으로 남아 있다. 은퇴 후 미국으로 건너가 1년 정도 연수를 받은 뒤 돌아왔다. 2021년 7월부터 정식 코치 업무를 시작했다. 이듬해 6월 수석코치로 승격됐다. 그리고 3년 뒤 정식 감독이 됐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친정팀서 사령탑에 오른 것은 이번이 4번째다. 양 감독은 “자부심이 있다. 더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 공부하는 리더, 양동근
같은 유니폼, 같은 경기장. 하지만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선수 땐 주로 나무를 봤다면, 코치로선 숲을 봐야 했다. 양 감독은 “선수 시절엔 나만 잘하면 됐다. 컨디션 챙기고 부족한 부분 훈련하면서 해야 할 것들에 집중했다”면서 “코치가 되고 보니 개인적인 것보다는 선수단이 우선이 되더라. 감독으로서의 책임감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선수들 스스로가 움직이게끔 하고 싶은데 공부를 많이 해야 할 듯하다”고 밝혔다.
초보 감독으로서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닐 터. 당장 선입견부터 깨야한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수장에 대한 색안경이 대표적이다. 스포츠계엔 ‘스타 출신은 성공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오랜 격언이 있다. 양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감독이란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결국은 운동을 정말 열심히, 그리고 잘했던 사람들이 지도자 기회를 많이 얻는다”면서 “다만, 우승 감독은 매 시즌 단 한 명뿐이기에 그런 말이 나온 듯하다”고 말했다.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양 감독의 농구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을 꼽자면 유재학 프로농구연맹(KBL) 경기본부장이다. 오랜 시간 스승과 제자로 발걸음을 맞췄다. 선수 시절 현대모비스 외에 선택지를 지운, 나아가 지도자를 꿈꾸게 한 인물이다. 양 감독은 “유재학 감독님의 경우 선수들이 믿게끔 만들어주신다. 감독님이 계시기에, 다른 곳은 생각조차도 안했던 것 같다. 나도 그런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담담히 털어놨다.

◆ 유연한 지도자, 양동근
이제 막 지휘봉을 들었지만 할 일이 태산이다. 코치진 구성부터 신중하게 했다. 박구영 수석코치, 박병우 코치 체제로 출발한다. 양 감독은 “든든하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자원들”이라고 활짝 웃었다. “박구영 수석코치는 D리그 경험도 워낙 많은 데다 유재학 감독님 계실 때부터 있었다.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적임자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병우 코치는 D리그를 맡는다. 어린 선수들을 다독이면서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더라”고 설명했다.
맨땅에 헤딩까지도 각오하고 있다. 쉬이 다음 시즌 전력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함지훈, 장재석, 한호빈, 서명진, 김국찬 등 핵심 자원들이 자유계약(FA) 시장에 나선다. 이우석과 신민석은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한다. 자칫 밑그림부터 완전히 새롭게 그려야 할 수도 있다. 베테랑 유재학 본부장마저도 걱정을 했을 정도. 양 감독은 오히려 씩씩하다. “기회의 땅이 됐다. 누구든 능력만 증명한다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 더 재밌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어렵지만 핑계댈 생각은 없다. 양 감독은 “이 자리는 경험을 쌓는 자리가 아니다. 성적이 나지 않으면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를 받지 않나”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단, 서두르진 않는다. 자신이 추구하는 농구 색깔이나 방향성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양 감독은 “일단 선수단이 꾸려지면, 그것에 맞게 전략을 짜는 게 맞을 것 같다. 르브론 농구가 좋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각자 강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려 한다”고 강조했다.

◆ 꿈꾸는 내일, 양동근
또 한 번의 출발선. 양 감독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어린 시절 자신이 그랬듯이, 누군가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양 감독은 “수장은 선수가 최고의 위치로 클 수 있는 발판으로 마련해주고, 선수는 또 그런 수장을 믿고 팀을 떠나지 않는 분위기가 됐으면 참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단시간에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곡차곡 시간이 쌓여야 가능하다. 양 감독은 “할일이 참 많다. 변수가 많은 만큼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뜻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중심을 잡으려 한다. 선수단을 향한 메시지 또한 분명했다. 양 감독은 “어떤 상황이든 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든 척, 열심히 하는 척, 이만큼 했으면 됐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다 보인다”고 눈빛을 번뜩였다. 엇박자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왜 못하지’가 아니라 ‘왜 그랬을까’ 거꾸로 하나하나 돌아보고자 한다.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것은 물론이다. 양 감독은 “내가 믿어야 선수도 믿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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